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로 즐기는 장자_ 윤재근 편_동학사
상군서에서 시작하여 한비자로 가던 길에 노자의 도덕경을 읽고 가는 김에 장자를 읽었습니다.
노자는 글이 어려워 꿈속을 거닐었지만
장자는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인듯한데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되는 것이 많았습니다.
제가 노자와 장자에 관한 여러 책중 이 책을 고른 이유는 모두 <편하게 만나는>과 <우화로 즐기는>것과 같이 쉽게 쓰여 있다는 표시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노자는 461p로 아주 충실하게 담겨 있었고
장자도 545p로 아주 충실하게 만들어져 있어 감사하면서도 읽는데 고생이 많았습니다.
장자 내편[7], 외편[15], 잡편[11]을 읽으며 장자의 나비의 꿈 이야기와 같이 꿈속에서 책을 읽은 것 같은데 언젠가 읽은 것인지 아직 읽지 않은 것인지 의문이 듭니다.
머릿속에 딱히 남는 것도 없지만
전반적인 내용에서 느낀 것은 장자는 노자에 비해 좀 더 세속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입니다.
노자에서 장자로 이어지며 장자의 사상이 좀 더 세속을 벗어나며 도교 성립의 기반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국의 민간신앙과 노장사상이 결합된 도교가 시작된 것은 노자보다는 장자가 세속을 벗어나는 것으로 도가의 사상의 틀을 잡았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부족한 부분이 많아 장자의 모든 글을 읽고 머리에 남은 것이 없어 장자에서 가장 오랫동안 보았던 글을 남겨 아쉬움을 달랩니다.
장자는 편역 하신 윤재근 선생님의 이야기와 같이 자주 찾아뵙고 들어 즐거움을 알 때까지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장자 내편 2 제물론(濟物論)에서 털끝은 크고 태산은 작다.
이 세상에서 가을 짐승의 털끝보다 큰 것은 없으니 태산도 작은 것이다.
태어나자마자 죽은 갓난애보다 더 오래 산 자는 없으니 팽조도 요절한 것이다.
천지가 나와 더불어 살아 있고 만물도 나와 함께 하나가 된다.
이미 하나가 되어 있는데 다시 더 말이 있어야 하는가?
이미 하나라고 말했는데 다시 또 말이 없다고 하겠는가?
하나와 하나라고 말한 것이 둘이 되고, 하나와 더불어 둘이 셋이 된다.
이렇게 열거되므로 뛰어난 산술 가라고 해도 계산해 낼 수 없는데, 하물며 평범한 사람이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무에서 유로 나아갈 때도 셋이나 되는데, 하물며 유에서 유로 나아간다면 끝이 있겠는가.
그러나 나아감을 그만두고 무위자연의 도에 맡길 뿐이다.
세상의 모든 것을 인간의 잣대로 판단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이해를 하였습니다.
인간은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하지만 자연의 입장에서 보면 털끝 하나만도 못한 부질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크고 작고 오래 살고 요절하는 것에 대한 인간의 판단은 인간의 상식일 뿐이고 천지만물이 모두 인간의 것이 아닌데 어찌 인간의 잣대로 판단하려고 하는가 하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살고 있는 세상은 하늘과 땅으로 만들어진 하나이지만 그 안에 인간이 이름 붙인 수많은 만물이 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만물이 있어도 그것은 하늘과 땅으로 만들어진 세상의 입장에서 본다면 하나일 뿐이라는 말입니다.
결국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모든 것이 하늘과 땅으로 만들어진 세상이 원래의 정해진 원칙대로 흘러가도록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