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가 정답이 된 시대, 잉카의 물길이 던지는 질문
마라스 염전에서 내가 처음 본 것은 소금이 아니었다. 산 위에서 흘러내리는, 거의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작은 물줄기였다.
그 물은 하루도 쉬지 않고 흐르고 있었다. 24시간,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같은 속도로 내려왔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으며 그저 멈추지 않았다. 마라스의 소금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햇볕이 강한 날에는 조금 더 단단히 굳고, 구름이 머무는 날에는 더디게 쌓인다. 사람은 그 과정을 재촉하지 않고 자연이 허락하는 만큼만 받아들인다.
수천 개의 소금 웅덩이가 있지만 그 시작은 결국 하나의 물길이다. 누군가 그 물길을 막아버리면 모든 염전이 함께 멈춘다. 그래서 마라스 염전은 개인의 소유가 아니다. 지금까지도 마을 공동체가 함께 관리하며 물과 길, 질서를 공유한다. 소금은 각자의 손에서 생산되지만, 그 바탕이 되는 조건은 모두의 몫이다. 이는 경쟁보다 합의를, 속도보다 지속을 선택한 문명의 결과다.
이곳의 소금을 맛보았다. 짠맛이 먼저 튀어나오지 않고 입안에서 천천히 퍼지며 깊은 여운을 남겼다. 그 맛에는 아마도 기다린 시간과 나눠 가진 질서가 함께 녹아 있었을 것이다.
모라이(Moray)에서는 잉카의 또 다른 얼굴을 보았다. 원형 계단식 밭에서 작물의 가능성을 시험했던 모라이가 '질문하는 문명'이었다면, 마라스는 '견디는 문명'이었다. 실험으로 가능성을 넓히고, 기다림으로 삶을 유지한 잉카는 자연을 정복하는 대신 협업을 택했다.
우리는 속도가 효율이 되고, 효율이 곧 정답이 된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나 마라스 염전은 우리에게 다른 질문을 던진다.
“얼마나 빨리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 유지할 것인가.”
소금은 기다림으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어떤 문명은 그 기다림 덕분에 지금까지 우리 곁에 남아 있다.
2025년 12월 20일
-신점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