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경

편하게 만나는 도덕경[노자] 윤재근 편 동학사

by 주종문

상앙의 [상군서]를 읽고 법가의 사상을 정리한 [한비자]를 읽으려고 하였는데 노자의 [ 도덕경]을 먼저 손에 잡은 것은 [한비자]가 노자와 장자로 이어지는 도가의 사상과 연결되었다는 말씀을 들었기 때문이다.

단순한 생각으로 도가는 속세를 등진 사람들의 학문이고 법가는 현실적인 학문인데 어떻게 연결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앞서 가신분들의 말씀이고 인터넷 등을 통해서도 황로 사상( 황제와 노자를 연계시킨 사항)이 법가사상과 연계되어 있다는 여러 글들과 책이 있어 노자의 도덕경과 장자 그리고 한비자로 이어지는 대장정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읽은 것은 시대적으로 가장 앞서 있고 바탕이라고 할 수 있는 노자의 도덕경인데 총 461p에 달하는 분량을 읽으며 내가 책을 읽는 것인지 글자 하나하나를 읽는 것인지 모르는 몽롱한 상태에 몇 번 빠져 다시 읽기를 몇 번 반복하였습니다.

겨우 처음에서 끝가지 읽기는 하였지만 머릿속에 남은 것은 꿈을 꾼 듯 뭔가 생각은 했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 것들입니다.

생각나지 않는 기억을 다시 [도덕경]를 들고 몇 가지 적어 보았습니다.

먼저 노자가 [도덕경]에서 이야기하는 도란 무었은가 하는 문제입니다.

도가에 관련된 여러 저술을 살펴보니 [도덕경] 사상의 핵심은 무위와 자연이라고 합니다.

무위와 자연을 한 단어로 하여 <무위자연>이라고 하는데 인위적인 것에 대한 반대말이라고 합니다.

첫 번째 기억에 남은 것은 이 도란 무엇인가 하는 것에 대한 생각입니다.

도덕경 37 자정(自正)에서 보면

道常無爲 而無不爲 侯王若能守

萬物將自化 化而欲作 吾將鎭之以無名之樸

無名之樸 亦將不欲 不欲以靜 天下將自正

해독하면

도는 언제나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도 못하는 것이 없다.

왕이나 제후가 그것을 지킬 수 있다면 만물은 저절로 살아갈 것이다.

살아가다가 욕망의 싹이 트려고 하면 나는 그것을 이름 없는 통나무로 막을 것이다.

이름 없는 통나무로 막아 놓으면 욕망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욕망이 일어나지 않고 잠잠해지면 천하는 저절로 제 모습을 찾을 것이다.

사실 한자를 읽으면 해독도 안되고 해독된 글을 읽어도 이해가 어려운데 다행히 자세한 설명이 있어 글의 부분이라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노자는 [도덕경]을 통해 강조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에 대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해가 뜨고 달이 뜨고 여름이 오고 가을이 오고 사람이 태어나 죽는 모든 것은 따로 누군가 의도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즉 세상의 모든 것이 변하고 이루어지는 것은 인간이 하는 것과 같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는 것, 이것이 도가에서 말하는 무위 즉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연스러움을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도 못하는 것이 없다는 것은 해가 뜨고 달이 뜨고 자연의 모든 운행이 어떤 목적성을 가지지 않고 자연스럽게 움직이지만 만물을 생장시키고 움직이는 모든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기억에 남는 것은 처세에 대한 부분입니다. 어떤 삶을 살 것 인가에 대한 생각을 하도록 하는 것으로

도덕경 8 약수(若水)에 보면

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

居善地 心善淵 與善仁 言善信 正善治 事善能

動善時 夫唯不爭 故無尤

해독하면

가장 좋은 삶의 방법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만물과 다투지 않고,

뭇사람이 싫어하는 곳에 머문다. 그러므로 도에 가깝다.

물과 같이 머물러 있을 곳을 잘 선택하고,

마음가짐은 물처럼 평온하고 깊이 있게 하고,

남과 어울릴 때는 물처럼 베풀어 주고,

말한 것을 물처럼 믿음 있게 지키고,

정치에 임해서는 물처럼 조리 있게 하고,

일을 처리할 때는 물처럼 원만하게 해내고,

행동은 물처럼 적절한 때를 골라 시작한다.

이처럼 결코 다투지 않기 때문에 잘못이 없다.

이글과 같이 남을 이롭게 해 주고도 보답을 바라지 않고, 남이 나를 화나게 하거나 피해를 끼쳐도 다투지 않고 도리어 남들이 다 싫어하는 곳에 있기를 좋아한다면... 백성을 다스릴 때 이보다 좋은 백성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도덕경] 66 왕자(王者)에서 언급된 "부귀하면서 교만하면 스스로 재앙을 불러들인다"는 말과 같이 타의든 자의든 이미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일반 백성에 대한 말이 아니라 스스로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왕과 제후, 귀족들에게 한말인 것 같습니다.

노자가 어떤 의도로 이 말을 하였던 현재 삶의 지침이 될만한 것 같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기억에 남는 것은 만족과 비움에 대한 글입니다.

도덕경 44 지족(知足)과 도덕경 46 상족(常足)을 보면 만족할 줄 아는 삶의 태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의 삶이 문명이라는 이름 속에서 만족을 모르고 너무 많은 것을 추구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성경]에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다고 합니다. 즉 욕심이 없는 사람은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겠죠.

노자의 글 속에서도 마음을 비우고 욕심과 탐욕을 경계하면 바른 삶을 살 수 있다고 합니다.

노자의 도덕경을 읽으며 느낀 것은 도덕경에 담긴 무위와 자연의 핵심사상을 강조하고 마침내 장자에 이르러 세속을 벗어난 도가의 사상을 이루었지만 결국 아직도 세속을 벗어나지 못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무위자연이 자연스러움이고 모든 것은 스스로 이루어지는 것이 도라면 도덕경에서 설파하는 철학조차도 세상에 대한 간섭이며 부자연스러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노자가 [도덕경] 1장 관묘(觀妙)에서 말한 것과 같이

"말할 수 있는 도는 진짜 도가 아니다."라는 말이 도덕경에 적용된다면 이미 도에 대해 말한 노자의 도덕경은 진짜도가 아니고 단지 앞서간 선현의 고매한 철학이고 세상에 관심을 가지고 세상을 다스리고 스스로를 다스리는 방법에 대해 말했으니 정치 철학가 맞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설명할 수 없으니 도가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도가 없는 것 같지만 세상 만물을 이끄는 자연스러움이 있으니 도가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문득 불가 반야심경의 " 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受想行識 亦復如是"이 떠올랐습니다.

도는 마음속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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