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육아일기]50일 된세 사람

결혼 12년 차 육아 50일 차

아이가 태어난 지 50일이 되었다. 아이는 체중이 점점 불어 가고, 나와 아내의 팔 근육은 때맞춰 늘어난다. 50일은 가장 일반적인 단위에 속한다. 대신, 그 안에는 또 다른 숫자가 있다. 아내는 400회 이상의 모유수유를 했다. 하루에 열 번이 넘는 적도 있었다. 아내와 나는 기저귀를 400회 이상 갈았다. 이제 낮과 밤을 구분하는 것 같은 아이지만 아이에게 먹고 싸고를 도와주려면 100회의 새벽 기상이 필요하다. 아이가 음양에 길들여지듯이, 인간의 몸이 어디까지인지를 구분할 수 없다. 인간의 몸에 들어오는 음식과 나가는 것은 그렇게 정직하고 어느샌가 인간의 몸을 구성하게 된다. 아내는 원래의 몸에서 모유를 생산하는 기능을 위해 미역국을 70회 이상 먹었다. 쇠고기, 바지락, 사골, 전복 미역국 등 그 종류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40회의 목욕을 했다. BCG, 간염 예방 주사를 맞은 날이나 산후조리원에서 집으로 왔을 때부터 꼭 매일 씻기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는 여전히 목욕물에 닿으면 긴장을 한다. 아이가 조금이라도 추울세라 아내와 나는 신속하게 몸을 움직인다.


4번의 외출이 있었다. 아이가 간염 예방 주사를 맞기 이틀 전에 처음으로 밖으로 나갔다. 아기띠를 매고 나갔는데 아이와 밀착된 내 몸에 땀이 흥건했다. 간염 예방 주사를 맞은 날, 아이는 자지러지게 울었고, 아내와 나는 어찌할지 고민이었다. 평균보다 체중이 많이 안 나간다고 해서, 그 '평균'이 무엇이라고 젖을 일부러 더 물리기도 했다. 그리고 꽃핀 계절에 친구에게 중고로 받은 유모차를 끌고 집 주변의 홍제천을 다녔다. 사전투표를 하고 나와서 동사무소 옆 벚꽃 나무에서 꽃비가 스르륵 내렸다. 아이 발끝 유모차 요람에 꽃잎이 떨어졌다. '라테 파파'를 하자고 해서 스타벅스에 가서 커피를 주문했다. 그렇게 외출은 특별한 일이 되어버렸고, 그것이 익숙해지면 아이는 좀 더 자라 있을 것이다.


아이는 아마도 두려움의 나날을 보낼 것 같다.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줄은 명확히 알 수 없으나, 상당히 많은 부분이 생물학적 특성과 함께 미메시스, 곧 모방을 통해서 구성할 것이고, 마음의 구성은 몸과 함께 결합해서 인간 몸의 행위를 배열해 나갈 것이다. 1920년대 어쩌다 보니 닭에게 양육되었던 인간이 평생토록 닭과 같은 행위를 보인 사례가 있었다. 그 인간은 몸은 통상의 인간과 다를 바가 없으나, 한쪽 다리로 위태롭게 서거나 닭 부리로 모이를 쪼듯이 입으로 땅을 쪼았고, 언어 표현을 결국에 배우지 못했다. 철학에서 제시하는 실재론(reality)과 유사하다. 몸의 실체나 마음의 실체가 정해진 것이 아니라, 몸이나 마음의 형태는 어느 정도 구성될 수 있으나 실재하는 것에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스피노자 이후 몸과 마음이 외부와의 '마주침'에 의한 것이며 그것이 서로 상호작용한다는 논의는 데카르트의 심신 이원론이나 이성 중심의 사고를 무너뜨리는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 후기구조주의 대표적인 학자 푸코 또한 들뢰즈를 높이 평가했던 이유도, 푸코도 여전히 칸트를 중심으로 한 '이성'에 대한 비판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면 들뢰즈는 '감정'과 '욕망'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들뢰즈 이후 역동, 혹은 정념, 정동 등으로 번역되는 것을 통해 인간의 감정은 물론 인간과 상호작용하는 바깥과의 정동은 끊임없이 배열되어간다.


아이의 50일, 그리고 우리 부부의 50일은 또 다른 관계로서 끊임없이 상호작용한다. 50일, 400회, 100회, 70회, 4회의 숫자 너머에 서로의 삶이 있다. 밤, 이제 아이가 역방쿠 - 역류방지 쿠션 - 에 누워있다가 조금 칭얼대기 시작한다. 아이 옆에 피곤한 아내가 거실에서 잠에 빠져들었다. 아내도 조금 전에 아이 쪽으로 몸을 뉘었다가 지금은 반대쪽으로 웅크리고 있다. 아이의 칭얼거림에 나도 고개를 뒤로 돌린다. 어느 수준으로 아이를 달래야 할까, 손으로 배를 쓰다듬어야 하나, 아니면 뽀뽀를 해야 하나, 말소리로 '응 그랬어? 아빠 여기 있어.'라고 해야 하나 생각한다. 방금도 아이가 손과 발을 움작거리는 통에 풀려버린 옷가지를 여미고 왔다. 그런 상호작용으로 아이는 몸과 마음, 그리고 삶을 생산하고 또다시 배열한다. 그렇게 숫자는 몸으로 스며들고 아내와 나, 그리고 아이의 50일은 가족으로 재구성된다. 그 삶의 끝에서 혹은 주변에서 우리는 때로 울기도 하며 작은 웃음에 기뻐한다. 아내, 나와 달리 아이는 모든 것에 전심이다. 전심으로 울고 전심으로 싼다. 엄마 젖을 목이 터져라 찾는다. 고생한다. 그 두려움 앞에 점점 몸이 바깥과 상호작용을 통해 자기화되어가는 지금, 부모로서 조금이라도 그 문턱에서 동고동락을 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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