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육아일기] 60일의 새벽, 몸을 깨우다

결혼12년 차육아0년 차


아이가 침을 흘리고 손가락을 입으로 빤다. 내 옷에 침이 묻고 아이 뺨에 침과 코가 묻어난다. 행복한 일이다. 아이는 이제 자기 몸을 또 다른 자기 몸으로 느끼고 받아들인다. 가끔씩 어른 같은 잠꼬대를 하며 울음이 미세해지고 발화는 세밀해진다. 아내는 아이의 울음으로 먹.놀.잠을 구분하기 어렵다고 한다. 배고픈지, 그냥 칭얼대는 것인지, 졸린지, 아픈지를 알 수 없는 것. 알 수 없는 것에는 역시 실천밖에 방법이 없다고 칸트 선생님께서 실천 이성 비판을 통해 보여주셨다. 아이라는 소황제, 그 표현을 언어로 받아들이는 것도 무한한 가능성에 혹여 해가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면서도, 노심초사 밖에 할 수 없는 한계를 가진 부모의 자기 합리화된 방법이다. 인식 불가능한 무한한 개체에 대해 인간이 취해온 생존 전략이다.


실천은 역시 밤낮 없는 에너지 공급과 에너지 활용에 있다. 아이가 태어나고부터인지 나는 밤 11시에 자고 12시에 자더라도 3시에는 눈을 뜨게 된다. 오늘은 푹 잤는데 봤더니 오전 2시 57분이라고 핸드폰 시계도 거실의 벽시계도 알려준다. 물론 에너지 공급을 위해 아내는 벌써 일어나 아이옆에 누워 젖을 주는 방식을 실천하고 있었다. 나는 4월부터 일을 시작하다 보니 5시에는 일어나 아내와 아침을 같이 먹으려고 한다. 5시 40분쯤 아침 식사를 같이하고 6시가 좀 넘으면 나는 일터로 나간다. 해 질 녘에 집으로 돌아올 동안 아내는 아이를 받드느라 여념이 없다. 때론 쪽잠만 자고 칭얼대는 아이의 모습을 보다가 통잠을 자는 아이에게 고마워하다가 그득하게 몸 안의 것을 노출하는 통에 세탁기를 매번 돌려야 한다. 3일이 지나면 기저귀용 쓰레기통이 가득 찬다. 인간이 문명을 시작한 이후로 많은 에너지를 문명을 유지하려는 행위에 활용한다. 옷을 입지 않았으면 빨지 않아도 될 것을 기저귀를 안찼으면 됐을 것을, 아이는 인간이라는 행동 양식을 가진 개체가 되기 위해 훈육이 되어야 하고, 엄마와 개체 분리를 해야 하며, 애착과 고독, 불안과 자유의 감정을 얻게 된다.


현명한 사람들 혹은 더 불안한 사람들은 어떤 일이 직면하기 전에 성찰한다지만 나는 딱 직면했을 때부터 암중모색을 시작한다. 아이의 몸짓과 부부의 반응이 뒤엉켜있다가, 아이가 4번쯤 내 몸에서 잠들다 침대에 내려놨을 때 '으앙'하고 울어재낄 때쯤 한 숨을 쉬며 머릿속을 환기한다. 한 친구는 아이에게 등센서가 있다는 공학도적인 접근을 보여줬다. 그 머리 회전에는 4번의 침대 누위기를 시도하려고 굽힌 허리와 무릎 통증과 어깻죽지 근육의 활약이 크다. 임산부들의 족저근막염 - 임신으로 몸의 무게중심이 바뀌어서 뒤꿈치 쪽에 통증이 심한 현상 - 도 근육의 변화가 신체의 버릇을 따라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렇게 엄마도 아이처럼 몸의 변화를 받아가며 고통스러워한다. 그럴 때 과연 족저근막염이라는 단어도 익숙지 않고 아기띠가 아니라 포대기에, 일회용 기저귀가 아닌 천 기저귀를 쓰던 나의 엄마는 어떤 고통을 감내하고 있었을까 궁금해진다.


나의 어머니가 내 집에 들러서 자기를 똑 닮은 - 말하자면 나를 똑 닮은 - 손녀를 보고서 하릴없는 감동의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그녀는 무엇을 포기하고 혹은 금세 잊으며 70년의 시간을 보내왔는가를 어렴풋이 생각해보게 된다. 어머니가 있을 때 얌전하던 아이가 금세 칭얼거리고 자기 몸 바깥으로 몸 안의 것들을 기탄없이 방출하며 문명의 체계를 뒤흔들려했다. 과량의 분비물 홍수 앞에서 옷과 기저귀라는 댐은 한계 수위를 초월한다. 급한 보수공사를 마무리하고 아이의 신체를 안정시킨 뒤에 나는 나와 가까운 가족의 단체 SNS에 아이의 똘망똘망한 사진을 공유한다.

누나: 우와 이쁘다

어머니: 실제로 보면 더 이쁘다.

나: 성큼이가 좀 더 잘 잤으면 해요.

어머니: 성큼이는 잘 자는 편 아닌가?

나: 성큼에미는 성큼이가 무대체질이라며 어머니 오심 잘 자고 순해 보이는 거 같다네요. 애가 쉬우면 애가 아니겠죠.

어머니: 무대체질 ㅎㅎㅎ

아내/성큼에미: 이모티콘

누나: 그렇지, 엄마만 아는 거지. 그래서 엄마가 아기를 제일 많이 알지

나: 어머니도 40년에 음청 힘드셨겠지

누나: 그치, 지금 생각해도 연년생은 힘든 것 같아.

어머니: 하~ (주저리주저리) 힘들었단 생각 진짜 해본 적이 없었네

어머니의 묘한 거짓말과 자기 확신 혹은 사랑에 대한 기만의 언어는 누구도 쉽게 대답할 수 없는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서로 표현해야 되는 관계 속에서는 침묵이 어색함이겠으나, 깊은 관계 속에서는 때론 침묵이 강한 동의이면서도 한 단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울림임을 알고 있다. 아무 일 없다는 듯 내일이 되면 말은 계속되고 각자의 자리에서 어제보다 내일이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무르익어 간다. 새벽녘, 해야 될 일들을 제쳐두고 육아일기를 쓰다 집 밖 어딘가에서 환경미화원이 청소차 후진 기어를 놓는 소리가 들린다. 사람이 드문 새벽, 그들은 사회적 어머니로서 해야 될 일에 가득 차 있다. 그들은 인간의 흔적을 치운다. 사회는 한 번도 관계를 놓친 적이 없으며, 인간의 성장은 내 신체를 어디까지 볼 것인가에 달려있음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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