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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숲이 되는 시간, 만봉림

배경을 거부한 산, 시간이 만든 조각


산은 대개 배경이 된다.

사진의 뒤편에 놓이거나, 여행의 목적지를 설명하는 명사가 된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산이 배경이 되기를 거부한다.


귀주성(구이저우) 성 만봉림에 서면, 산은 숲처럼 사람을 둘러싸고 시선의 중심으로 다가온다.

처음 이 풍경 앞에 섰을 때, 나는 어디서부터 바라봐야 할지 잠시 망설였다.


시작과 끝이 보이지 않는 봉우리들.

서로를 가리지 않으면서도 빼곡히 서 있는 모습은 '전망'이라는 단어로는 담기지 않았다.

이곳에서는 한눈에 보는 대신, 천천히 오래 바라보는 쪽이 더 자연스러웠다.


만봉림의 산들은 뾰족하지도, 위압적이지도 않다.

대신 단단하고 묵묵하다.


마치 수많은 사람이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오랜 시간 같은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산과 산 사이에는 평야가 있고, 그 평야 위에는 논과 마을이 있다.

자연은 이곳에서 결코 인간을 몰아내지 않았다.


이 땅의 지형은 시간이 만든 결과물이다.


물은 서두르지 않았고, 산은 저항하지 않았다.

수억 년에 걸쳐 물이 돌을 녹이고, 돌이 물을 받아들이는 동안 이곳에는 지금의 봉우리 숲이 완성되었다.


그래서일까.

만봉림에서는 '형성되었다'는 말보다 '살아남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봄이 되면 이 풍경은 또 한 번 변한다.

봉우리 아래 평야가 노란 유채꽃으로 채워진다.


회색 석회암의 단단함과 유채꽃의 부드러운 색감이 겹칠 때, 이곳은 마치 수묵화 위에 담채를 올린 듯한 풍경이 된다.


유채꽃은 장식이 아니다.

이곳에서는 농사의 리듬이고, 사람의 삶을 알리는 신호다.


꽃이 피면 밭이 살아 있고, 밭이 살아 있다는 것은 마을이 여전히 호흡하고 있다는 뜻이다.


나는 그 노란 들판을 내려다보며 이곳이 관광지로만 불리지 않기를 바랐다.

풍경이 아름답다는 말은 충분하지만, 그 말만으로는 이곳의 시간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지역에는 역사서에 크게 기록된 영웅도, 기념비적인 사건도 많지 않다.


오히려 그 점이 만봉림을 지금까지 만봉림으로 남게 했다.

전쟁의 통로도, 권력의 중심도 아니었기에 이곳은 자연이 주인이 되는 방식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산을 피하지 않고 산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산을 허물지 않고 산의 간격에 맞춰 논을 만들었다.


자연을 바꾸기보다 자연에 맞춰 살아가는 방식이 이 풍경의 기본 질서였다.


만봉림을 걷다 보면 이곳이 말을 아끼는 장소라는 생각이 든다.


빠르게 이동하는 사람에게는 아무 말도 건네지 않는다.

그러나 잠시 멈춰 서서 안개가 걷히는 속도를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조용히 이야기를 건넨다.


"이곳에서는 시간이 먼저다."

나는 그 말 없는 문장을 봉우리들 사이에서 들었다.

산은 움직이지 않았고, 나는 그 앞에서 조금 느려졌다.


어쩌면 여행이란 새로운 장소를 많이 보는 일이 아니라, 한 장소 앞에서 얼마나 오래 머물 수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묻는 일인지도 모른다.


만봉림은 그 질문을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던지는 곳이다.

산이 숲이 되는 시간 속에서, 나는 풍경을 보았다기보다 시간의 결을 만지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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