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은 밤에 완성된다④

도매는 낮에 거래되지 않는다

도매는 늘 분주해 보인다. 사람이 많고, 물건이 쌓여 있고, 계산기가 쉬지 않고 돌아가는 공간.

그러나 내가 현장에서 확인한 사실은 그와 정반대였다.


도매의 본질은 낮에 드러나지 않는다.

낮의 시장은 보여주기 위한 시간이다.

상담이 오가고, 샘플이 펼쳐지고, 조건이 설명된다.

그러나 그것은 거래의 시작이 아니라 예열에 가깝다.


중국 이우 국제무역시장에서도 한국의 도매시장에서도 실제 결정은 늘

사람이 적은 시간에 이루어졌다.


낮 동안 쌓인 질문과 조건은 밤이 되어서야 정리되기 시작했다.

수량은 줄거나 늘고, 단가는 미세하게 조정되고, 납기와 이동 경로가 다시 계산된다.

이 모든 과정은 말이 많을수록 방해가 된다.


그래서

도매는 낮에 거래되지 않는다.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왜 가장 중요한 결정이 가장 조용한 시간에 이루어질까.

그러나 며칠 밤을 시장 근처에서 보내며 그 이유가 보이기 시작했다.


도매는

‘설득’의 영역이 아니라 조율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낮에는

말이 많고, 밤에는 숫자가 많다.

말은 감정을 흔들지만, 숫자는 질서를 만든다.

한국의 도매시장에서도 같은 장면을 반복해서 보았다.


동대문, 평화시장, 남대문. 낮에는 소매상과 관광객이 뒤섞여

하나의 풍경을 만들지만, 밤이 되면 도매의 얼굴이 드러난다.


주문은 전화로 정리되고, 메신저로 수량이 확정되며, 새벽이 가까워질수록

움직임은 단순해진다.


복잡한 말은 사라지고 핵심만 남는다.

“이만큼.”

“이 시간.”

“이 조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다.


도매의 세계에서는 빠른 판단보다 정확한 타이밍이 중요하다.

하루 먼저 움직이면 재고가 되고, 하루 늦으면 기회를 놓친다.


그래서 도매는 낮의 소음이 가라앉은 뒤에야

제 속도를 찾는다.


이 과정에서 사람은 최소한으로 개입하고, 시간이 판단을 대신한다.

우리는 흔히 “장사가 잘된다”는 말을 사람이 많은 장면으로 상상한다.


그러나 도매의 세계에서 사람이 많다는 것은 오히려 불안정함을 의미한다.

진짜 안정은 사람이 빠진 뒤에 온다.

말이 줄어들고, 선택지가 정리되고, 남은 가능성만이 조용히 움직일 때.

그 순간이 도매의 중심이다.


이 장을 지나며

나는 또 하나의 확신을 갖게 되었다.


도매는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아니라, 시간을 상대하는 일이라는 것을.

낮은 관계를 쌓는 시간이고, 밤은 결정을 내리는 시간이다.


이 둘을 혼동하면

시장은 흐려진다.


그래서

도매는 낮에 거래되지 않는다.



2026년 1월 23일

-신점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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