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가 길을 걷는 마을

통제하지 않는 삶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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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루(Zulu) 전통 마을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화려한 비즈 장식도, 둥근 초가집도 아니었다. 소였다. 소가 사람 사이를, 집과 집 사이를, 아무런 제지 없이 걸어 다니고 있었다.


놀라는 쪽은 늘 외부에서 온 사람이다. 이곳 사람들은 소를 쫓지 않는다. 그저 가만히 비켜설 뿐이다.


가축이 아닌 '생명 구조' 그 자체


줄루 사회에서 소는 단순한 가축이 아니다. 소는 공동체의 생명 구조 그 자체다. 소는 결혼을 가능하게 하고, 가문을 이어주며, 조상과 현재를 연결한다. 그래서 소를 함부로 사고팔거나 일상적으로 도축하지 않는다. 소는 의식이 있을 때, 공동체의 중대한 전환점에서만 자신의 생명을 내어준다.


이 마을에는 울타리가 거의 없다. 현대인의 눈에는 무질서해 보일지 모르나, 줄루에게 울타리는 '생명을 끊는 선'이다. 소를 가두는 행위는 소를 소유물로 전락시키는 행위이자, 조상으로부터 이어진 생명의 흐름을 막는 행동으로 여겨졌다.


소가 자유롭게 마을을 도는 것은 조상이 공동체를 살피고 있다는 상징이기도 하다.


통제하지 않으나 무책임하지 않은 방식


흥미로운 점은 소가 자유롭지만 결코 방임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마을 사람들은 누가 어느 소를 책임지는지, 어떤 가문에 속한 소인지 모두 알고 있다. 통제하지 않지만 무책임하지 않은 것, 이것이 줄루 공동체가 세상을 대하는 방식이다.


일부다처제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이는 권력의 상징이 아니라 '책임의 증명'이었다. 소를 충분히 가진 남성만이 여러 아내를 둘 수 있었고, 이는 그만큼 많은 생명을 부양할 능력이 있음을 의미했다.


첫째 아내는 가문의 중심이 되고, 다른 아내들 역시 각자의 독립된 집과 역할을 가졌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공동체의 미래로 길러진다.


땅을 깨우는 춤, 살아있음의 리듬


그래서 줄루 마을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은 개인의 감정이라기보다 공동체의 리듬처럼 느껴진다. 춤과 노래는 보여주기 위한 공연이 아니라 일상이며, 그들의 밝음은 가벼움이 아니라 삶의 고단함을 견뎌낸 자들의 단단한 태도다.


발로 땅을 세게 디디는 춤 동작은 잠든 조상과 땅을 깨우는 행위이며, 동시에 스스로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강렬한 몸의 언어다.


우리는 왜 울타리를 치는가


소가 길을 걷는 장면은 우리에게 본질적인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왜 모든 생명을 울타리 안에 두려 하는가."

안전을 위해서라고 말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타자를 신뢰하는 법을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줄루 마을에서 소는 가축이 아니라 이웃이다. 그리고 이웃과 경계 없이 섞여 사는 삶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오래된 본연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2026년 1월 8일

-신점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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