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멎은 자리에서 들은 말 없는 언어
토레스 델 파이네의 새벽은 언제나 바람으로 깨어난다. 그러나 그날은 달랐다. 어느 한순간, 모든 바람이 멎었다. 하늘은 고요했고, 호수는 거울처럼 잠들어 있었다. 호숫가에 서서 숨을 멈췄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새소리도, 물소리도, 사람의 말도. 오직 침묵만이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 침묵은 두려움이 아니라, 위로였다.
페호에 호수의 물결은 빛을 머금은 채 미동도 없었다. 하늘과 호수가 맞닿은 경계가 사라지자, 내 몸의 그림자조차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 수 없었다. 그 순간, 자연이 말하고 있음을 감지했다. 단 한 마디의 언어도 없지만 모든 것이 말을 걸고 있었다. “조용히, 듣는 자만이 살아 있는 것이다.”
파타고니아의 하늘은 은하수로 가득 찬 우주의 지도다. 밤이 되면 별들이 하늘에서 쏟아져 내린다. 그 별빛의 하나 하나는 지구에 도달하기까지 수천 년의 시간을 건너왔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별빛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진 별의 흔적일지도 모른다. 그 사실을 생각하니 시간의 개념이 무너졌다.‘지금’이라는 순간 조차 과거의 잔상 위에 서 있는 듯했다.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천천히 움직였다. 물은 고요하게 흐르고, 바람은 한참을 쉬었다가 다시 불었다. 그 속도에 몸을 맞췄다.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내 안의 소음이 하나씩 사라졌다. 문득 깨달았다.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많은 말을 하게 되었을까. 자연은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존재할 뿐이다. 그러나 인간은 모든 것을 말로 풀어야만 안심한다. 그날 나는,‘말하지 않아도 충분한 것들’을 배웠다.
이곳의 원주민 마푸체(Mapuche) 사람들은 자연의 침묵을 ‘신의 대화’라 부른다. 그들은 새벽의 고요 속에서 세상의 균형을 읽는다고 믿는다. 삶의 문제는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소음 속에서 시작된다고 했다. 그 믿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침묵은 비워내는 행위가 아니라, 진짜 소리를 듣기 위한 준비였다.
호수의 표면이 살짝 흔들렸다. 바람이 돌아온 것이다. 그 순간, 침묵이 깨어졌다. 그러나 그 소리마저 침묵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나는 바람을 향해 속삭였다. “이제 알겠어요. 당신은 늘 이 자리에 있었군요.” 바람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내 머리칼을 스치며 지나갔다. 그건 인사 같기도 하고, 안부 같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도, 그 새벽의 정적은 내 안에 남아 있다. 소리를 지우면 보이는 것들이 있다. 말을 멈추면 들리는 것들이 있다. 그날 이후, 말보다 ‘듣는 일’을 더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침묵은 공허가 아니라 충만이었다.
“자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답은 그 안에 있다.” 지구의 끝에서 들은 그 문장은 지금도 내 안에서 천천히 울린다. 그 울림이 내 삶의 리듬이 되었다.
2025년 11월 16일
- 신점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