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멍’을 통과해 밖으로 나왔다
시장은 밤에 완성된다 ②
시장은 낮에 열린다고 믿었다.
사람이 오가고, 물건이 진열되고, 가격표가 붙는 시간.
그 시간이 시장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처음으로 시장의 진짜 얼굴을 본 건
사람이 사라진 뒤였다.
중국 이우 국제무역시장을 조사하러 갔을 때였다.
여행이 목적이 아니었다.
한국의 생필품이 어디서 시작해
어떤 경로를 거쳐 우리 일상에 도착하는지 알고 싶었다.
시장은 상상 이상으로 거대했다.
통로는 끝이 보이지 않았고
관마다 취급 품목도, 분위기도 달랐다.
나는 메모를 하며 걸었고,
다시 되돌아와 확인하고,
또 다른 통로로 접어들었다.
문제는 시간이 너무 빨리 흘렀다는 것이었다.
해가 졌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시장 안을 계속 돌고 있었을 때,
문이 하나둘 닫히기 시작했다.
금속이 맞부딪히는 소리,
셔터가 내려오는 둔탁한 울림.
그제야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고 보니 이우 시장은
관마다 출입문 봉쇄 시간이 다르다.
그 질서를 모른 채 안쪽으로 깊이 들어간 사람은
출구를 찾기 어려워진다.
순간,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이 안에 갇히는 건 아닐까.’
사람 하나 겨우 빠져나갈 만한
작은 통로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그날 밤을 시장 안에서 맞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거의 기어 나오듯
그 ‘개구멍’을 통과해 밖으로 나왔다.
숨을 고르며 돌아본 시장은
낮에 보던 모습과 전혀 달랐다.
불은 줄어들었고,
사람은 사라졌으며,
대신 설명할 수 없는 질서가
공간 전체를 덮고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생각했다.
아, 이 시장은
낮에 열리는 곳이 아니구나.
그날 이후
나는 시장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다르게 머물기 시작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동대문, 평화시장, 남대문을
같은 방식으로 관찰했다.
시장 근처에 숙소를 잡고
낮과 밤, 그리고 새벽까지
시간을 끊지 않고 이어 보냈다.
낮에는 익숙한 풍경이 펼쳐진다.
상인들의 목소리,
손님을 부르는 호객,
정돈된 진열대.
그러나 밤이 되면
시장은 조용해진다.
사람의 소음이 사라진 자리에
다른 움직임이 시작된다.
전화가 오가고,
메신저로 주문이 정리되고,
숫자가 오르내린다.
새벽이 되면
트럭이 움직이고
박스가 쌓이고
물건이 이동한다.
아침이 오기 전,
이미 그날의 가격은
대부분 결정되어 있다.
낮에 보이는 가격은
결과일 뿐이다.
그 과정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보자
비로소 하나의 흐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사람이 아니라
시간이 시장을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우리는 흔히
“이 물건은 어디서 왔을까”를 묻는다.
하지만 시장은
다른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이 물건은 언제 움직였는가.
어느 시간대를 통과했는가.
유통은 공간의 문제가 아니었다.
속도의 문제도 아니었다.
그건 철저히
시간의 문제였다.
밤과 새벽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결코 보이지 않는 질서가 있다.
낮에만 시장을 보고 돌아오면
그저 복잡한 공간으로만 기억되지만,
시간을 건너 머물면
시장은 하나의 생명체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이우에서 길을 잃을 뻔했던 밤은
지금도 선명하다.
그러나 그날의 두려움 덕분에
나는 시장의 진짜 얼굴을 보게 되었다.
시장은 낮에 열리고
밤에 닫히는 곳이 아니다.
시장은
밤을 지나며 완성된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사람만이
물건이 아니라
흐름을 읽을 수 있다.
2026년 1월 22일
-신점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