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훈, 민음사
[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에 대해 저자는 마지막 장에 크게 3가지로 정리하였습니다.
첫째, 외부의 선진문명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주체에 관한 문제로 정리하였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인은 국가화된 번들의 경쟁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각 번들은 생존을 위한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외부의 선진문명을 다른 번들을 앞서 갈 수 있는 기회로 보고 주체성을 유지하고 과감하게 받아들였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각 번이 막부의 종주권을 인정하는 대신 막부는 번의 행정권, 징세권, 경찰권을 인정해 주었다. 이 때문에 각 번은 막부의 강한 규제를 받기는 하지만 흡사 별개의 국가 같은 성격을 띠었다.
-32p
.. 번의 국가화 경향은 18세기 후반 이후 강화된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부터 현저해진 각 번의 식산흥업 정책은 번을 하나의 경제단위로 형성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번 정부는 앞장서서 농민들의 특산물 생산을 장려하고 유통을 장악하였으며, 번 바깥으로의 수출을 주도하였다. 또 경제 활성화를 위해 번 내에서만 유통되는 번찰(지폐)을 발행하기도 했다.
- 33p
19세기 내우외환의 시기에 접어들자 이 경쟁은 급격히 치열해졌다. 이제는 사치, 체면의 경쟁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부국강병의 경쟁, 개혁의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 34p
두 번째는 지배세력이었던 막부와 다이묘들이 스스로 끊임없이 스스로 개혁을 해왔다는 것입니다.
이것 역시 하나의 통일된 국가 개념이 아니라 막부를 중심으로 번이라는 독립된 국가 개념의 번들이 서로 경쟁을 하면서 스스로 끊임없는 개혁을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고 생각이 됩니다.
사실 이러한 끊임없는 개혁으로 결국 메이지 유신이라는 혁명은 다른 근대의 어떤 혁명보다 성공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유학을 중심으로 한 사무라이 들의 각성을 말합니다.
저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 칼을 든 사대부]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사대부는 주자학으로 사상적으로 무장하였지만 실천력이 없어 공리공담에 그친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전쟁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며 말보다 행위가 앞서는 군인이던 사무라이들이 거의 260년이라는 긴 평화의 시대 속에서 마침내 유학을 통해 각성을 하였고 그것은 곧 행위로 나타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19세기는 일본 역사상 유학이 가장 번성한 시대이기도 했다는 점이다.
...
일본에서는 유학의 전성기에 서구화가 이루어졌다. 유학의 확산이 먼저 도쿠가와 체제를 동요시키고 이어서 서구화가 일본 사회를 강타한 것이다. 서구화의 물결 속에서 유학은 서구화를 안내하기도 하고 그것에 저항하기도 하면서 겨룩 '자살'했고, 그 영향력은 러일전쟁 무렵부터 급속히 쇠퇴해 갔지만, 메이지 시대에도 그 후에도 일본 사회에 많은 흔적을 남겼다.
- 133p
그 이전의 다른 무사 정권에 비해 도쿠가와 정권이 유학을 상대적으로 중시한 것은 사실이나, 예를 들어 불교에 비하면 그 중요도는 턱 없이 낮았다. 유학이, 또는 유학자가 정치, 사회, 하물며 사람들의 일상생활 분야에서 갖는 영향력은 매우 미미했다. 이는 당시의 일본 유학자들이 중국이나 조선 사회를 부러워하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있었던 데서 쉽게 알 수 있다. 조선 통신사에 대한 일본 유학자들의 열광도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 134p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유학 학습이 사무라이들을 정치화했다는 점이다.
- 135p
유학적 정치사상은 현존 질서를 옹호하는 면도 가지고 있다. 이것이 막부나 다이묘들이 유학을 장려한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유학적 정치사상은 일반 사무라이들이 군인이나 서리가 아니라 사(선비)가 되어 정치에 참여할 것, 민중에 대한 군정을 그만두고 인정고 덕정을 펼쳐야 한다는 것 등을 자각케 하는 급진적인 요소도 갖고 있었다.
- 147p
이 시기 일본에 사대부적 정치 문화가 '확립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거리가 멀었던 막번 체제 및 사무라이 사회에 그것이 급격히 침투하여 '커다란 동요와 변용이 생기기 시작한 지점과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 181p
메이지 유신을 공부하며 느낀 것은 부러움이었습니다.
일본은 동아시아 국가 중 유일하게 스스로 근대화를 이룬 국가였습니다.
그들이 스스로 근대화를 이룬 것이 어떤 원인이든 자기가 주체가 되어 뭔가를 이룬다는 것은 다른 누군가의 강제에 의해 이룬 것보다 얻는 것이 많고 그 과정을 통해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를 많이 가지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치열하게 고민하고 노력하며 보낸 수많은 시간이 그 방향을 잘 못 잡아 제국주의로 발전하고 결국 패망의 결과를 가져왔지만 현대 일본으로 성장한 큰 바탕이 되었을 것이라는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