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은 밤에 완성된다

부제: 유통은 낮에 보이지 않는다



시장은 언제 움직일까. 물건을 사는 사람이 가장 북적일 때일까, 아니면 화려한 조명이 꺼지고 관광객이 사라진 뒤일까.


나는 오랜 시간 카메라를 들고, 혹은 펜을 들고 길 위를 떠돌며 그 답을 찾으려 했다. 그리고 중국의 이우(Yiwu) 시장에서 비로소 그 답을 몸으로 배웠다.


낮의 시장은 '진열'이고, 밤의 시장은 '흐름'이었다.


관광객들이 양손 가득 쇼핑백을 들고 떠난 뒤, 상점의 셔터가 하나둘 내려가기 시작하는 시간. 남들이 "장사 끝났다"라고 말하는 그때부터 시장은 비로소 진짜 얼굴을 드러냈다. 거대한 트럭들이 굉음을 내며 들어오고, 낮 동안 주문받은 물건들이 포장되어 박스 테이프 뜯는 소리가 허공을 갈랐다.


그것은 단순히 물건이 오가는 풍경이 아니었다. 거대한 혈관에 피가 돌기 시작하는 소리였다.


이 강렬한 경험은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나의 시선을 바꿔놓았다. 서울의 동대문과 남대문. 누군가는 이곳을 쇼핑의 메카라 부르지만, 나는 낮이 아닌 밤과 새벽을 기준으로 이 거대한 공간을 다시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자정이 넘은 시각, 동대문의 밤거리는 낮보다 치열하다. 지방으로 내려갈 고속버스 짐칸에 묵직한 옷 보따리들이 던져지고, 오토바이를 탄 기사님들은 곡예를 하듯 좁은 골목을 누빈다. 그 새벽의 공기 속에는 '구경'이 아닌 '생존'의 땀 냄새가 배어 있다.


그때 보이기 시작한 것이 있다. 사람이 아니라, '시간'이 시장을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낮 12시의 시장이 소비의 시간이라면, 새벽 2시의 시장은 유통의 시간이다. 세상의 모든 물건은 우리가 잠든 사이에 가장 바쁘게 이동한다. 우리는 낮에 예쁘게 진열된 결과물만 보지만, 그 이면에는 밤을 지새우며 물류를 움직이는 거대한 톱니바퀴가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 글은 화려한 상품을 구경한 기록이 아니다. 시장을 통과한 '시간'에 대한 기록이다. 그리고 낮에는 절대 보이지 않는, 세상이 움직이는 진짜 방식에 대한 관찰기다.


앞으로 이어질 10편의 글을 통해 나는 여러분과 함께 그 밤의 시장을 걸어보려 한다. 물건의 가격표 뒤에 숨겨진 땀방울을, 매끈한 진열대 뒤에 숨겨진 거친 박스들의 이야기를 풀어놓을 것이다.


시장을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단순히 물건을 많이 보는 일이 아니다. 시간이, 그리고 세상이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 이해하는 일이다.


이제, 그 진짜 시장의 문을 열어본다.


다음 화 예고 '이우의 셔터 소리는 다르다'



2026년 1월 21일

-신점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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