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플린은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흔히 찰리 채플린을 ‘웃긴 배우’로 기억한다.
그러나 그의 웃음은 사람을 즐겁게 하기 위한 장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세상에 대한 마지막 저항이었다.
채플린의 삶은 처음부터 불공정했다.
빈민가, 고아원, 거리, 그리고 노동. 그에게 세상은 한 번도 친절하게 열린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너무 일찍 알았다.
가난은 개인의 무능이 아니라 구조가 만든 상처라는 것을. 그는 가장 초라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세웠다.
이름 없는 떠돌이. 세상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사람. 그러나 그 인물은
끝까지 품위를 잃지 않는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고, 굶주려도 웃음을 포기하지 않는다.
채플린은 말하지 않는다.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보여준다.
인간은
기계보다 느리고 효율적이지 않으며 자주 실수한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것이 인간의 결함이 아니라 인간다움의 증거라는 것을. 〈시티 라이트〉의 마지막 장면에서
눈먼 소녀는 그의 손을 통해 그를 알아본다. 보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순간, 인간은 서로를 이해한다.
채플린의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 연민이었다.
연약함과 연약함이 서로를 알아보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그는 〈위대한 독재자〉에서 웃음을 벗는다.
“우리는 서로 미워하도록 태어나지 않았다.”
그 말은 영화의 대사가 아니라 한 인간이 세상에 남긴 가장 진지한 고백이었다.
2026년의 우리는 더 빠른 세상에 살고 있다. 더 편리하지만 더 고립된 세상이다.
이 시대에 채플린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웃음을 잃지 말라고. 연민을 버리지 말라고. 인간을 효율로 판단하지 말라고.
찰리 채플린은 위대한 철학자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철학자보다 더 깊이 인간을 믿었다.
그리고 그 믿음은 지금도 우리에게 조용히 묻고 있다.
당신은 아직
인간의 편에 서 있는가.
2026년 1월 1일
- 신점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