팡아만에서 배우는 세계의 균형
사람들은 여행자에게 묻는다.
“지금 그 나라, 위험하지 않아?”
그 질문 속에는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우리는 점점 뉴스로 세상을 판단하고, 헤드라인으로 안전을 재단한다.
하지만 세계는 언제나 뉴스보다 넓다.
태국 남부 팡아만에서 나는 그 사실을 다시 배운다.
수천만 년 동안 바다 위에 서 있었을 석회암 바위는 인간의 불안 따위에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이 바위들은 전쟁을 모른다. 평화를 선언하지도 않는다.
다만 존재함으로 균형을 증명한다.
인간은 갈등을 만들고 그 갈등을 설명하기 위해 끝없이 언어를 덧붙인다.
하지만 자연은 설명하지 않는다. 설득하지도 않는다.
그저 그 자리에 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이곳에서 ‘평화’라는 단어를 다시 정의하게 된다.
평화는 누군가가 합의해서 얻는 결과가 아니라 자연이 이미 알고 있는 상태인지도 모른다.
바다는 흐르고,
바위는 서 있고,
인간은 그 사이를 잠시 지나간다.
여행은 그 사실을 잊지 않게 만드는 행위다.
내가 세계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 내가 사는 시대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몸으로 체감하는 일이다.
팡아만에서 나는 전쟁을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시간에 대해 생각한다.
이 바위가 겪어왔을 수많은 인간의 흥망성쇠를 떠올린다.
그리고 깨닫는다.
우리가 지금 겪는 혼란도 이 바위에게는 지나가는 파도 하나쯤일 거라는 사실을. 그 깨달음은
사람을 겸손하게 만든다.
그리고 조금 더 덜 싸우게 만든다. 어쩌면 여행의 역할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사람 하나를 조금 덜 날카롭게 만드는 일일지도 모른다.
팡아만은 그렇게 말없이 가르친다. 세상이 아직 괜찮다고,
자연은 이미 평화의 답을 알고 있다고.
2025년 12월 14일
- 신점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