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남고, 삶은 물 아래로 잠겼다

괴산 산막이옛길, 사라진 마을이 남긴 시간의 선을 걷다

길을 걷다 보면 문득 알게 된다.

이 길이 처음부터 ‘걷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음을.

산막이옛길은 풍경이 아름다워 남은 길이 아니라,

사람이 살았기 때문에 남겨진 길이다.


‘산막이’라는 이름은 산이 막혀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곳,

산이 사람의 발걸음을 가로막은 자리에서 비롯되었다.


실제로 이곳은 오래도록 육로가 닿지 않던 오지였다.

마을 사람들은 산을 넘는 대신 물을 건너야 했다.

이 길은 산막이마을 사람들이 나루터로 가기 위해

매일같이 오르내리던 유일한 생활로였다.


아이들은 이 길을 걸어 학교에 갔고,

어른들은 장날이면 이 길 끝에서 배를 탔다.

혼례와 장례, 세상의 모든 소식이

이 길과 물길을 통해 오갔다.


그러나 괴산댐이 들어서고 물이 차오르면서

마을은 호수 아래로 영영 잠겼다.

집은 사라졌고, 길만 남았다.

그렇게 이 길은 ‘옛길’이 되었다.


과거가 되어버린 삶의 흔적,

그러나 아직 지워지지 않은 기억의 선.


겨울의 산막이옛길은 그 기억을 가장 또렷하게 드러낸다.

잎을 떨군 나무들 사이로

얼음과 물이 맞닿은 경계가 보인다.

그 선은 마치 사라진 마을과 남겨진 길의 경계처럼 서늘하다.


사람들은 이제 이 길을 ‘산책로’라 부르지만

본래 이 길은 ‘돌아오는 길’이었다.

떠났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존재했던 길.

그래서 이 길에는 언제나 기다림의 정서가 배어 있다.


겨울에 이 길을 걷는다는 것은

풍경을 보는 일이 아니라 시간을 밟는 일에 가깝다.

얼음 위를 스치는 바람과 데크 아래에서 울리는 물소리가

사람이 살았던 시간을 조심스럽게 불러낸다.


산막이옛길은 묻는다.

우리는 지금 길을 걷는 것인가,

아니면 사라진 누군가의 삶을 지나치고 있는 것인가.




2026년 1월 3일

- 신점숙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웃음으로 인간을 지킨 사람, 찰리 채플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