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저우의 밤, 귀뚜라미 울음소리에 묻힌 제국의 운명
도시가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순간은 언제일까. 거대한 마천루가 들어설 때가 아니다. 사람들이 아무런 의심 없이 '내일'의 안녕을 확신할 때, 문명은 정점에 도달한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 순간 붕괴는 시작된다.
한복을 입고 중국 항저우의 거리를 걷는다. 옷자락에 스치는 바람 속에서 천 년 전 이곳을 '임안(臨安)'이라 불렀던 남송(南宋)의 냄새를 맡는다. 차와 비단, 그리고 밤낮을 잊은 향락의 냄새다. 당시 임안은 문명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세련됨을 보여주었다. 차를 마시고, 시를 읊으며, 정원을 가꾸는 일이 일상이 된 사회. '생활'이 곧 '문화'였던 시대였다.
하지만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짙은 법이다. 나는 서호(西湖)의 물안개 너머에서 남송의 마지막 재상, 가사도(賈似道)의 그림자를 본다. 제도의 정점에 서 있었던 그는 국경을 넘어오는 몽골 기병의 굉음보다, 자신의 손바닥 위에서 우는 귀뚜라미 소리에 더 귀를 기울였다. 그에게 문명의 번영은 영원할 것 같은 달콤한 착각이었고, 전쟁은 소란스러운 잡음일 뿐이었다. 고도로 발달한 문명이 어떻게 스스로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지는지, 그는 온몸으로 증명했다.
지금 내 눈앞의 항저우는 다시금 번영을 노래한다. 그러나 나는 화려한 야경 속에서 묻는다. 우리는 성공의 정점에서 무엇을 보고 있는가. 성공은 문명을 꽃피우지만, 그 문명을 지속시키는 힘은 오직 '겸손'과 '성찰'에서 나온다. 화려함에 취해 다가오는 겨울을 보지 못했던 귀뚜라미의 비극이, 단지 옛날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이 도시를 걷는 내내, 옷깃을 여미게 되는 이유는 밤바람이 차가워서만은 아니다.
2026년 1월 19일
-신점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