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먼저 사람이었던 무측천
중국 역사 5천 년을 통틀어 유일하게 ‘황제’라는 칭호를 사용한 여성, 무측천(재위 690~705).
그녀의 이름 앞에는 언제나 극단적인 수식어가 따라붙습니다. '잔혹한 악녀'라는 유교적 멸시와 '탁월한 정치가'라는 현대적 찬사. 하지만 나는 그 모든 평가보다 먼저, 그녀를 한 사람의 ‘생존자’로 바라보고 싶습니다.
여성에게 선택지가 없던 시대, 그녀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나는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꿈이 아니라 생존에서 출발한 삶
무측천의 출발점은 화려한 포부가 아닌 ‘후궁’이라는 배치된 삶이었습니다. 당 태종 사후, 관례에 따라 감업사로 출가했을 때 그녀의 정치 생명은 끝난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울거나 체념하는 대신 권력의 흐름을 읽었습니다. 왕 황후와 소 숙비의 갈등을 역이용해 환궁에 성공한 것은 단순한 운이 아니었습니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이상이 아니라 하루를 더 버티는 능력이었고, 그 절실함은 곧 철저한 판단력이 되었습니다.
유리천장을 깨부순 인재 등용 혁명
권력의 정점에 선 무측천은 남자가 되려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여성 특유의 세밀함을 정치적 언어로 바꾸었습니다.
기득권 타파: 당시 주류였던 ‘관롱 집단(북방 귀족)’을 견제하기 위해 가문이 아닌 능력을 보았습니다.
과거제의 정착: 신진 관료들을 대거 등용하여 사회적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놓았습니다.
그녀는 권력을 개인의 영광으로 소비하지 않았습니다. 제도를 통해 권력을 구조로 옮겼고, 그 결과 당나라는 단순히 강한 나라가 아닌 '작동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무자비(無字碑), 권력의 끝에서 남긴 질문
무측천은 자신의 비석에 단 한 글자도 새기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자신의 업적을 텍스트로 규정하지 않고 후대의 평가에 맡기겠다는 대범 함이자, 승리의 서사 뒤에 숨겨진 책임의 무게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권력의 정점에서 느꼈을 고독과 수많은 비난을 그녀는 정면으로 감내했습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현대적 관점에서 무측천은 유리천장을 깨부순 전략가이자 최고의 CEO와 같습니다. 그녀의 삶은 우리에게 중요한 문장을 남깁니다.
"자격은 허락받는 것이 아니라, 선택을 통해 증명되는 것이다."
우리는 황제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자기 삶의 주인이 될 필요는 있습니다. 출발선이 어디든 배우고, 판단하고, 다시 선택하는 능력이 있다면 우리 역시 자신만의 역사를 쓸 수 있습니다.
남는 얼굴
무측천을 떠올리면 나는 피 묻은 왕관보다 ‘책’을 먼저 떠올립니다. 깊은 밤 홀로 앉아 세상의 흐름을 읽던 한 여인의 얼굴을 떠올립니다.
그녀는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자기 삶을 타인의 이야기로 맡기지 않았습니다. 그것만으로도 무측천은 오늘날 우리에게 다시 읽힐 자격이 충분합니다.
2026년 1월 4일
- 신점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