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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의 밤을 지나, 초대받은 바다로

따알 화산이 다시 깨어났던 그날


따알 화산이 다시 깨어났던 그날,

나는 따가다이 언덕에서 화산을 눈앞에 두고 서 있었다. 호텔에 머무를 수 있을 거라 믿었던 계획은 엘리베이터가 멈춘 순간 무너졌다. 고층 복도는 반쯤 꺼진 전등 아래 길게 이어져 있었고, 초청자는 휴대폰 불빛을 켜고 “여기서 내려가야겠어요”라고 조용히 말했다. 그는 이 호텔의 지분을 가진 사람이었다. 늘 머물던 자신의 방이 있었지만, 그날만큼은 그 방조차 안전을 보장하지 못했다. 우리는 함께 올라갔다가, 함께 다시 내려왔다. 호텔의 문이 닫히고, 이재민들이 체육관을 채우기 시작하던 그 밤. 나는 여행자와 현지인의 경계가 얼마나 얇은지 처음으로 똑똑히 이해했다.


바탄가스에서 만난 짧은 숨


그날 밤 우리는 남쪽으로 이동해 바탄가스의 해안 리조트에 도착했다. 따가 따이를 떠날 때까지 이어졌던 화산재 냄새가 이곳에서는 희미해지고, 창밖의 바다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요했다. 피난을 온 것도 아니고, 관광을 온 것도 아닌 그 어떤 이름으로도 정의하기 어려운 하루. 그러나 그 고요한 밤이 내 마음을 다시 고르게 만들어주었다. “한 곳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다음 날 아침, 초청자는 그렇게 말했다. 우리가 향한 곳은 지도에서도 쉽게 찾을 수 없는 회원제 해안 단지, **Punta Fuego(푼타 페우고)**였다. 입구에서 경비가 차량 번호를 확인할 때, 나는 어제와 오늘이 얼마나 다른 세계인지 실감했다. 어제는 누구도 들어갈 수 없던 호텔의 문 앞에서 서 있었고, 오늘은 초대받은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 문이 나를 향해 열리고 있었다.


에메랄드 바다가 숨기고 있던 세계


Punta Fuego로 들어가는 언덕을 넘자 풍경은 갑자기 바뀌었다. 바다는 청록에서 딥블루로 이어지고, 절벽 위에 세워진 하얀 빌라들은 바다를 향해 조용히 숨을 쉬고 있었다. 레스토랑 테라스에 앉아 바다를 바라볼 때, 나는 말없이 들이마신 숨이 몸 안을 맑게 비우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전날 따가 따이에서 불 꺼진 복도를 따라 내려오던 순간과는 너무도 다른 평온이었다. 불안이 사라진 자리에 빛과 바람과 물결이 들어왔다.


절벽 위에서 바라본 바다는 왜 그렇게 아름다웠을까


초청자가 안내한 길을 따라 우리는 절벽 가까이 자리한 빌라들을 걸었다. 스페인풍 기와지붕, 바다를 향해 열려 있는 넓은 창, 파란 타일의 작은 풀… 이곳의 사람들은 바람의 방향, 햇빛의 움직임, 그리고 바다가 색을 바꾸는 시간을 집 안에서 천천히 감상하며 산다고 했다. 바로 하루 전, 우리는 화산재가 날리던 하늘 아래 있었고, 오늘은 이 평온의 중심에 서 있었다. 세상은 이렇게 두 개의 얼굴을 동시에 품고 있다는 사실이 경이롭기까지 했다.


여행이 열어준 두 개의 문


하루 전, 자연은 문을 닫았다. 호텔의 문도, 엘리베이터도, 우리가 머무르려던 방도 모두 닫혔다. 그 다음날, 사람의 초대는 또 다른 문을 열었다. 그 문은 일반 여행자가 쉽게 경험할 수 없는 필리핀 상위 1%의 바다로 이어졌다. 여행은 종종 이런 식으로 예상하지 못한 문을 열어 보이며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quietly 질문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깨달은 한 문장


화산의 밤과 Punta Fuego의 낮 사이에서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여행은, 내가 계획하지 않은 순간에 나를 가장 깊이 깨운다.” 그 바다는 그날의 나를 조용히 비춰주는 또 하나의 창문이었다.





2025년 12월 13일

- 신점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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