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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진 Jul 22. 2022

조금씩 더 '내가 되어가는' 증거들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이 부족했던 예전과 비교하면, 지금은 조금 더 내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죽을 때까지 해야 하는 끊임없는 작업들이라고 생각하지만, 진전이 있어 기쁘다.



  예전과 비교해서 조금 더 발전한 부분은,

 첫 번째, 현재 나는 싫어하는 사람이 없다. 사실 내면 작업은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전에도 조금씩 해왔던 거라 그런지 싫어하거나 미워하는 사람이 없어진 지 꽤 됐다. 한 10년쯤?

하지만 누군가를 미워해서는 절대로 안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기에, 내게 해를 끼친 사람을 미워할 수도 있고, 당연히 그럴 수 있고 미워해도 괜찮다.

(오히려 정말 너무 미워 죽겠는데 그 감정을 억압하기만 하면 그 감정은 몸의 병이나 타인을 향한 분노로 표출된다.) 다만 용서하려고 노력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되는 것이다.

 20대의 나는 어딜 가든 한 명씩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 보였다. 이것은 그들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을 그렇게 바라보는 나의 문제였다. 나를 들여다보며 내가 불완전한 인간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게 되며 타인의 불완전함을 받아들이기가 수월해졌다. 동시에 타인의 행동이나 말에도 덜 상처받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의 신앙생활로 인해 세상 모두가 형제자매라는 것을 거의 평생 듣고 자랐지만,

우리는 양자장 안에서 에너지로 모두 통해있기 때문에 사실 너와 나의 구분이 없다는 것을 과학적으로까지 알게 되면서 타인을 향한 사랑이 결국은 나에게도 주어짐을 알게 되었다.

결국 더 사랑하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다.


내가 내 안의 좋지 않은 것들을 내보냈던 과정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하고 싶다.

내 안의 것들을 내보내기도 바빠 죽겠을 때, 타인이 어떤 좋지 않은 이야기를 하거나 또 다른 사람들의 긍정적이지 못한 이야기를 하면 듣기가 죽을 만큼 괴로웠다.

모든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듣고 보고 싶지 않을뿐더러, 내가 내보내는 것들과 그것들이 합쳐져 너무 힘든 적도 있었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부정적인 것들이란 그리 큰 것들은 아니다.

그냥 작은 험담들이나 타인의 외모에 대한 판단, 세상에 대한 고정관념 등등 작은 것들이 나에게 들려올 때, 나는 다 내버리고 싶었는데 그것들이 밖에서 나에게 주어지니 너무 힘들었던 것이다.

(심지어 나는 영화도 교훈이 있거나 아름다운 내용의 영화만 심하게 가려서 본다. 그러다 보니 영화를 잘 안 보게 됐다.)

그런데 많은 것들을 내보내고 나니 그런 이야기들에 전처럼 반응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고, 나도 타인의 행동에 대해 좋고 싫고의 판단을 하지 않으려고 하니, 머릿속에 떠다니는 잡다한 생각들이 적어져 편안하다.



 두 번째, 말투가 예전보다 부드러워졌다.

예쁜 말만 하는 사람들은 말만 예쁘게 해야지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생각이 아름답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예쁜 생각이 밖으로 우러나오는 것이 말'이다. 아무리 말투를 바꿔야지 해도, 마음과 생각이란 더 본질적인 것이 변하지 않는다면 말 습관은 변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내가 아는 사람들(어른들) 중 가장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은 우리 제부이다.

제부의 말을 듣다 보면, 제부의 마음속에 겸손과 온유가 가득 들어있음을 느낄 수 있다.

항상 말속에 친절함과 상냥함, 그러나 과하지 않음이 있다. 제부를 10년 넘게 봐 왔지만,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제부의 마음속에는 '선(善)'만 있는 것 같다.

내 조카도 덩달아 말을 예쁘게 하는데, 조카를 봐도 제부가 정말 선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시 돋친 말을 자주 하는 사람들은 마음속에 상처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을 나쁜 사람이 아니라 아픈 사람으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은 어느 신부님의 말씀을 통해 배웠다.

그리고 굳이 다른 사람들의 한마디 한마디에 너무 깊게 신경 쓰고 반응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나도 내 생각과는 다르게 말이 헛나올 때도 있고, 분명 나는 좋은 의미로 말했는데 뒤돌아 생각해보면 상대가 오해할 수도 있겠다 싶은 적도 있다.

마음속의 부정적인 생각들을 내보내고, 원하고 바라는 것, 맑고 순수한 생각들을 반복적으로 떠올리게 되면 어느새 말투가 달라지게 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요즘은 감사하게도 주변 지인들이 나와 만나고 나면 좋은 에너지를 얻는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많아졌다.

나의 이야기가 긍정적인 부분들이 많다고 한다. 부족하지만 감사할 뿐이다.



 세 번째, 인간은 모두 다 똑같이 존귀하다는 것을 알았다.

우월한 사람도 없고, 낮은 사람도 없이 모두 다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다.

어릴 때는 남과 비교하며 어떨 때는 우월감을 가졌다가 어떨 때는 질투하고 그랬었는데,

모두 다 소중하고 존귀하다고 생각하니 나의 행동도 자연스럽게 상대방을 더 잘 대접하게 되고 소중히 대하게 된다.

 또한 모두 다 신이 사랑하시고, 창조하신 특별한 존재들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은 우리 삶의 큰 힘이 된다.

이것이 바로 '믿음'인데, 이 근본적인 믿음이 바뀌고 나 스스로가 존귀한 존재라는 것을 의심 없이 믿을 때

비로소 삶이 진정으로 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할 수 없어.', '나 까짓게 뭘. '이런 것들이 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다.

신에 대해서 공부하고, 자연을 가까이할수록 그 믿음은 커지고 확실해진다.



네 번째, 원하는 것들을 더 많이 생각하려고 한다. 머릿속의 이미지를 바꾸는 중이다.

양자물리학에서 유명한 '관찰자 효과'라는 것이 있다.

<양자물리학자들은, 원자를 구성하는 매우 작은 입자를 관찰할 경우 관찰자가 에너지와 물질의 움직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발견했다. 관찰자가 어떤 전자의 한 위치에 주의를 집중한 경우, 전자가 나타났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관찰할 때까지 입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시공간에 나타날 수가 없다. 에너지가 관찰자의 주의집중에 반응하여 물질이 되는 것이다.

 이런 발견으로 인해 마음과 물질은 더 이상 서로 분리되었다고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주관적인 마음이 객관적인 물질세계에 측정 가능한 변화를 만들기 때문에 마음과 물질은 본질적으로 연관되어있다.  브레이킹_ 조 디스펜자>

한 마디로 잠재의식이나 머릿속의 생각들이 그대로 현실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불평불만을 계속 생각하고 말하면 그것은 정말 현실이 되어 나타나는 것이고, 원하는 것들을 반복적으로 생각하면 정말 현실이 된다는 끌어당김의 법칙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 (이미 예전이지만)

레스터 레븐슨은 마음속에 질병의 이미지가 없다면, 육체가 병에 걸릴 수 없다고 했다.

건강만을 생각해야 건강한 것이다.

(내면에 치유되지 않은 상처가 많은 사람에게 현실에서 상처받는 일이 반복적으로 생기는 이유도 이것이다.)

원하지 않는 이미지를 밀어내며 분투하기보다 원하는 이미지를 계속 떠올리기를 추천한다!




매일 바닐라라떼만 먹다가 앞으로는 아메리카노 먹으려고 했는데, 아메리카노 마시고 나서 바닐라라떼한잔 더 마셨다는 ㅎㅎㅎ 아메리카노 이미지 주입중입니다.





계속해서 성장하고, 내 안을 들여다보면 내가 지금 어떤 상태이고 무엇이 필요한지가 보인다.

나는 나 자신을 더 많이 허용하고 인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느낀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명확히 깨닫고, 그 부분에 대한 작업을 잘하려면 남에 대한 생각을 할 시간에 스스로가 어떤지 생각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말솜씨 #말센스 #명상의효과 #독서의효과 #나로살아가기 #끌어당김의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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