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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진 Sep 30. 2022

어서 삶이라는 파티에 가요.



 

  나는 여태껏 살아오면서 ~가 있으면 행복할 거야,

네가 ~이러한 행동을 하지 않으면 좀 더 나을 거야,

~가 사라지면 행복할 거야, 내가 ~되면 행복할 거야 등등 숱한 행복의 조건들을 붙여왔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그 조건들로 인한 행복은 아주 잠시뿐이었고 매번 행복해지기 위한 조건들이 바뀌고 새로워질 뿐이었다. 그런데 지금도 그런 조건들을 붙여가고 있는 나를 본다. 아주 조금은 다행히도 이제는 그 조건들은 나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릴 적엔 남자 친구가 있으면 행복한 것 같았고, 그 친구가 매일 나를 찾아오면 숨이 막혀 떨어져 있고 싶었다. 나란 사람은 매사에 반대를 원하는 사람이었나 싶을 정도로 만족하고 감사할 줄 몰랐다.


 그래서 이제는 지금이 가장 행복한 것이고,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 가장 소중하다는 것까지는 머리로 이해했다. 하지만 또 마음은 그 사람들이 어떠한 식으로 행동했으면, 말을 이렇게 좀 했으면 하면서 그 안에서 내 행복의 기준을 멋대로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 기준을 지워버리고, 내게 일어나는 일들이 무엇이든 다 좋은 것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작업이다.


 우주는 내 수준을 정확히 알고 있다.

에너지 수준으로 돌아가는 정확한 프로그램을 구현해 놓았으며, 나의 에너지 수준에 맞게 나에게 필요한 교과서들이 그때그때 배달된다.

알려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내 몫이며, 이해한 것을 실습으로 계속해서 테스트받는다.


 만약 당신이 어떠한 방식으로 말을 해야 하는지 깨달았다면, 삶은 당신이 그렇게 말하기 힘든 상황을

계속해서 만들어줄 수도 있다.

그것이 바로 테스트이다.


 우주의 테스트는 너무나도 다양하고 개개인에 맞게 짜여 있어서 우리는 그 방식의 다양성을 파악할 수조차 없다. 그리고 당신의 수준이 한 단계 올라갔다면 시험기간이 끝나고 잠시 쉬는 타임 후에 또 새로운 테스트가 시작된다. 나는 이것이 삶인 것 같다.


 하지만 이 테스트를 바라보는 방식만 바꾸면 삶은 즐거워진다. 힘든 순간을 이겨내고 시험 점수를 잘 받는 것이, 그냥 손 놓고 있다가 시험을 치루지도 않거나 저조한 시험 점수를 받는 것보다 훨씬 즐거운 일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삶에서는 힘들다고 생각되는 순간들을 열심히 보내는 과정이 가장 행복한 것이니까.


 당신이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다면, 그것에 대한 테스트가 시작될 것이다. 그러면 그 테스트에 통과하기 위해 배운 대로 잘하면 된다.

누가 기분 나쁜 말을 했다고 해도, 한 밤중에 곤히 잠든 당신을 누가 깨웠다고 해서, 당신이 휴가를 떠나려고 했을 때 날씨가 엉망이라고 느껴질 때에도 삶은 그저 감사하고 기뻐하라고 한다.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1 테살 5. 16, 18)


 이런 사소한 일들 뿐만 아니라 우리의 기분을 망칠 수 있는 일들은 언제 어디서든 계속해서 일어날 수 있다. 이런 하나하나의 일 때문에 기분이 나빠져야 한다면 결코 기분이 좋은 상태를 유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나의 성장에 필요하고, 내가 성장했는지 나의 수준을 테스트하는 일들이라면 하나하나에 화낼 일이 줄어든다.

그 테스트는 어차피 일어나는 일이고, 그 테스트들을 잘 통과해야만 마지막 순간 삶의 결론 점수가 좋게 나올 것이기에. 그런데 어차피 받아야 하는 테스트를 피하기 위해 공부하지 않는다면 삶 자체가 정체되고 엉망이 될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마이클 싱어는 행복에 대해, <아내가 집을 나가거나 남편이 죽더라도 결코 가슴을 닫지 말라. 이런 경우에는 가슴을 닫아야 한다는, 그런 법은 없다.

행복하지 않을 때는 가슴이 닫히고 내부의 에너지가 올라오지 않는다(막힌다).>라고 했다.


 삶에서 테스트를 치르는 것이 두려워 가만히 집에만 있는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가? 다양한 사람들 속에 상처받기 두려워 아무도 만나지 않고 높은 마음의 벽을 쌓아 방 안에만 갇혀있는 사람을 생각해보자.

그 집 주변에서는 파티며 축제에 많은 이들이 즐거워하고 있는 동안에도 그는 그 축제에 발도 디뎌놓지 않고 자신이 혼자 있는 것이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다. 그저 삶을 받아들이고 마음을 활짝 열고 축제에 참여하면 되는데, 축제의 어떤 음식이 마음에 들지 않고, 어떤 이가 축제에 오는 것이 싫으며, 입고 갈 옷이 마음에 들지 않아 그 향연에 못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문제이다.





 성장을 피하려고 시험을 치르지 않으려고 도망 다니는 것은 이와 같다. 그래서 나는 조금씩 더 삶을 받아들이고 축제 속으로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남들이 즐기는 동안에 방 한켠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것만 세고 있지 말고, 세상이 주는 뜨겁고 화려한 축제를 즐기고 싶기 때문에.












#삶은축제  #우리는하나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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