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서와 욕망의 풍경

빈의 벨베데레 궁전에서 '성공의 크기'를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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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항상 '질서'였다.

오스트리아 빈의 벨베데레 궁전(Belvedere Palace)에 들어섰을 때, 방문객을 가장 먼저 압도하는 것은 궁전 자체의 웅장함보다, 그 앞에 길게 뻗어 있는 정원이 뿜어내는 완벽한 대칭과 정렬이다. 사진 속 이 길고 곧은 산책로를 걸으며, 나는 이 공간이 단순한 휴식처가 아닌, 한 개인의 압도적인 욕망과 성공의 선언이었음을 깨달았다.


이곳은 유럽 역사에서 가장 성공적인 군인이자 예술 후원자였던 사보이 공자 외젠(Prince Eugene of Savoy)의 여름 별궁이었다. 18세기 초, 오스만 제국의 위협을 막아내고 합스부르크 제국의 영광을 드높인 영웅이 자신을 위해 마련한 공간. 벨베데레는 외젠 공자가 전쟁터에서 이룬 승리만큼이나, 예술과 건축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자 했던 집념의 기록장이었다.


바로크, 과잉의 미학이 빚은 질서

벨베데레의 건축과 조경을 지배하는 양식은 바로크(Baroque)다. 바로크는 단순히 건축 사조를 넘어, 17세기부터 18세기 초 유럽 절대왕정 시대의 철학이자 권력의 언어였다. 이는 이성과 질서를 강조했던 르네상스 시대를 지나, 감정과 역동성, 그리고 무한한 부의 과시를 추구했던 시대의 반영이었다.


벨베데레의 정원(Grosser Garten)은 프랑스식 정원의 정수다. 자연을 그대로 두지 않고, 인간의 의지대로 완벽하게 통제하고 재단했다. 굽은 선은 없다. 모든 길은 대칭적이고, 모든 나무는 네모반듯하게 다듬어졌으며, 분수의 물줄기마저도 계산된 궤적을 그린다. 이 완벽한 대칭과 정렬은 외젠 공자가 전쟁에서 보여주었던 철저한 전략과 통제력의 시각적 표현이다. 정원은 그에게 있어, 전쟁이 끝난 후에도 계속되는 '승리의 전시'였을 것이다.


나는 이 완벽한 질서 속을 걸으며, 질서가 곧 욕망의 표현임을 생각한다. 인간이 무언가를 완벽하게 통제하고 싶어 한다는 것은, 그만큼 그것을 소유하고 싶어 한다는 강렬한 욕망의 반증이다.


통제된 정원과 무한한 도시의 경계

이 사진이 포착한 상궁(Upper Belvedere) 테라스에서 하궁 쪽, 그리고 그 너머의 빈 시내를 바라보는 구도는 그 메시지를 가장 극적으로 전달한다. 이 뷰는 '카날레토 뷰(Canaletto Blick)'라 불리며, 예부터 빈의 가장 상징적인 전망으로 꼽혀왔다.


길게 뻗은 정원의 긴 선이 시야를 멀리 인도한다. 그 시선이 도달하는 종착점에는 첨탑과 돔으로 이루어진 빈의 스카이라인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저 멀리 고전적인 건축물의 상징인 슈테판 대성당의 첨탑이 보인다.

여기에는 두 가지 세계가 극명하게 대비된다.

정원: 완벽하게 통제된 영역, 외젠 공자가 성취한 부와 명예가 응축된 과거의 영역이다.

도시: 질서 정연한 정원을 넘어 무질서하게 뻗어 나가는 건물들, 인간들이 생활하고 경쟁하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재와 미래의 영역이다.


외젠 공자는 매일 아침 이 경계선에 서서 무엇을 생각했을까? 그는 자신이 만들어낸 완벽한 세계(정원)를 내려다보며, 자신이 정복했던 '세계'(빈 시내와 합스부르크 제국)를 조망했을 것이다. 이 뷰는 그에게 끊임없이 "나의 성공은 이토록 크고 아름답다"라고 말해주는 거대한 자화상이었으리라.


황금빛 욕망, 클림트의 'The Kiss’

벨베데레 궁전이 현대인에게 던지는 또 하나의 강력한 '욕망의 메시지'는 단연 상궁에 소장된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의 걸작들이다. 그중에서도 《The Kiss》는 벨베데레의 심장부와 같다.


바로크 시대가 지나고 20세기 초, 빈 분리파 운동을 이끌었던 클림트의 작품은 외젠 공자 시대와는 또 다른 형태의 욕망을 담고 있다. 화면을 가득 채운 황금빛 장식은 당시 빈의 부르주아 계층이 추구했던 화려함과 물질적 풍요를 상징한다.


그러나 이 찬란한 황금 속에 갇힌 두 연인의 모습은 단순한 행복이 아닌, 지독한 고독과 집착을 동시에 보여주는 듯하다. 황금의 화려함은 덧없는 인간의 감정을 영원히 보존하려는 듯 보이지만, 그 강렬함 뒤에는 현대인의 소외와 불안이 숨겨져 있다.


궁전의 건축 양식(바로크)과 내부의 예술 작품(클림트의 상징주의)은 시대는 다르지만,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 즉 소유와 과시, 그리고 영원성에 대한 갈망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연결되어 있다. 벨베데레는 단순히 아름다운 유적이 아니라, 유럽 예술사의 큰 흐름 속에서 인간 욕망의 변천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공간인 것이다.

나의 정원은 어디에 있는가

여행을 끝내고 사진 속 장엄한 풍경을 다시 들여다본다. 나는 여기서 단순히 아름다운 정원과 명화를 본 것이 아니라, 성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인간의 무서운 집념을 보았다. 외젠 공자의 삶이 완벽한 질서를 통해 권력을 유지하려 했다면, 클림트의 예술은 화려한 포장지를 통해 내면의 불안을 감추려 했다.


결국, 벨베데레 궁전은 관람객에게 묻고 있다.

"당신은 당신의 삶에서 무엇을 통제하고, 무엇을 소유하며, 어떤 형태로 자신의 성공을 전시하고 있는가?"


"당신의 '카날레토 뷰'에는 어떤 풍경이 담겨 있으며, 당신의 '정원'은 어떤 질서로 다듬어지고 있는가?"


완벽한 정원은 누군가의 치열한 삶과 집념의 결과였다. 그 치열함을 마주하며, 나는 오늘 나의 삶에서 내가 통제하고 싶어 하는 영역과, 나아가야 할 영역 사이의 '욕망의 경계선'을 다시 한번 그려본다.





2025년 11월 30일

- 신점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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