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피닉스_부조리를 버티어 내기

영화의 일상


일상은 하루아침에 파괴되지만 하룻만에 다시 회복되지 않는다. 일상은 단조롭지만 일상의 침해는 삶을 파괴한다. 내가 살아보지 못한 시공간을 글로어 알게 된 역사적 사건의 평면성은 더욱이 날카롭다. 2차 대전이 끝난 베를린, 일상이 전쟁이던 공간에 종전은 결코 일상을 주조해낼 수 없었다. 전쟁이라는 참혹한 현실이 나에게는 문자로서 다가오고 영상으로 확인될 뿐, 몸서리쳐지거나 자신마저 버리게 되지는 않는다.


영화 [피닉스]는 2차 대전이 끝난 베를린을 배경으로 한다. 전범국이자 패전국으로서 독일이 승전국인 미국의 통치 아래 놓여 있다. 그 정치적 공간은 삶의 일상으로 다가왔을 때 훨씬 더 미세해진다. 영화 속 주인공 넬리(니나 호스)는 유태인 수용소에서 죽다 살아왔다. 나치의 마지막 무차별 학살이 자행되었을 때 머리에 총을 맞고 두개골이 함몰되어 성형 수술로 겨우 몸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는 1944년 말에 나치에게 잡혀가서 수용소에 들어가게 되었다. 대량 학살 속에 그의 남편 조니(로널드 제르펠트)는 그녀가 죽었으리라 생각했다.


성형 수술이 보편화되지 않았을 시기, 성형외과 의사는 그녀에게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그때 유행하는 미국식의 얼굴을 제안했을 것이고 그녀는 '원래대로만 해달라' 부탁했지만 그 시절의 예쁜 얼굴로 바뀌었다. 남편인 조니가 그녀를 알아볼 수는 없었다. 넬리는 수용소 생활에서 남편 조니를 생각하며 극도의 폭압적인 삶을 버텨냈다.



넬리를 살려준 친구 르네(니라 쿤첸드로프)는 같은 유태인으로서 그녀에게 조니의 배신을 말했다. 르네는 그들이 함께 살았던 베를린, 그리고 함께 말했던 독일어에 대한 환멸을 느끼고 유태인이 오랜 디아스포라의 삶을 마무리하고 그들의 고향, 유대 가나안 땅으로 가자고 한다. 그마저도 역사적 굴곡 앞에서 승전국이 팔레스타인 세력을 몰아내고 유태인에게 영토를 준 것이었다. 넬리는 르네의 호의에 감사하면서도 전쟁 전의 일상을 회복하고 남편을 찾으려 한다. 그의 함몰된 얼굴이 새로운 얼굴로 태어났을지라도 그의 몸에는 함몰된 충격이 여전히 남아있는 것처럼, 르네와 넬리가 찾았던 집터는 이미 크게 무너져있고 곧 재건이 되겠지만 매끈한 건물은 2차 대전의 상흔을 여전히 간직할 수밖에 없다.

3

전쟁의 이전, 베를린에 살았던 유대인을 생각해보면 가장 그립던 공간에서 철저한 이방인이 된다. 넬리와 조니가 살았던 마을을 다시 찾았을 때, 넬리는 전형적인 모습을 맞이한다.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사람들은 기차에서 내리며 몇 달 전까지 '창문 틈 너머에서 넬리가 잡혀가는 것을 보고 눈을 흘기던' 사람들이 그의 귀환을 기뻐한다. 넬리는 어색해진 얼굴처럼 어떠한 표정도 짓지 못하고 어색해한다. 그녀가 썼던 독일어, 그가 평생 일궈냈던 일상의 자리에는 나치와 부역자들, 그리고 밀고자들이 한 테이블에 자리하고 있고, 한 테이블에서 먹고 마시던 유태인 몇몇은 이 세상 사람이 되지 않았다. 그가 삶의 끝인 수용소에서 버티던 사랑의 그림자마저 낯섦을 느낀다.

통상 영화 리뷰를 남길 때 스포일러를 포함해서 남기는 편인데, 이번 영화는 몇몇 장면만 제시할 뿐 핵심이 되는 스토리와 사건은 제외했다. 세계의 사건이 일상을 파고들 때, 삶은 어떻게 재구성되며 관계는 어떻게 재배열될 것인가, 그리고 아무 일없었다는 듯이 계속되는 일상 같은 절망적인 부조리의 공간에서 인간은 어떻게 행동하게 되는가를 보여주는 영화이다. 삶은 때론 행복하지만 대부분 견디어내고, 부조리와 불안을 끌어안고 살아간다. 2차 대전의 상흔이 여전히 유럽의 이민자에 대한 감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우리나라 IMF 효과는 이제야 사회에서 속속 드러나기 시작한다. 한 번도 사건은 순간인 적이 없으며, 삶은 그 조각을 이어 붙여 간다. 부디 영화를 통해 그 조각의 날카로움과 부조리를 발견하시길 기원하며.


마지막 장면은 압권이다.

https://youtu.be/oVTNGnL8bNM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무의식의 여행_방배 사당 이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