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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의 고향에서, 나의 고향을 생각하다

샤오싱의 흰 담장 아래에서 만난, 한 작가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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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오싱에 내리던 그날, 비는 오래된 도시의 숨소리처럼 조용히 떨어지고 있었다. 도시의 흰 담장은 물기를 머금어 더 깊은 회색으로 번져 있었고, 어딘가에서 들려오던 물소리는 이곳이 ‘강남 수향(江南水鄕)’이라 불리는 이유를 조용하게 말해 주었다. 그 길의 끝에, 루쉰이 있었다. 벽화 속 그는 담배를 든 채 어떤 단념과 결의가 섞인 눈빛으로 사람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표정은 내가 교과서에서 만났던 루쉰이 아니었다. 이곳에서 만난 루쉰는 ‘고향에서 다시 태어난 작가’처럼 더 날카롭고, 더 따뜻했다.


루쉰의 고향은, 그의 문학의 원형이다


루쉰의 글을 읽을 때마다 그의 문장은 굉장히 냉정한데도 어딘가에 묘한 따뜻함이 숨어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 따뜻함의 뿌리는 아마도 이곳, 그의 유년을 품었던 샤오싱의 자연과 사람들일 것이다. 백초원(百草園)에 들어서자 풀잎은 빗방울을 튕겨내며 반짝였고, 아이들이 뛰놀았을 법한 작은 공간은 시간이 멈춘 듯 고요했다. 그가 “희미한 빛과 풀 냄새 속에서 상상력을 키웠다”라고 말했던 그 풍경이 지금도 거의 그대로 남아 있었다. 세월이 흘렀음에도 변하지 않은 어떤 향기, 어떤 기억. 그것이 루쉰의 문학 속에서 삶을 바라보는 ‘슬픔 속의 연민’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


삼미서옥에서 만난 ‘소년 루쉰’


삼미서옥(三味書屋)의 오래된 책상 앞에 서니 문득 그가 쓴 문장 하나가 떠올랐다. “나는 늘 창문 너머로 자유의 빛을 바라보았다.” 교실은 작고 다소 어두웠다. 책상 위에 놓인 패와 붓, 다 쓰러져가는 듯한 나무 연장은 그가 배움 속에서 얼마나 많은 질문을 숨겨야 했는지 조용히 보여주고 있었다. 소년 루쉰이 여기서 처음으로 ‘왜 우리는 이런 방식으로 살아야 하는가’ 질문을 품었을지 모른다. 그 질문이 훗날 중국 사회 전체를 향한 문학적 비판으로 자라났다는 사실이 참 놀랍기도 했다.


샤오싱의 비는, 그의 문장을 닮아 있었다


샤오싱의 골목길은 비가 내릴 때 가장 아름답다. 돌바닥에 고인 작은 웅덩이는 검은 기와와 흰 담장의 윤곽을 거꾸로 품고 있었고, 길가의 대나무는 바람에 흔들리며 부드럽게 비를 털어냈다. 그 풍경을 바라보는데 루쉰의 문장이 마음속에서 천천히 올라왔다.


“희망이란 원래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다. 마치 땅 위의 길과 같다. 사람들이 많이 걸으면 그것이 길이 된다.”


그의 문장이 왜 세계 문학에서 지금까지 살아 있는지 샤오싱의 풍경은 조용히 설명해 주고 있었다. 삶의 비극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그 속에서 길을 찾으려는 투명한 의지. 그것이 루쉰를 루쉰이게 만든 힘이었다.


그리고, 나의 고향을 떠올렸다


낯선 도시의 오래된 담장 앞에서 나는 문득 아주 오래된 내 기억 한 조각을 떠올렸다. 빗속에서 신발을 말리던 어린 날, 돌아올 어머니를 걱정하며 불을 지펴보던 겨울, 작은 마음 하나로 하루를 건너던 그 시절. 루쉰이 고향을 떠나 더 큰 세계를 바라보았듯, 나 역시 먼 길을 돌아와 비로소 고향의 의미를 깨닫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누구나 고향이라는 보이지 않는 뿌리를 품고 살아간다. 그 뿌리가 삶의 언저리에서 불쑥 올라와 우리의 하루를 붙들어주는 날이 있다. 샤오싱에서 만난 루쉰는 단지 중국의 작가가 아니라 ‘고향을 떠난 모든 사람과 함께 나이 드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루쉰의 고향을 걷는 일은 결국, 나 자신을 걷는 일이다


돌아오는 길, 빗물에 젖은 루쉰의 초상이 노을빛을 받아 흐릿해지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루쉰의 고향을 걷는 일은 중국의 근대사를 배우는 일이 아니라, 내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다시 묻는 일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질문 앞에 서는 용기야말로 그가 남긴 가장 위대한 유산일지도 모른다.





2025년 12월 10일

-신점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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