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가진 자가 시대를 가진다.
로스앤젤레스의 햇빛은 건조했다.
그러나 그 건조함 속에서 세계의 감정이 생산되고 있었다.
유니버설 스튜디오 할리우드는 놀이공원이 아니다.
이곳은 이야기 공장이다.
입구의 거대한 지구본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그것은 선언이다.
“우리는 세계를 상대로 영화를 만든다.”
트램을 타고 스튜디오 투어에 들어갔다.
거리 세트는 실제 도시 같지만, 실은 벽뿐이다.
창문도, 문도, 깊이도 없다.
카메라가 비추는 각도에서만 완성되는 세계.
나는 그 순간 깨달았다.
현실보다 더 강력한 것은 ‘이야기’라는 것을.
홍수가 쏟아지는 세트,
비행기 잔해가 널린 장면,
폭발과 특수효과…
이 모든 것은 기술이지만,
본질은 감정이다.
미국은 총으로 세계를 지배한 것이 아니라
이야기로 세계를 장악했다.
해리포터 마을로 이동했다.
눈 덮인 지붕, 호그와트 성.
상상은 건축이 되었고,
소설은 공간이 되었다.
한 권의 책이
수십억 달러 산업이 된다.
그 산업은
영화가 되고,
테마파크가 되고,
굿즈가 되고,
다시 콘텐츠가 된다.
이것이 문화 산업의 구조다.
나는 그 거리를 걸었다.
73세의 여행자가
세계 최대의 스토리 산업 중심에서 서 있었다.
AI 시대에도
사람은 여전히 이야기에 반응한다.
기술은 도구다.
그러나 감정은 인간의 것이다.
영화는 스크린을 넘어
공간이 되고,
공간은 다시 경제가 된다.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내가 본 것은
놀이가 아니라
자본과 상상의 결합이었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한국은 어떤 이야기를 세계에 팔고 있는가?”
한복을 입고 세계를 걷는 나 역시
하나의 이야기다.
이야기는 살아남는다.
이야기를 가진 자가
시대를 가진다.
2026년 2월 18일
-신점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