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현진 Nov 17. 2019

이민자 가족의 소통문제와
이중언어 환경의 어려움

-2장 모어 습득과 이중언어 구사의 중요성 (1)

이민자 가족의 소통문제와

언어 환경의 어려움

<행복한 이중언어 아이 키우기>

2장  모어 습득과 이중언어 구사의 중요성 (1) 



     1. 이민자 가족의 소통문제와 

                이중언어 환경의 어려움



  사회로 나아가기 전에 아이는 부모와의 소통을 통해 관계를 맺고 사회성을 처음 경험한다. 그러므로 행복한 아이는 부모와의 긍정적인 애정관계를 통해 큰 무리 없이 사회로 진입하면서 건강한 자기 정체성을 형성하고 사회와도 바람직한 관계를 가지는 아이라고 생각한다. 


   아이가 살아가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게 뭔지 알아가는 과정도 사회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아가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친구들과 소꿉놀이나 역할놀이를 하고, 인형이나 로봇 혹은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 강아지, 햄스터, 열대어 등 애완동물과 대화를 나누면서 아이는 하루에도 여러 번 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지정하고 바꾸는 행위를 반복한다. 어른도 마찬가지이다. 개인의 욕구 충족과 욕망 실현 그리고 사회적 요구 사이에서 인간은 자신의 위치와 정체성을 끊임없이 고민하며 인생을 살아간다. 


   부모와 갖는 관계뿐만 아니라 장난감, 애완동물 그리고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맺는 관계, 더 나아가 각종 지역사회 단체, 학교, 도서관, 박물관 등 여러 곳에서 맺는 다양한 관계는 우리 아이들 모두가 거쳐야 할 사회화 과정이다. 특히 이민자 부모 아래에서 자라고 있는 이중언어 환경의 아이들이 겪는 이중 언어 스트레스와 소통의 문제는 이러한 사회화 과정에서 유발되는 가장 중요한 이슈임에 틀림없다. 어떤 형태로든 언어는 소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며, 소통은 관계를 형성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미국 생활 10년 차, 미국에서 한국 아이 키우기는 5년 차였던 나는 어느날 아이가 다니는 프리스쿨(preschool)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킨더가든(kindergarten) 진학상담 일정을 잡자는 것이었다. 몇 달 후 7월이면 아이는 다섯 살이 될 예정이었다. 미국의 새 학기는 8월 말, 혹은 9월에 시작된다. 

     

  진학상담이라고 해서 크게 심각한 내용은 없다. 아이의 발달상황을 다각도에서 살펴보고 앞으로 아이가 학교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는지 함께 대화를 나눈다. 현재 아이는 정신적, 신체적, 지적 측면 모두 고루 발달하고 있으며 지금 이대로라면 충분히 공교육을 시작할 수 있단다. 우려스러운 점은 아이가 간혹 피곤하다면서 하기 싫다고 투정을 부린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잘 살펴보면 피곤하다기보다는 지루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단다.      


  대체 원인이 무엇일까. 나는 선생님과 다소 긴 대화를 나누며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 이중언어 환경 때문에 아이가 영어로 말문을 늦게 열어서 그럴까요?

▷ 혹시 선생님이 하는 영어를 못 알아듣거나 이해하지 못하나요?

▷ 친구들과 영어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아이가 힘들어 하나요?

▷ 책 읽기나 글쓰기를 하기 싫어하나요?

▷ 집에서 한국어 책과 영어 책 어떤 것을 위주로 읽어주어야 할까요?

▷ 수학 셈하기를 싫어하나요?

▷ 몸으로 노는 것만 좋아하나요?

▷ 아이가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해 힘들어 하나요?

▷ 혹시 선생님이나 부모와의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거나 불만이 있어서 그럴까요?

▷ 아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나요?

▷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어떻게 도와주는 게 좋을까요?

▷ 일 하느라 바빠서 아이와 자주 못 놀아주고 있어 고민인데 그것 때문일까요?     


  선생님과 대화를 주고받다 보니 문득 다른 엄마들은 어떤 고민을 안고 아이를 키우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나는 라스베가스 지역 한인 부모들에게 두 번째 질문을 던졌다. 

 

   이중언어 아동을 키우면서 생긴 고민힘든 일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 이중언어 환경 때문인지 아이가 말문을 늦게 열었어요. 영어도 한국어도 모두 부족한 상태에서 킨더에 보내야 해서 걱정이에요. 

▷ 워킹맘이라 직장에 나가 일하느라 집에서 아이와 한국말로 자주 못 놀아주고 있어요. 그래서 말이 늦나 걱정이 돼요.

▷ 아이가 원하는 게 뭔지 구체적으로 표현하지 않아서 걱정이에요. 한국말이 어눌해서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 걸까요?

▷ 한국어와 영어, 두 언어에 모두 노출시키면 혹시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까요?

▷ 아이가 영어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선생님이나 친구들과 상호소통이 어려운지 학교생활을 좀 힘들어하는 것 같아요.     


▷ 아이가 영어에 익숙해졌으니, 이제는 한국어를 가르치고 싶어요. 한글학교에 보내면 많이 늘까요? 

▷ 집에서 엄마가 꾸준히 한국어를 하는데도 아이가 자꾸 영어로 대답하고 한국말을 하지 않으려고 해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 한국말을 잘하지 못해서 혹시 아이가 코리안-아메리칸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어떻게 하죠?           


  질문에 대한 답변들을 요약해보니, 역시 가장 큰 고민은 아동의 이중언어 스트레스와 언어발달 지연 우려였다. 그러면 이렇게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굳이 이중언어 환경에 노출시키고 꼭 모어 습득을 하게 해야 할까?     

 

  나는 우리 이중언어 아동의 사회정서 발달을 위해서도 모어 습득과 이중언어 구사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의 하나이다. 왜냐하면 많은 아동 연구자들과 과학자들이 아이의 정서적 안정을 위해서는 부모와 건강한 애착관계를 맺고 상호소통이 원활해야 함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중 언어 환경에 노출되어 있는 미국의 많은 한인 부모들은 모어로 아이와 소통하는 것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인다. 


  미국 미네소타 대학의 심리학자 Lee Raby는 2014년의 한 연구에서, 태어나서 첫 3년간 ‘sensitive caregiving'(민감하고 세심한 보살핌)을 받은 아이들이 어린시절 학업 성취도가 높을 뿐만 아니라 어른이 되어 30대가 되었을 때도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고 더 나은 학문적 성취를 이루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sensitive caregiver'(민감하고 세심한 양육자)로서의 부모는 아이들의 신호(signals)에 신속하고 적절하게 반응하고 세상을 탐험하는 아이들을 위해 안전한 토대(base)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쌓인 부모-자식 간의 애착관계는 장기적으로 개인 구성원의 삶에까지 축적됨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자, 그러면  아이 양육과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되어 전업주부를 택했다는 어떤 엄마의 글을 한 번 보자.


"갑자기 물어보니 머리가 백지상태예요. 코리안-아메리칸으로서의 정체성 문제? 커가면서 생기는 부모와의 소통문제? 이중 언어 문제? 그런데 저는 그냥 행복한 아이로 키우고 싶어요. 본인이 하고 싶은 게 뭔지 그것을 알아가는 과정을 도와주는 게 제 일이라고 생각해요."


  아직 아이가 본격적으로 공교육에 들어서지 않아서인지 그저 아이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엄마의 말이었다. 지금 당장은 추상적인 생각밖에 나질 않는다는 그녀는 그저 행복하고 사랑이 충만한 해 맑은 아이로 키우는 게 당장의 목표라고 했다.


  전업주부 맘이 한 말 중에서 내가 주목한 것은 부모와의 소통문제와 정체성 문제였다. 한국에서 한국말을 하며 살던 사람들이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부모가 되어 아이를 양육한다는 것은 분명 특수한 상황임에 틀림없다. 아이는 어려서 부모와 한국말로 소통을 하다가 갑자기 유치원에 들어가 영어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아무리 집에서 엄마와 ABC 알파벳 놀이를 하고 기본 영어 단어를 입으로 익히며 준비를 해도 속사포처럼 영어를 쏟아내는 선생님과 친구들 사이에서 아이는 제 갈 길을 잃고 방황하기 십상이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이기 때문에 이런 특수한 상황에 속한 가족들이 매우 많다는 것이다. 꽤 오래 전부터 미국에서는 스페인어를 모국어로 한 남미 출신 이민자 자녀들을 중심으로 한 이중 언어 교육에 공을 들여오고 있다. 불법 체류자들이나 저임금 노동자들의 이민자 자녀들 중 다수가 가정에서든 학교에서든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해 크고 작은 문제들에 연루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양한 사회 교육 시스템을 통해 이중 언어 교육을 장려하고 이민자 자녀들이 가정 내에서든 사회 내에서든 원활한 소통을 하면서 안정적으로 미국 사회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물론 남미출신 이민자들보다 퍼센티지가 낮은 아시아권 이민자 자녀들을 대상으로 한 이중 언어 교육도 외면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아시아권, 특히 한중일 동아시아권 부모들의 교육열이 높고, 또 그 아이들이 미국 사회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빈도가 매우 낮기 때문에 크게 쟁점화하지 않고 있다. 중국과 한국의 경우 이민자 단체에서 중국학교, 한국학교를 주말마다 운영하고 있고, 여름방학 두 달 동안은 매일 써머캠프(summer camp)를 개설해 아이들의 이중 언어 교육과 정체성 형성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


   한국의 경우도 2000년대 이후 베트남과 필리핀 그리고 미얀마나 우크라이나 등 다양한 나라에서 이민자들이 이주해 오면서 다문화가정이 해마다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그로 인해 다문화가정의 이중언어교육 문제와 정착 문제 그리고 가정폭력 문제 등도 끊임없이 불거져 나와 사회적 이슈가 되어 국가 차원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이민자들이 처한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렇듯 이중언어 문제와 다문화가정의 정체성 문제는 미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세계 어디서든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국제적 문제가 되었다. 






이전 04화 사회정서가 유능한 아이로 키우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