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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으로 남은 질문

잉카인은 자연을 실험하지 않았다, 이해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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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오르다 문득, 땅이 꺼진 것처럼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자 그것은 구멍이 아니라 원형이었다.


모라이는 내려다보는 유적이 아니라,

천천히 안으로 끌어들이는 장소다.

계단은 아래로 향하지만, 시선은 오히려 위로 열린다.


잉카인은 이곳에서 작물을 키웠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들은 작물을 키운 것이 아니라

자연을 관찰하는 태도를 키웠다.


높이가 다르면 바람이 다르고, 바람이 다르면 온도가 달라진다.

그 미세한 차이를 기록하지 않고, 몸으로 기억하기 위해

잉카인은 돌을 쌓았다.


모라이는 과시의 유적이 아니다.

왕의 무덤도, 신에게 바친 제단도 아니다.

대신 여기에는 “우리는 자연 앞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조용한 질문만 남아 있다.


가장 아래층에 서면 하늘은 원이 되고, 그 원 안에서 나는 작아진다.

작아진다는 감각은 때로 가장 큰 배움이 된다.


지금의 우리는 자연을 정복했다 말하지만,

잉카인은 자연을 배우는 법을 먼저 알았다.

그래서 그들의 문명은 돌로 남았고, 질문으로 남았다.


모라이를 떠나며 나는 답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괜찮았다.

좋은 여행은 언제나 답보다 질문을 남기기 때문이다.




2025년 12월 19일

- 신점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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