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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먼저 건너가 보는 일

2016년 베이징 기록


2016년,

나는 베이징여유국의 초대를 받아

중국 베이징을 방문했다.


그 일정은

관광객을 위한 동선과는 전혀 달랐다. 볼거리를 나열하는 여행이 아니라,

중국이라는 나라가 어떤 방향으로 자신을 설계하고 있는지를 직접 보여주는 여정에 가까웠다.


그 여정의 첫 장면은 중관촌(中关村)이었다.

중국의 실리콘밸리라 불리는 곳. 기술과 자본, 인재와 플랫폼이

하나의 유기적인 흐름으로 움직이고 있는 공간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인터넷+ 브랜드 인큐베이터 센터’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한 바퀴를 도는 동안, 나는 이미 안에 있었다.

특별한 조작을 한 것도 아니고, 어떤 정보를 입력한 기억도 없다.

그저 공간을 따라 걷고, 설명을 듣고, 전시된 구조를 이해하려 애썼을 뿐이다.


그런데 모든 동선을 마치고 마지막 공간에 도착했을 때, 벽면의 대형 화면에

내 스마트폰과 연관된 정보들이 정리되어 나타났다.


순간적으로 놀랐고, 등골을 스치는 섬뜩함도 느꼈다.

그러나 곧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건 보여주기 위한 기술이 아니다. 이미 사용되고 있는 세계다.”


그곳의 기술은 실험이 아니라 현실이었고, 미래가 아니라 현재였다.

우리가 아직 체감하지 못했을 뿐, 이미 작동하고 있는 시스템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을 뿐이었다.


그날 나는 미래를 본 것이 아니라, 이미 시작된 현재를 뒤늦게 인식했을 뿐이었다.


이후 방문한 곳은 칭화대학교였다. 중국을 대표하는 명문대이자, 국가 전략 인재를 길러내는 곳.


과학 실험실에서 본 기술들은 감탄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 기술들이 곧 사회로 내려올 것이라는 분명한 예감이 들었다.


그러나 가장 오래 발걸음을 멈추게 한 것은 실험 장비가 아니라 건물 한쪽 벽에 걸린 사진들이었다.

칭화대학교 출신 인물들의 얼굴.


그들은 이미 역사가 된 사람들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중국 사회의 방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인물들이었다.


그 앞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을 했다.

“이 나라는 기술을 키우는 데서 멈추지 않고, 사람을 통해 시대를 움직이려 하는구나.”


돌아와서 생각해 보면 그 여정은

즐거운 여행이라기보다 많은 질문을 남긴 시간이었다.


중관촌에서는 시스템을 보았고,

칭화대에서는 기술과 사람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보았다.

그 경험 이후 나는 여행이라는 단어를 다시 정의하게 되었다.


여행은 타고난 집시의 방랑이 아니라,

시대를 먼저 건너가 보고 다시 돌아오는 역할일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나는 기록을 남긴다.

내가 보고 온 것을 모두가 직접 볼 필요는 없다.


하지만 누군가는 정보에 닿을 기회를 조금이라도 더 일찍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직 알아볼 계기가 없었을 뿐인 세계, 생각해 볼 여유가 없었던 흐름.


그 문 앞까지 함께 걸어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여행을 하고, 기록을 남긴다.

풍경보다 사람을 보고, 사람보다 시대의 방향을 조금 먼저 바라보았던

한 여행자의 기록으로.




2025년 12월 18일

-신점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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