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망국론+현대 교양론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라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의 이 책은 지식의 거장이라 다치바나 다카시의 일본 대학교육에 대한 쓴소리가 담겨 있는 책입니다.
일본 대학의 기본적인 문제와 신입생, 재학생의 학력저하 문제와 교양교육 문제에 대한 그의 깊은 고민이 담겨 있는 책입니다.
책을 읽으며 많은 부분에 공감하였습니다.
다치바나 다카시가 이야기하는 일본 대학의 문제점과 학력저하 문제, 교양 교육문제는 그대로 우리 대학에 투영되었습니다.
일본에서 걱정하는 문제를 우리도 많은 분들이 걱정하고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책에 나왔던 내용이 처음 언급된 것이 머리말에도 나와 있지만 1997년이라고 하니 벌써 20년 전의 일입니다.
2016년 지금 일본은 어떨지 궁금합니다.
책의 내용에서 인상적인 내용을 정리해보겠습니다.
[ 현대 사회에서 국력은 지적 능력의 총화로 측정할 수 있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닐 정도로 현대 사회는 지적 능력이 매우 중요시되는 시대이다.]
여기서 지적 능력이라는 것은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많이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라고 이 책의 전반에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이미 1997년에 일본에서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의 기초학력이 부족하여 보충교육을 진행하는 부분에 대해 한탄을 하는 글이 있습니다.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에 대한 고등학교 교육과정에 대한 보충교육(특히 수학, 과학의 이과 과목)은 저도 2006년부터 눈앞에서 목도한 사실이며 많은 교수님들로부터 들은 사실이라 피부로 절감이 되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러한 보충교육은 지금 2016년 대한민국에서 진행형인데 일본도 아직 진행형인지 궁금합니다?
[ 문부성이 대중에 영합하는 식으로 중고등교육의 교육 수준을 계속 낮추었기 때문이다.
문부성이 '융통성 있는 교육'을 슬로건으로 내세워 초중등교육의 수준을 떨어뜨린 결과, 일본은 모두 초등학교 시절부터 학원을 들락거려야 하는 이해할 수 없는 '융통성'을 발휘하는 교육 국가가 되어버렸다. 이와 마찬가지로 '대학 입시 부담을 경감시킨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대학입시제도를 느슨하게 만든 결과, 대학은 기본적인 수학능력도 갖추지 못한 학생들을 입학시켜 다시 보충학습을 시키는 어리석은 고등교육기구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 글을 보며 어찌 이리 현재의 대 학민 국과 똑같은지 어이가 없을 지경입니다.
[이대로 가면 일본은 유명무실한 고학력 국가가 된다.]
[ 교육의 목적은 현 제도의 추종자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제도를 비판하고 개선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다. - 콩도르세]
[ 선생이 가르칠 수 있는 자유, 학생이 배울 수 있는 자유는 기본적인 인권이다. 어떤 학생을 대학에 받아들이고 어떤 내용으로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는가 하는 것은 대학만이 결정할 수 있는 문제이지 국가가 개입할 문제가 결코 아니다.]
이 사실을 몰라서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이 듭니다.
[ 대학은 교수가 무엇인가를 가르치고 학생은 그것을 외우는 곳이 아니다. 대학생이 반드시 몸에 갖추어야 하는 것은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이다. 교수가 가르친다는 형식으로 학생들에게 전할 수 있는 지식의 양은 한정되어 있다. 학생들은 그 몇 배나 되는 지식을 스스로 습득해야 한다. 그런 능력만 갖춘다면 교수의 수업을 빼놓지 않고 들을 필요는 없다.]
대단히 공감하였습니다.
그럼 대학교수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대학교수는 안내자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학생들에게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지식을 전달할 때 스스로 생각하고 고민하여 배울 수 있도록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분야의 길을 먼저 가본 사람으로 학생들에게 지도를 알려주고 같이 동행하며 같은 길을 걸어가며 도와주는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중 고등학교 교육에서 문제가 있더라도 일단 먼저 대학이 바로 서서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진정한 교양인들을 길러낸다면 그 사람들이 사회의 중심이 되는 그때 중 고등학교 교육도 자연스럽게 바르게 형성될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아무리 좋은 교육체계나 제도를 만든다고 해도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이 바뀌지 않는 한 똑같은 문제들이 반복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프랑스에서도 교양은 아는 게 아니라 갖추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철학적인 사색이란 정답이 없는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추론을 만들고 그것을 표현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정답이 있는 문제에만 매달려 그것을 머리 속에 입력한 우등생이 승자 취급을 받는 일본의 중고등 교육과는 근본적으로 교육방침 자체가 다르다.]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는 철학 교사였을 때 학생들에게 가장 먼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나는 너희들에게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을 것이다. 철학은 지식이 아니다. 철학은 모든 것을 문제로 삼고 반성하는 방법이다."]
[철학은 지식이 아니다. 그리고 교양도 역시 지식이 아니다. 교양은 철학을 가능하게 하는 능력이다.]
[교양은 지식의 획득을 순조롭게 만들며, 새로운 모든 조건에 적응하게 만든다.]
["사부아르(savoir)는 큐르 츄르(culture)가 아니다. 즉 무엇인가를 '안다'는 것이 '교양'은 아니다. 단순한 '지식'은 교양이 아니다. '안다'라는 과정에서 익힌 것 또는 익힌 능력을 본래의 의미에서 교양이라고 말할 수 있다."
큐로 츄르 또는 컬처라는 것은 큘티베(cultiver), 컬티베이트(cultivate(경작하다))가 어원이다. 그것은 머리를 경작하는 것으로 그 사람의 머릿속에 있는 잠재적인 능력을 발견하는 것 그 자체가 교양이라는 뜻이다.]
교양은 철학을 가능하게 하는 능력이고, 철학은 정답이 없는 문제를 깊이 생각하는 능력이라고 합니다.
문제를 깊이 생각하는 능력이라는 것은 그 해결을 위해 다양한 지식의 습득을 순조롭게 하는 공부하는 능력을 이야기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교양인이라는 것은 책을 많이 읽고 지식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다양한 상황과 문제에서 합리적인 행동과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하고 많은 책을 읽고 지식의 습득과정을 거치는 것이 필요합니다만 단순히 읽고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만을 거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깊이 생각하는 철학적 사유를 통해 자신만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꼭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