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육아일기] 아이와의 40일

결혼12년 차육아0년 차

일요일, 아내와 아침 겸 점심을 차리려고 한다. 아내는 지난 새벽에 깬 아이에게 젖을 주고 안방 침대에서 잠이 들었다. 나는 아내가 젖을 주기 전에 아이 기저귀를 갈고 아내에게 '아이가 배고픈 것 같다'라고 말하며 아이를 아내 품에 안겼다. 아내가 젖을 주는데 방해될까 싶어 거실의 매트 위에 누웠다가 잠이 들었다. 아침이 되어서 내가 침대로 가서 같이 누웠다가 일어나 보니 아침이었고 아내는 다시 아이에게 젖을 주고 있었다


아침을 차린다. 미역국이다. 어제 오신 어머니가 미역국을 한 사발 끓여오셨다. 생선구이용 조기에 밀가루도 묻혀 오시고, 비닐로 하나하나 소분해서 담으셨다. 그리고 미역국용 냉동 바지락도 있다. 직접 생 바지락을 손수 까셨다. 바지락 알이 굵다. - 그러고 보니 내일 아침에 먹을 쌀을 씻어 놓지 않았다. 쌀부터 씻고 와야겠다. - 생선을 굽는다. 센 불로 빨리 구우려다. 살이 두터운 생선을 구울 때는 약불로 오래 구우라던 어머니의 말씀을 듣는다. 내가 만든 무나물과 숙주나물, 씻은 김치볶음을 놓고 어머니가 만드신 취나물과 곰피, 양배추 삶은 것, 양념장을 놓는다.


아내가 딸에게 젖을 다 주고 수유쿠션을 몸에 매단 채로 식탁에 앉았다. 유모차를 끌어다가 아이를 유모차에 눕힌다. 아이가 배가 불러 행복한 표정을 짓는 것 같다가 이내 얼굴을 찌푸린다. 아이를 들어 올린다. 왼손으로 아이를 감싸고 아이 엉덩이를 내 허벅지에 앉힌다. 아이가 조금 편안히 앉아 있는가 싶더니 이내 몸을 쭉 펴서 내 몸 바깥으로 나가려 한다. 운다. 알았다며 숟가락을 놓고 아이를 달랜다. 아이가 울음을 조금 그치는가 싶다가 다시 운다.

거실을 서성이다 식탁을 바라보니, 아내 뒷모습에 아내 뺨이 불룩하다. 밥이랑 반찬을 입 가득 넣었나 보다. 모유수유에 살이 어느 정도 빠졌는데도 다람쥐처럼 볼이 팽팽해진 것 같다. 둘아 앉아 밥을 천천히 먹었던 때가 손에 꼽는 것 같다. 눈이 시큰거리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아이가 40일이 갓 넘었다. 냉장고에 아이 사진을 일주일에 두 장씩 뽑아서 진열해 놓기로 했다. 주간 포토제닉이다. 아이는 희로애락을 온몸으로 표현한다. 아이의 눈망울을 바라보면 끝없는 심연이 느껴지며 무한을 체감하기도 한다. 반면에 아이는 시도 때도 없이 자란다. 아이의 몸무게는 4kg이 넘어가는 것 같다. 어제는 안았더니 부쩍 팔이 뻐근해진다. 무거움이 그토록 기쁠 때는 없을 것 같다. 아이의 자그마한 변화를 하나씩 잡아내려고 한다. 아이가 젖을 먹고 예전에는 물과 같은 액체만 게워냈는데, 이제 입자를 게워내는 것이 소화가 된 젖 찌꺼기가 남은 것이라며 그것도 하나의 자람이라고 한다. 아내가 맘스홀릭 카페에서 봤단다.


아이는 소위 원더 윅스를 지나고 있다. 원더 윅스는 아이가 자기의 변화를 알아채며 불안감에 더 칭얼거리는 기간이다. 수량적 통계와 평균보다 개별성을 믿고 싶은 나도 아이의 칭얼거림이 조금 더 해지는 자그마한 징후 앞에 고개를 연신 끄덕인다. 그렇게 추상보다 현실은 무겁고 마음보다 몸은 삶에 눌어붙어 있다. 냉장고 사진은 그 단상으로 전자기력에도 상관없이 작은 마중물의 감정을 일으킨다.


40일은 어떤 종교에서는 금식으로서 갱생의 시기지만 육아에서 초기 40일은 먹고 자는 것이 최선의 미덕인 시기이다. 누구보다 아이 자신은 언어 이전의 경험에서 삶의 씨앗을 만들어내고 있다. 아내는 예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형태로 몸을 내어 아이의 몸을 만든다. 나는 무엇을 하고 있나, 40일여 더욱 몸과 마음이 당신과 당신에게 갈 시간이다. 나는 마흔둘의 나이, 사십 이일 된 아이와 지내고 있다. 내일은 아이의 1/365일보다 덜 살았다며 위안을 해야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남편 육아일기] 자장가 "걷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