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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브로_이면우[거미] 글보다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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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 / 이면우


오솔길 가운데 낯선 거미줄

아침이슬 반짝하니 거기 있음을 알겠다

허리 굽혀갔다, 되짚어오다 고추잠자리

망에 걸려 파닥이는 것을 보았다

작은 삶 하나 거미줄로 숲 전체를 흔들고 있다

함께 흔들리며 거미는 자신의 때를 엿보고 있다

순간 땀 식은 등 아프도록 시리다

그래, 내가 열아홉이라면 저 투명한 날개를

망에서 떼어 내 바람 속으로 되돌릴 수 있겠지

적어도 스물아홉, 서른아홉이라면 짐짓 

몸 전체로 망을 밀고가도 좋을게다

그러나 지금 나는 마흔 아홉 

홀로 망을 짜던 거미의 마음을 엿볼나이

지금 흔들리는 건 가을 거미의 외로움임을 안다

캄캄한 뱃속, 들끓는 열망을 지금 바로, 부신 햇살 속에

저토록 살아 꿈들거리는 것으로 바꿔 놓고자

밤을 지세운 거미, 필사의 그물짜기를 나는 안다

이제 곧 겨울이 잇대 올 것이다

이윽고 파닥거림이 뜸해지고

그쯤해서 거미는 궁리를 마쳤던가

슬슬 잠자리 가까이 다가가기 시작했다

나는 허리 굽혀, 거미줄 앞에 오솔길을 따라

채 해결 안된 사람의 일 속으로 걸어들어 갔다.


보통 글보다 삶이 어렵다고도 합니다. 그리고 살아내지 못해서 쓴 글은 타인의 삶 속에 뿌리내릴 수 없다고도 합니다. 혀보다 무거운 발, 펜보다 무거운 손인가 봅니다. 시인은 중년의 아침, 오솔길을 걷다 필사의 사투를 목격합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겠다는 항전의 의지가 아니라 죽음이 턱 밑까지 들이닥친 상황. 거미줄에 걸린 고추잠자리는 온 하늘을 붉게 물들일 작정을 하다가 유약하나 끈덕진, 희미하나 강력한 거미줄을 만났습니다. 

시인은 고추잠자리의 아픔을 또렷이 봅니다. 식은땀이 시려질 정도로, 자연을 파괴하지 마세요, 외마디 감각에 가득 찼던 어린 시절을 떠올립니다. 누군가의 사투에 눈을 감아버리거나 각자도생하던 청년의 시기를 생각해 냅니다. 


이제 마흔이 훌쩍 넘어, 그는 사투의 범위를 넓힙니다. 거미줄을 잣던, 거미를 봅니다. 그는 신 새벽이슬이 맺힐 정성으로 겨울 같은 온 밤을 지새우며 자기 꽁무니에서 먹은 것들과 살들을 내어 생존의 그물망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 어두움 속에 희미한 실핏줄을 보았습니다. 생의 끈기로 아침해를 띄우는 거미의 무성한 삶의 부침을 봅니다. 고추잠자리도, 거미도 딱히 잘못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는 오솔길을 걸어 나오며 삶을 들여다봅니다.  


소나기보다 첫 빗방울이 무서울 때가 있습니다. 한 가지 목적에, 한 사람에 집중할 수 있었던 때와 그것을 위해 끝없이 달려가던 때가 있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혹은 내 삶에 강한 인연이라 떠올리는 누군가를 위해. 그러나 그런 이들을 숱하게 만나게 됩니다. 소주 한 잔을 마시면 투 잡을 뛰는 기사님들의 핸드폰 배경화면을 봅니다. 버스 첫차를 타면 자리 욕심에 정신없는 사람들이, 변두리에서 시내 중심가로 청소 일을 하려고 새벽처럼 서두르는 몸동작을 봅니다. 윗사람의 지시라고, 회사의 목표라고 앵무새가 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주저함과 침을 꿀꺽 삼키는 것을 봅니다. 


그렇다고 거미와 잠자리 사이의 거미줄을 둘러싼 사투를 인간적으로만 해석해서 단순히 '약육강식' '생존본능'을 도출해 내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거미와 잠자리가 어떤 생각으로 사는지 제대로 물어본 적도 없습니다. 나를 항상 잠자리같이 연민해서도 안 됩니다. 회사는 제로섬 게임이라고 비판과 자위만을 해서도 안 됩니다. 개인과 개인의 다툼으로 사회를 자연화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성급한 일입니다. 거미줄의 수고와 잠자리의 진땀, 모든 것 이후의 삶이 아닌 모든 것 중의 삶을 생각해 봅니다. 한낮 미물의 움작거림이 전 세계를 흔들었다는 시인의 마음을 생각해 봅니다. 나만의 오솔길 위에서 온갖 합리적 변명의 삶이 다른 삶과 만날 수 있는가도, 그러나 내 길 위에서 다른 삶은 전혀 알 수 없음도 그 약한 균형의 고리도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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