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위에 세운 문명, 시선을 건너 관계가 되다
나는 한복을 입고 10년 동안 세계를 여행했다.
특별한 기획도, 거창한 이벤트도 아니었다.
그저 내가 나로 존재하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이었을 뿐이다.
그 10년 동안 세계는 반복해서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왜 그 옷을 입었는가. 불편하지 않은가. 사람들이 쳐다보지 않는가.
규정이 길을 비켜준 순간, 앙코르와트의 아이러니
때로는 거부당하기도 했다.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의 입구에서였다.
관리자는 내 한복을 한참 바라보더니 당혹스러운 말을 건넸다.
“당신의 옷이 너무 아름다워 관광객들이 사원에 집중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아이러니했다. 전통과 문명을 보존하기 위해 세워진 공간에서, 또 하나의 살아있는 전통이 등장하자 시스템은 그것을 통제하려 했다.
비슷한 일은 유럽의 오래된 유적지에서도 있었다. 관리자가 나를 제지하려다 말고 내 옷의 곡선을 한참 응시하더니, 아무 말 없이 먼저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허락도, 설명도 없었다.
그것은 아름다움 앞에서 규정이 잠시 길을 비켜준, 고요한 항복의 순간이었다.
복주머니에 담아 건넨 어느 나라의 시간
한복을 입고 다닐 때면 나는 늘 복주머니 하나를 지녔다. 그 안에는 한국의 동전들을 채워 넣었다. 아이와 함께 여행하던 가족이 사진을 요청하면, 나는 아이의 작은 손에 복주머니를 쥐여주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복을 담는 주머니의 의미와 동전에 새겨진 한 나라의 시간을.
아이들이 그 뜻을 다 이해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손안에 남겨진 것은 단순한 기념품이 아니라, 낯선 나라에서 온 다정한 기억이었다.
한복과 히잡, 문명을 나란히 세우는 옷
유럽의 어느 광장에서는 히잡을 쓴 여성이 아이들을 먼저 내 곁으로 밀어 넣었다. 사진을 찍게 한 뒤, 잠시 후 그녀 자신도 조심스럽게 내 옆에 섰다.
그날 광장에는 여러 나라 언론의 카메라가 있었고, 모든 앵글은 한복과 히잡이 나란히 선 그 장면으로 향했다. 나는 그때 알았다.
한복은 시선을 독점하는 옷이 아니라, 다른 문화를 안전하게 옆에 세우는 옷이라는 것을.
낯선 도시의 풍경이 된 '살아있는 문명'
슬로베니아 블레드섬에서는 유명 제과점 앞에서 즉석 모델이 되었다. 계약도, 연출도 없었다. 그저 그 공간의 공기에 한복이 너무 잘 어울린다는 이유 하나였다.
보스니아에서는 모르는 이의 결혼식장에 들어가 함께 춤을 추고 파티를 나누었다. 초대받지 않았지만 환영받았고, 구경거리가 아니라 축하의 일부가 되었다.
이런 일들은 수없이 반복되어 다 나열하기조차 어렵다. 10년의 세월 끝에 나는 이제 확신한다.
한복은 설명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그것은 살아 있는 몸 위에 올라타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세계와 관계를 맺는다.
문명은 차가운 돌덩이로만 남지 않는다.
때로는 한 사람의 몸 위에,
한 벌의 옷 위에
어엿하게 세워지기도 한다.
https://www.soodo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600042 - 수도일보 칼럼
2026년 1월 6일
- 신점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