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2년 차 육아 0년 차
나는 서울 홍제동에 산다. 홍제동에서 차병원 서울역 센터까지는 버스로 20분 남짓 걸린다. 차병원에 주당 1회씩 다녔다. 나는 강의를 하거나 공부를 하지 않으면 집에 있다. 아내는 조퇴를 신청하고 수요일 오후 2시 정도에 병원 예약을 잡는다. 아내를 홍제동 중앙차로 정류장에서 만난다. 아내는 마을버스를 타고 일터에서 홍제동으로 나온다. 마스크를 쓴 얼굴로 마을버스 뒷문에 서 있던 장면이 생각난다.
일과 시험관 시술을 병행하는 일은 어렵다. 가끔 일정이 있어 금요일 오후나 토요일 아침에 병원 예약을 가면 출산율 최저의 통계 자료를 믿을 수 없게 된다. 소파에는 사람이 가득 차 자리가 부족할 때도 있다. 여성 홀로 혹은 남편이나 엄마와 함께 온 사람들이 앉아있다. 여기저기서 지방의 우리말이 들려오고 외국말도 들린다. 편한 복장 없이 일터에서 온 사람들이 많다. 몸 하나에 들러붙어있는 수많은 역할들이다.
여전히 근대적 의학과 과학이 풀지 못한 신비는 생명의 탄생이다. 임신과 출산은 인간이 가장 자연과 가까운 시기이며 자연과 문명을 나눴던 인간이 가장 겸손해지는 때이다. 그런데 자연 문명의 나눴던 언어는 오랫동안 여성의 출산 기능을 부족함으로 여겨왔다. 자궁의 옛말이 히스테리아인 것을 감안했을 때 신경증의 원인을 남성 성기가 없는 여성의 부족함으로 오랫동안 간주해왔다. 한 인간의 생물학적 욕망을 '아이'로 여기면서도 여성에게만 가능한 역할을 책무로 언어화했다. 가족과 혈통의 탄생은 내 아이와 남의 아이를 나누면서 여성의 자궁을 개인화한 재생산 능력 없는 남성의 근원적인 부족함이다. 그 부족함을 근육량 우위와 권력의 방식으로 풀어왔다. 게다가 가정의 일을 여성이 감당할 일로 언어화했다. 출산과 육아 그리고 가정의 수많은 일을 무임금 혹은 저가치로 취급받았던 오랜 시간은 가정을 테두리로 매겼던 폭력의 역사이기도 하다.
차병원에 일을 병행하며 찾는 여성들은 그 역할과 책무를 견뎌내고 있다. 정신과 육체는 분리될 수 없기 때문에 그 모든 마음의 부담이 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아내와 나는 정말 운이 좋았다. 처음 시험관 시술 시도에 성공이라니. 코로나로 아내의 일터 근무일 수가 줄어들었고 아내는 조퇴를 쓸 수 있는 특수한 직업적 위치를 가졌다. 일을 하다가 급하게 찾은 병원에서 대기 시간이 길다. 보통 1시간은 기다려서 5분 사이로 의사를 만날 수 있다. 그 의사도 얼마나 수많은 간절한 사람들을 상대해야 할까, 서로 예의는 차리고 있으나 열망과 불안이 교차하는 압축된 시간이다.
8월 하순쯤 질 초음파에서 복부 초음파로 바뀌고 아이는 안정기가 찾아왔다. 9월에 홍제동 역 앞의 여성 병원으로 옮겼다. 아내는 갑상선 수치를 제외하고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 그런데 임신에 안정기가 어디있겠나. 의학적 결과가 이상이 없더라도 아내는 나에게 불안을 모두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혹여라도 아이에게 영향을 줄 수 있을까 고심했을 것이다. 혹은 그 고심마저 떨치려고 했을 것이다. 임신 초기 갈비탕이 당겨서 몇 번 사 먹다가 질릴 때쯤 차병원 졸업했다.
서울역은 어느새 여행이나 출장도 없이 자주 찾는 곳이 됐다. 지금도 강의 일정이 있어 수원 가는 버스를 탈 때 서울역을 찾는다. 눈에 들어오지 않던 주황색 서울 스퀘어 건물이 이제는 보인다. 몸이 닿았던 자리에는 기억이 남고 시선이 새겨진다. 그 기대와 불안이 건물 2층 센터에 여전히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