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장성은 왜 ‘쌀-도시-권력’의 교과서가 되었나

정착의 탄생, 볍씨라는 생존의 규칙





저장성(절강성)의 진정한 강점은 단일한 유적이나 화려한 풍경에 있지 않다. 문명이 태동하고, 성장하고, 마침내 비대해져 임계점에 도달하는 전 과정이 한 지역의 지층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 이곳의 비범함이다.


정착의 탄생, 볍씨라는 생존의 규칙

허무두(河姆渡) 유적에서 발견된 벼 이용의 흔적은 단순한 농업의 시작이 아니라, 인류사적 전환점인 ‘정착(sedentism)’의 탄생을 선언한다. 사람이 한 곳에 머물기 시작하면서 생산은 저장을 낳고, 저장은 분배를 낳으며, 분배는 마침내 공동체를 지탱할 규칙을 낳았다. 고고학적 관점에서 벼 재배의 지속과 강화는 곧 문명을 유지할 최소한의 ‘잉여’가 발생했음을 의미한다.


도시의 확장, 잉여가 빚어낸 문화의 밀도

남송(南宋)의 수도 임안(지금의 항저우)은 그 정착이 써 내려간 다음 페이지다. 정착이 만들어낸 잉여(surplus)는 시장을 키웠고, 시장은 도시의 규모를 확장했으며, 도시는 문화의 밀도를 유례없이 높였다. 항저우가 남송 시기 정치·경제·문화의 압도적 중심지로 번성했다는 사실은 ‘먹고사는 기술’이 어떻게 ‘도시를 경영하는 기술’로 확장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압축적인 사례다.


권력의 딜레마, ‘관리’가 ‘점유’로 변질될 때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도시가 비대해질수록 권력은 공동체의 ‘관리’가 아니라 개인의 ‘점유’가 되려 한다. 규칙을 만드는 자가 규칙 위에 서고 싶어지는 순간, 문명을 보호하던 유지 장치는 문명을 위협하는 위험 요소로 돌변한다. 이 치명적인 딜레마는 남송 말기에 이르러 극도로 선명해졌고, 그 파국을 상징하는 인물로 가사도(賈似道)가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다.


저장성, 문명의 생애주기를 담은 한 권의 책


나는 그래서 저장성을 ‘문명 그 자체’라고 부른다.


시작의 순수한 생명력(밥)


성장의 정점에 다다른 세련미(도시)


그리고 쇠퇴가 남기는 존재의 무거움(권력)


문명은 늘 이 세 단계를 밟으며 나아간다. 저장성은 그 모든 페이지를 한 권의 책처럼 묶어둔, 인류사의 살아있는 교과서다. 그 갈림길 위에서 역사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가 쌓아 올린 이 찬란한 도시의 끝은, 과연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가.




2026년 1월 18일

- 신점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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