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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문학]두 사람이 앉아 밥을 먹는다

Eat&It Daily Report


아침 혹은 새벽에 일어나 물 한 잔 마시고 생각한다. 오늘은 무엇을 먹을까.

어제 끓여놓은 쇠고기 뭇국은 더 맛이 들었겠다. 냉장고를 열어 뭐 먹을 게 있나 허리를 굽히고 본다. 어머니가 주신 열무김치가 있네. 냉장실 맨 윗 칸에는 아내가 동료에게 받은 된장 시래기가 있네, 이걸 해야겠네.

어머니가 주신 가자미 구이를 해야겠네. 미리 바깥에 꺼내 놓은 뒤에 칼집을 내고 소금 간을 하라고 하셨으니. 미나리나물은 며칠이 되었는데 나 밖에 먹지 않으니 어떻게 먹을지 고민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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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과 거실 근처에 작은 식탁이 놓여있다. 정사각형의 식탁, 위쪽과 오른쪽은 벽으로 막혀있고 주로 아내가 왼쪽 내가 아래쪽에 앉는다. 얼려 놓은 밥이 해동될 때쯤이나 국이 다 끓을 때쯤 '밥 먹자'라고 부른다. 그게 아내에겐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나는 알 수는 없다. 때론 허겁지겁 먹고 전날 과식을 해서 뉘엿뉘엿 먹더라도 그 자리는 이곳에 이사온지 다섯 달이 지나는 지금, 많이 익숙해져 있다. 내가 왼쪽에 앉으면 조금은 어색한 느낌이다.


오늘은 바깥에 다른 일정이 없어서 점심을 혼자 먹었다. 반찬을 다 올려놓고 먹기도 하지만 가끔 그간 처리 못했던 남은 반찬들, 새로 꺼내기는 아쉬운 정도의 양이다. 미나리 무침을 탈탈 털어 넣고, 열무김치를 숭덩숭덩 잘라놓는다. 본죽에서 죽에 같이 온 반찬인 장조림과 작은 양념도 담아낸다. 어머니가 오징어 숙회 등 찍어먹으라고 주신 양념장도 한 스푼, 밥 먹는 것보다 때로는 냉장고에서 외롭게 있던 반찬 그릇들을 깨끗이 정리하는 일이 더 말끔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계란 프라이는 혼 밥의 마지막 자존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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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다시금 같은 각도, 아내 동료가 준 청국장이 상당히 맛이 좋았다. 두부 큰 것을 샀더니 청국장에 다 넣기가 그래서 절반 정도는 두부조림을 했다. 꽈리고추가 고추 조림하고 조금 남아서 함께 넣었고, 대파도 같이 넣었다. 양념은 고춧가루 2, 고추장 1, 설탕 2, 간장 2, 굴소스 1, 매실액 1, 맛술 2, 다진 마늘 2 정도로 넣는다. 대부분 음식은 단맛과 짠맛을 내는 재료와 다진 마늘의 비율로 결정되는 것 같다. 설탕과 매실액 vs 간장, 굴소스, 고추장 이런 조합의 변형이 음식 맛을 결정하게 된다. 단짠의 비율이 1:1에서 1:2 정도에서 움직인다. 어제 야심 차게 근처 인왕시장에서 산 '두릅'무침도 마찬가지이다. 이번에는 간단하게 하느라고 어머니 양념장을 쓰긴 했지만, 주로 무침은 향이 사라지지 않게 간장: 설탕의 비율을 2:1 정도로 하면 맛이 괜찮은 것 같다. 물론 무침에는 설탕이 전혀 필요 없을 때가 있지만 다진 마늘은 대부분 빠지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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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후 집에서 음식을 맡게 되리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집안일 중에서 음식이 나에게는 가장 어울리는 일이다. 무언가를 만들고, 무엇을 대접하는 일은 재미있다. 삶이 그렇듯 무조건 재미있거나 혹은 무조건 괴롭거나 한 일은 없는 것 같다. 아내와 나의 사이도 그럴 것이다. 돋보기로 서로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치부도 장점도 가장 잘 드러난다. 10년 넘게 가끔은 밥으로 혹은 삶으로 부딪혀온 관계는 복잡하다. 직업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었다. 어떠한 세계에 취미의 영역과 직업의 영역이 있을 때 취미가 곧 직업이 되게 하는 일은 어떤 면에서 괴로운 일이다. 내가 글을 쓰고 말을 하는 일을 직업으로 생각하게 되어 바깥으로 나왔을 때, 그 일은 더 이상 재미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무엇을 생산해내는 입장에서 받아야 하는 생산물의 질이나 자기표현의 결과물로서 받아야 하는 내 범위를 넘어선 외부인들의 시선은 날카롭다.


청국장과 시래기를 가져다준 동료에게 밥상과 청국장, 시래기 지짐 사진을 보여주었더니 음식점에 도전해보라고 했다고 전한다. 빙긋이 웃었다. 음식이라는 거, 집에서 먹을 때는 맛없으니 맛이 좋으니 말하면서도 먹을 수 있다. 그런데 바깥에 누군가에게 내어 놓는 일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대부분의 직업이 또한 남들 쉴 때 쉬고 놀 때 놀면 일정 수준의 소득을 벌어들일 수 없고,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 말고 그 아래 깔린 축적의 시간이 없으면 또한 직업이라고 말할 수 없기에 쉽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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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우연히 음식 방법 하나를 배운다. 고등어구이를 미리 꺼내놓았더니 해동이 잘 되었다. 해동이 잘 된 고등어를 항상 그랬듯이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올려놓는다. 두 번 정도 뒤집어서 구워낸다. 안에 고등어 육즙이 가득 찼다. 해동하지 않고 바로 구워낸 고등어구이와 달랐다. 해동의 문제였을까, 내 굽는 방법의 신장이었을까, 확인해봐야겠지만 아마도 해동이 잘된 음식이 갖는 특징이라고 생각했다. 남은 청국장과 두부조림을 전자레인지에 데우고 같은 자리에 앉아 밥을 먹는다. 아내에게 딸기를 씻어달라고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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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에 앉아 두 사람이 밥을 먹는다. 쌀알은 한 마디도 없고, 식탁도 음식을 올려다 주기만 할 뿐 고요하다. 그릇은 다시금 세제로 씻어내고 항상 그 자리인 것 같다. 그렇지만 언제나 밥은 힘을 주고 입을 닫게 해 준다. 식탁은 몇 년이 지나자 식탁 다리 사이에 있던 나무가 내가 힘을 줘서 부러지기도 했다. 그릇들이 이제 시간이 지나 이가 나고 빛이 바라기도 하며, 코팅 프라이팬에 이런저런 방향의 흠집이 나있다. 그 복잡한 흠집의 자국처럼 앉아있는 자리는 비슷한 두 사람이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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