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만든 얼음 위에서, 인간의 언어는 얼어붙었다

오늘, 나는 이미지 하나 앞에서 잠시 말을 잃었다


, 익숙한 작업 하나를 하다가 뜻밖의 충격을 받았다.

텍스트 몇 줄을 입력했을 뿐인데, 모니터 너머의 얼음은 형체를 갖춰 갈라졌고, 공기는 서늘하게 흔들렸으며, 고요한 침묵은 살아있는 영상이 되어 돌아왔다.


처음에는 그저 “기술이 참 좋아졌구나”라는 마른 감상이 스쳤다. 하지만 몇 초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이건 단순히 편리함의 진보가 아니라,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 믿었던 ‘감각’에 대한 근원적인 도전이라는 것을.


나는 그 얼음을 안다.

겨울의 무게를 견디다 못해 제 몸을 비틀던 얼음, 밟으면 파열음이 나기 직전 찰나의 숨을 고르는 그 팽팽한 긴장감을 안다. AI가 만들어 낸 장면은 그저 ‘그럴듯함’에 머물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기억하는 차가운 질감과 공감각적인 기억을 정확히 관통하고 있었다.


기술이 흉내 낼 수 없는 ‘침묵의 이유’


가장 놀라웠던 건 정교함이 아니라 ‘절제’였다.

무언가를 더 보여주려 과장하지 않고,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으며, 그저 묵묵히 보게 만드는 태도. 마치 노련한 다큐멘터리 감독이 “여기서부터는 말 대신 풍경이 말하게 하자”라고 결단 내린 침묵 같았다.


이제 AI는 이미지를 만들고, 영상을 빚으며, 심지어 공간의 분위기까지 설계한다. 기계가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감성을 효율적으로 출력해 내는 시대. 그 압도적인 속도 앞에서 나는 멈춰 서서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제, 인간인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더 빠르게 결과물을 뱉어내는 ‘기능공’이 될 것인가, 아니면 이 모든 현상 너머에서 무엇을 말할지 치열하게 고민하는 ‘관찰자’로 남을 것인가. AI는 완벽한 침묵을 생성할 수 있지만, 그 침묵이 왜 이 타이밍에 필요한지, 그 정적이 읽는 이의 마음에 어떤 파동을 일으켜야 하는지는 오직 인간만이 결정할 수 있다.


AI가 속도를 높일 때, 인간은 방향을 묻는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쓰기로 했다.

이 비현실적인 정교함 앞에서 도망치거나 외면하는 대신, 변화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 서서 부지런히 기록하기로 했다.


기술은 빛의 속도로 앞서가고 있다. 그러나 그 기술이 어디로 향해야 할지, 그 끝에서 우리가 어떤 가치를 마주해야 할지, 그 ‘방향’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어쩌면 끊임없이 질문하고, 기술이 놓친 미세한 ‘이유’를 찾아내며, 그 방향을 묻는 일. 그것이 속도의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에게 남겨진 가장 고독하고도 고귀한 역할일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 그 막중한 책임을 진 채 다시 펜을 든다.




2026년 1월 7일

- 신점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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