닝보에서 배운 느린 시간
여행을 오래 하다 보면, 도시마다 고유의 ‘속도’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상하이는 빠르게 흐르는 강물 같고, 항저우는 호수처럼 고요하게 번진다.
그리고 닝보는… 마치 오래된 서가(書架) 앞에서 책장을 넘기는 동작처럼, 천천히 그리고 부드럽게 움직이는 도시였다.
천일각(天一阁)으로 들어서는 길목에서 나는 그 ‘느린 속도’를 처음 발견했다. 비가 잠시 스친 뒤의 공기는 눅눅했지만, 나무와 돌이 머금은 그 냄새가 오히려 공간을 더 깊게 만들었다. 시간이 오래 쌓인 장소는 대개 공기가 무겁기 마련인데, 천일각의 공기는 묘하게 가벼웠다. 마음을 눌러 앉히는 게 아니라, 그저 조용히 손을 잡아주는 느낌에 가까웠다.
정원 안쪽으로 조금 들어서자 판친(范钦)의 동상이 나타났다. 그 앞에 멈춰 서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돌로 만든 인물상임에도 그의 표정은 놀라울 정도로 살아 있었다. 책을 꺼내 들고 세상에 무엇인가를 전하려는 순간의 얼굴. 450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그의 시선은 아직도 저 멀리 어디론가 닿아 있는 듯했다.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무엇이 한 사람으로 하여금 평생의 시간과 재산을 들여 도서관을 만들게 했을까. 천일각은 단지 책을 모아둔 건물이 아니다. 그 속에는 ‘지식을 지켜야 한다’는 기나긴 결심이 담겨 있다. 그 결심은 시대의 전쟁도, 권력의 변동도 이겨내며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동상 뒤편 벽에 새겨진 부조를 바라보며 나는 그 시대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 보았다. 책이 곧 권력이던 시절, 그리고 사유(思惟)가 어디로 향하느냐에 따라 한 나라의 운명이 달라지던 시절. 그때 판친 이 지키고자 했던 것은 어쩌면 책장이 아니라 ‘사람의 정신’이었을 것이다.
천일각을 나서 마작박물관으로 향하는 길, 나는 또 다른 세계로 발을 옮기고 있었다. 천일각이 ‘지식의 공간’이라면, 마작박물관은 ‘삶의 공간’이었다.
유리 안에 조용히 놓여 있는 마작패들을 처음 마주했을 때, 그렇게 다양한 종류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놀랐다. 돌패, 상아패, 뼈와 대나무를 결합한 패, 영국 수출용 패, 계절 조커 패, 앵무문 패… 문양 하나하나, 색 하나하나에 사람들의 미감과 시대의 기술이 담겨 있었다.
나는 그 패들을 바라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사람들은 책으로 세상을 이해했고, 마작으로 하루를 살아냈다는 것을. 하나는 정신을 위한 도구였고, 다른 하나는 일상의 즐거움을 위한 도구였다. 하지만 둘 다, 결국은 사람의 삶을 지탱한 것들이다.
박물관 한쪽에 놓인 영국식 마작패를 보며 나는 한동안 발길을 떼지 못했다. 문양이 섬세하고 부드러워 마치 서양의 티포트 세트를 보는 듯했다. 문화가 다른 곳으로 건너가면 그 모습도 조용히 변한다. 하지만 그 본질은 여전히 남아 있다. 손끝으로 패를 굴리던 사람들의 웃음, 한 판에 모든 운을 걸던 긴장감, 그리고 그 순간을 함께하던 사람들의 온기.
천일각의 고요함에서 시작된 여행은 마작박물관에서 ‘삶의 소리’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 두 세계가 어쩌면 같은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시간을 남기고 싶어 한다. 책으로, 돌패로, 벽화로, 건물로. 그 모든 것은 결국 “내 삶이 여기에 존재했다”는 작은 증표들 아닐까.
숙소로 돌아가는 길, 닝보의 바람이 딱 알맞은 온도로 불어왔다. 크게 특별할 것 없는 도시처럼 보이지만 마음속에 은근한 잔향을 남기는 도시. 소란스러움 대신 깊이를 주는 도시.
나는 그날 닝보에서 삶의 속도를 다시 배웠다. 빠르게 지나가는 길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잠시 멈춰 바라볼 때 더 많은 것이 보인다는 것. 그리고 천천히 걷는 시간이 오히려 나를 더 멀리 데려간다는 것을.
2025년 12월 9일
- 신점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