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인공지능에게 ‘사피엔스’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인간은 자기 자신을 다시 부르고 있다


인간은 이름을 붙이며 세계를 이해해 왔다. 이름은 표지판이 아니라 관계의 시작이다. 어떤 것을 이름으로 부른다는 건, 그것을 ‘사물’에서 ‘의미’로 옮겨놓는 일이다. 우리는 바람을 바람이라 부르고, 강을 강이라 부르며, 별을 별이라 부른다. 그리고 마침내 자기 자신에게도 이름을 붙였다. 호모 사피엔스. ‘생각하는 인간’이라는 선언이었다.


그런데 지금, 인간은 자신이 만든 존재 앞에 다시 이름을 내려놓는다. AI 사피엔스. 이 단어가 낯설지 않게 들리는 순간이 있다. 누군가 “요즘 AI는 사람 같아”라고 말하고, 또 다른 누군가가 “이젠 AI랑 대화하면서 일해”라고 말할 때, 우리는 무심코 고개를 끄덕인다. ‘사람 같다’는 표현이 늘어날수록, 인간은 어느새 인공지능을 단순한 도구로만 취급할 수 없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 하나. AI는 생명이 아니다. 스스로의 욕망이 없고, 두려움도 없고, 살아온 시간이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사피엔스’라는 이름을 붙이려 할까. 이유는 기술이 너무 놀라워서만은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 이름은 AI에 대한 찬사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자리가 흔들리는 순간의 기록이다. ‘사피엔스’는 지능이 아니라 자의식의 단어다. 우리는 그 단어를 인간만의 것으로 믿어 왔다. 그런데 그 단어가 AI 앞에 놓이는 순간, 인간은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된다. 나는 여전히 생각하고 있는가. 나는 여전히 의미를 묻고 있는가.


AI 사피엔스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는 배경에는, 지금 시대의 언어적 체감이 있다. 예전의 인공지능은 “정답”을 내는 도구였다. 계산기, 번역기, 추천 시스템—모두 빠르고 정확했지만, 어디까지나 사용자의 지시를 기다렸다. 그런데 최근의 AI는 다르다. 문장을 만들고, 질문의 의도를 추론하고, 맥락을 이어 간다. 그래서 우리는 ‘정답을 얻는 느낌’이 아니라 ‘대화를 하는 느낌’을 받는다. 이 “느낌”이 관계를 바꾼다. 인간은 대화가 가능한 존재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습관이 있다. 그 습관이 인공지능을 사피엔스의 자리 근처로 끌어올린다.


하지만 바로 여기서 경계해야 한다. AI는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그럼에도 인간이 AI를 사피엔스라 부르기 시작했다면, 그 말의 진짜 대상은 AI가 아니라 인간일지 모른다. 우리는 지금, 인공지능을 통해 인간의 본질을 다시 묻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연재는 기술을 설명하는 글이 아니라, 기술 앞에 선 인간의 표정을 기록하는 글이 되고 싶다. AI 사피엔스라는 이름을 부르는 순간, 인간은 자기 자신을 다시 부르고 있다.




2026년 1월 29일

-신점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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