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기후변화 전문가 남재작 박사가 들려주는 기후 파국의 서막
기후변화, 탄소중립, 1.5℃ 내게는 많이 익숙한 단어다.
이 단어들을 처음 접한 것은 오래전에 부업으로 ISO 인증심사원을 하며 에너지 관리공단에서 처음 시행하는 CDM 인증심사원(보) 교육에 참여하면서부터다.
시작부터 부업의 확장이라는 개념이라 내용을 암기하고 기계적으로 계산식에 따라 계산하는 방식을 배워 시험에는 합격을 했지만 이후 따로 쓸모가 없어 그냥 잊어버리고 있었다.
지금 기억나는 것은 것은 앞서 언급한 단어와 석유환산 톤수(toe) 같은 몇 개의 단어 정도뿐이다.
이런 배경으로 그동안 어설프게 아는데 정작 아는 게 별로 없는 상태였다.
이번에 남재작 박사의 [식량위기 대한민국]을 읽으며 그동안 내가 얼마나 어설프게 알고 있는지 절감하는 시간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긴 시간 이 분야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현실에 참여해온 남재작 박사의 깊은 고민을 알게 되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첫 번째 읽으며 나름 기후변화와 탄소중립, 식량위기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남기려 했다.
그런데 두 번째 읽으며 오랜 시간 이 분야에 고민해온 전문가의 생각은 있는 그대로 각자 받아들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간단하게 책을 읽으며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문장을 인용하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남부 지방 인삼 재배 농가들이 무더위에 말라가는 인삼을 보호하기 위해 냉방장치를 설치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인삼밭에 냉방장치, 상상이 가는가?
- 56page
바둑판은 19*19개의 선이 교차되는 점으로 이뤄진다.
이세돌 9단이나 초급인 나나 그 교차점에 돌을 놓는 것은 다르지 않다.
단지 순서가 다를 뿐이다.
우리가 바둑돌을 놓을 수 있다고 프로 기사가 아니듯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안다고 해서 세상에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우리는 문제를 올곧게 바라볼 통찰력이 필요하다.
- 60page
각자 서 있는 입장에 따라 서로 상충되는 주장이 난무한다.
원자력은 위험해서 안 되고, 태양광은 우리 집 앞에는 안 되고, 전기의 대부분을 생산하던 화력발전은 없애야 하고, 그렇지만 전기 요금은 올리면 안 되고, 건조기와 식기세척기 등 전력을 많이 쓰는 새 가전은 더 많이 필요하고, 농사용 전기 요금 제도는 농가의 생존을 위해 계속 유지되어야 하고...
우리는 이런 시민들의 요구를 모두 충족할 수 있을까?
아니면 무엇을 채택하고 무엇을 외면할 수 있을까?
어떤 결정이든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이번에는 누가 희생을 해야 할까?
과연 이 시대에도 누구에게 희생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옳을까?
에너지 전환은 사회에 잠재된 갈등을 밖으로 드러내면서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다.
결론은 속도를 늦추거나 결국 다음 정권, 다음 세대로 미루는 것이 모두가 만족하는 대안이 될 확률이 높다.
문제의 크기와 성질이 같지는 않지만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는 과정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절체절명의 위기 순간에 직면하거나, 갈등을 해소할 리더십을 가진 지도자가 등장하거나, 더 현실적으로는 정의로운 전환이라 불리는 이해관계자 간 타협이 이뤄지는 것이다.
-153~154page
최근에는 유럽에서 녹색 분류체계(green taxonomy)에 원자력 발전을 포함한다고 해서 논란이 되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과도기적 활동 범주에 천연가스와 원자력을 포함했다.
그렇다고 이 두 에너지원을 재생에너지의 대안으로 인정했다기보다는 유럽연합이 탄소중립으로 이행하는 데 필요한 저탄소 에너지원으로 인정했다는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최신 기술인 3세대 원자력 발전 기술을 적용하고, 2045년까지 건설 허가를 받은 경우에만 '지속 가능한 금융 상품'의 투자를 받게 했다.
이러한 조치를 통해 재생 에너지에 대한 투자가 원자력발전으로 대체되지 않도록 하는 안전장치를 두었다.
기후변화와 환경에 적극적인 유럽이 원자력을 제한적으로나마 인정한 것은 그만큼 에너지 전환이 쉽지 않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반증한다.
- 157~158page
우리나라가 정말 식량 위기에 처할 때는 국내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농업 생산량이 크게 줄어들 때이다.
- 236page
위기 대응은 '열심히'보다는 '어떻게'가 더 중요하다.
위험에 투자를 너무 많이 하면 실물경제가 어려워지고 너무 적게 하면 감당할 수 없는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우리는 이 두 선택지 사이를 줄타기할 유연하고 냉철한 과학적 지식을 가진 정책 결정자가 필요하다.
- 271page
우리는 괜한 기우이길 바라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 역시 모두가 알고 있다.
단지 미래를 위해 현재를 얼마만큼 포기할 수 있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274page
법제화했다고 온실가스가 저절로 줄어들지는 않는다.
그리고 법이 만들어졌다고 모든 나라가 지키는 것도 아니다.
얼마나 많은 법이 사문화되었는지를 안다면, 이것은 다이어트를 위해 헬스클럽 회원권을 산 것과 다르지 않다.
다이어트에 성공할지 말지는 여전히 하기 나름이다.
나는 2013년에 [기후대란]이라는 책에서 우리는 온실가스를 줄이지 못할 것이고 결국 파국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을 했었다.
4~7년마다 선거를 치르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어떤 정권도 경기 침체를 부를 수 있는 경제적 제약 조치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개인의 도덕적 자산은 유한하기 때문이다.
-285page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는 "새로운 과학은 당대의 반대론자들을 설득해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자들이 모두 죽은 후 새로운 세대에게 수용되면서 승리를 거두는 법"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기후 변화를 초래한 것은 우리 세대이지만 우리는 결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다음 세대가 정치적 의사 결정의 전면에 등장하면서 기후위기도 해결 국면에 접어들 것이다.
-327page
남재작 박사의 [식량위기 대한민국]은 기후변화의 위기를 우리가 가장 체감할 수 있는 식량위기로 설명을 하고 있다.
문제는 개인은 식량위기라는 단어에 대해 강한 위기감을 느끼지만 개인을 넘어서 조직의 문제가 되면 식량위기라는 단어는 그냥 상존하는 하나의 위험요인일 뿐이다.
나는 남재작 박사가 2013년 [기후대란]이라는 책에서 결국 온실가스를 줄이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여전히 맞다고 생각한다.
남재작 박사는 마지막 장에 그래도 희망을 이야기하지만 이 문제를 해결할 다음 세대가 정치적 의사 결정의 전면에 등장할 시기는 아직도 너무 멀다.
기후변화의 파국이 어떤 결과를 만들지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겠지만 결국 위험이 눈앞에 닥쳐 자신에게 문제가 생겨야 모두 행동에 나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