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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현 Jul 08. 2015

이소라, 이별 앞에 드러낸 솔직함.

The emotional story for songs.

이소라는 데뷔한지 20년이 넘은 가수다. ‘난 행복해’로 유명해지기 시작한 때부터 쳐도 역시 오래된 가수다. 솔직히 어린 시절 들었던 이소라의 노래는 별로였다. 중고등학교 시절 우리나라 가요계는 ‘고음병’에 걸려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듣는 우리들 역시 그러했다.


‘고음을 잘 내는 가수’가 ‘노래를 잘하는 가수’로 통했던 그 시절이다. 그 사이에서 이소라는 독특함을 넘어서 ‘이질감’이 느껴지는 가수였다. 뛰어난 미모를 갖고 있지도 않았기에 중고등학생들은 그녀의 노래를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아닌 분들도 있으시겠지만 최소한 내 주변 친구들은 그녀의 노래를 이해하는 것을 떠나 별로 들으려 하지 않았다. 가요톱텐에서 1위를 해도 관심 밖이었고, 그 당시 유행하던 ‘최신가요’ 테이프에서도 이소라의 노래가 나오면 ‘빨리 감기’를 누르곤 했다.


지금 듣는 이소라의 노래들은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내가 나이를 먹은 탓도 있겠고, 그녀의 노랫말이 하는 이야기를 공감할 수 있게 된 이유도 있다. 하지만 이보다 더 강한 감상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그녀가 ‘한 음 한 음’을 모두 최선을 다해 소리를 낸다는 점이다. 소리를 내는 것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노랫말 한 글자 한 글자가 담고 있는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온 몸과 온 감성으로 노래한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이소라의 라이브는 언제나 마음을 울린다.


그녀는 노래를 할 때 예쁘게 보이려 하지 않는다. 슬픈 가사를 내뱉을 때 그녀는 정말로 슬퍼 보인다. 고음을 낼 때는 온갖 인상을 찡그리며 최선을 다해 가장 좋은 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서 그녀의 라이브는 처음부터 끝까지 가득 차 있는 느낌이 든다. 시원스럽게 내지르는 고음이 없고, 요동치는 바이브레이션이 없어도 그녀가 최고의 가수 중 하나가 될 수 있었던 이유.


그 어떤 기술도 감성을 이길 수 없다고 강조했던 내 선생님들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준 가수가 바로 이소라다.


이소라에 대한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 영상. ‘믿음’이라는 노래는 오래전 알고 있었지만, 요즘 들어 새롭게 들려온다. 이 영상 초반부에서 이소라는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남긴다. 자신의 이야기. 앨범을 준비하면서 겪은 이별에 대한 감상이 이 노래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것만 기억해요. 우리가 헤어지면 다시는 이런 사랑도 없을 테니’


어떤 사랑이었든, 어떤 사람이었든 그 관계는 특별하다. 그 관계가 끝나는 순간은 마치 죽음처럼 느껴진다. 죽을 것 같은 상황에서 그 사람이 나빴고, 힘든 연애였고,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았던 여러 가지 다툼이나 싸움은 아무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날 사랑해줬고, 내가 가장 사랑했던 그 사람이 내일부터 내 곁에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 때에 느껴지는 감정은 ‘체념’도 아니고 ‘달관’도 아니고 ‘해탈’도 아니고 ‘냉정한 현실 파악’도 아니다. ‘회복’에 대한 열망, ‘가능성’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 자신이 잃은 사랑에 대한  끊임없는 재확인, 막 이별에 들어섰어도 감정은 이별보다 사랑에 가깝다. 그것이 사랑이고, 그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믿음’의 가사는 그 순간의 감정을 온전히 담아내고 있고, 이소라는 이별의 그 순간으로 돌아가 그 때의 감성을 훌륭히 전달한다. 감정에 몰입한 나머지 영상 후반부에는 목소리가 다소 떨리지만, 아무려면 어떤가. 노래는 ‘메시지’이며 ‘감성의 전달’을 위한 행위가 아닌가.


나는 ‘믿음’을 듣다 보면 ‘바람이 분다’가 떠오른다. ‘믿음’이 이별 직후의 감정에 대한 이야기라면 ‘바람이 분다’는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감정이 정리된 때의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이별 후 감정의 흐름을 순서대로 나열하는 듯이 ‘믿음’, ‘바람이 분다’의 순서가 아닐까 한다.


이별 후 어느 정도의 시간, 길지 않은 시간이 지나면 그것을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한다. 이별 직후 생각했던 ‘다시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살다가 사랑을 하기 전에 누렸던 나만의 라이프 스타일을 서서히 찾아간다. 하지만 가끔 울컥하고 올라오는 정체모를 감정이 존재를 바닥으로 이끈다.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

‘ 사랑은 비극이어라. 그대는 내가 아니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이 때부터는 나름대로 사랑을 기억하고 추억하기 시작한다. 그 순간은 고통스럽다. 하지만 불어오는 바람처럼 그 순간은 잠시 피부에 앉았다 사라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바람이 지나가는 시간, 추억이 떠올라 머릿속에 머무는 시간이 짧아진다. 그렇게 이별이 지나간다. 바람이 부는 것처럼.


가수 이소라가 어떤 삶을 살아온 사람인지 전혀 알 수 없다. 그녀의 사랑 방식이 어땠는 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사랑이 끝난 후 찾아오는 이별을 대하는 그녀의 자세는 솔직하다. 그때의 감정을 멜로디와 가사로 담아내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나간 사랑을 ‘아름다웠다’고 포장하려 하는 것 같지도 않고, 떠나간 사람에 대한 분노가 표현된 곡 또한 찾아보기 힘들다. 그녀는 솔직하게 이별을 맞이했다.


슬픔은 슬퍼하라고 있는 감정 아닌가. 슬플 때 제대로 슬퍼하지 못한다면 그것 또한 슬픈 일이다. 가끔은 내 지나간 사랑에 대해, 내가 겪은 이별에 대해서 현실적인 말을 하는 그 사람들이 밉다. 그래서 우리는 이소라의 노래를 듣는다. 나이를 먹을수록 그녀의 노래가 마음을 울리는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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