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천문우주학과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아직 어린 나이에 원하는 전공을 정한 것이 새삼 기특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얼마 안 가 다른 것으로 바뀔 것이라는 생각에 별다른 의견을 내비치지는 않았다. 이것저것 살아가면서 많은 일들을 겪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 그에 따라서 하고 싶은 일과 흥미로운 일이 구별되고 점차 구체적으로 꿈이 발현될 것이기 때문에. 어떤 가능성을 벌써부터 제한해두고 싶지 않았다.
우주, 우주 하면서 생각했다. 왜 우주일까. 지구과학, 태양과 별, 대기 복사, 코페르니쿠스. 여러 천문학에 관련된 사항들이 이어폰처럼 뒤엉켰다. 게임이든 책이든 영향을 준 것이 있을 것이다. 그게 무엇일지 궁금해 물어봤지만, 그냥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냥 우주는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그냥 우주. 고등학교 때 문학 동아리에서 후배가 우주는 너무 좁다는 표현을 썼다. 외로움에 관한 시였는데, 외로운 사람은 우주도 좁구나 하고 느꼈다. 멋진 말이다. 무언가 멀고 아득한 것. 감히 닿을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것, 우주 앞에서는 우리 모두가 장애가 있다.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우주.
생각할 게 참 많은 우주다. 우리가 보고 있는 별의 모습이 과거의 모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빛이 그렇게 느리다니, 빛의 속도도 굼뜬 곳이 우주다. 그런 생각도 했다. 우리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우주에 가서 역시 엄청나게 성능 좋은 망원경으로 지구를 볼 수 있다면, 지구에서 그곳까지 다다르는 빛의 속도가 느리니, 우리는 과거의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하면 미제사건의 범인도 잡고 풀리지 않은 역사의 미스테리도 해결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상상을 해봤다. 지금이 지금이 아닌 것. 너와 내가 느끼는 현재가 사실은 옛날인 것. 많은 생각을 들게 했다. 나는 현재에 살고 있는가.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저 별들은 저렇게 행복한데, 지금도 행복할까. 지금의 별에게 묻고 싶었다. 미래의 나는 미소 짓고 있냐고. 그리고 너는 어떠냐고.
또한 우주에서 나는 먼지 한 톨 이란 말도 거대하고 웅장할 정도로 작은 족속이다. 나 하나쯤 없어져도 우주는 모른다. 내 방이 우주였다면 하루에도 몇 번씩 인류가 탄생하고 그만큼 또 죽을지라도, 나는 모르는 것처럼.
우주의 끝에 가면 뭐가 있을까. 끝이 있기는 하나. 우리는 아무렇게나 함부로 말할 수 있다. 2억 개의 은하수 조 단위의 별들 경단 위의 행성들이 있으면 무얼 하나. 우리의 뇌로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다. 70억은 너무 적은 숫자다.
광활하다 라는 말도 부족하다. 미칠 광에 넓을 활자를 썼는데, 미친 듯이 넓어도 모자라다. 더 미치고 미쳐도, 더 넓고 넓어도 역시 닿을 수 없다. 우주의 크기나 넓이를 시원하게 표현하는 언어학자는 그걸로 노벨상을 탈 것이다. 그렇게 큰 우주에서 나는 무엇일까. 왜 우주는 나를 낳았을까. 내가 세상에 뿌려진 이유는 뭘까. 혹 우주 밖의 어떤 이가 이런 하찮고 수준 낮은 생물체들을 이렇게 바글바글 만들었을까 하고 혐오스러워 하진 않을까. 우리가 벌레들을 보는 것처럼, 나도 한 마리 해충이 아닐까. 블랙홀에 들어가면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건의 지평선, 그 너머엔 무엇이 있을까.
외계인도 그렇다. 미지의 생명체는 두렵고 무섭게만 느껴지지만 그들의 입장에서는 우리가 외계인이다. 얼굴도 모르고 친하지도 않은 이웃 간에 대문 앞만 서성거려도 수상한 사람으로 의심을 받는데, 자꾸만 기웃거리면 기분이 안 나쁘겠는가. 물론 우주는 군사적으로 큰 가치가 있다. 기술의 발전에 따라 인간은 점점 우주에서 활동할 수 있는 범위와 행위를 넓힐 것이며 이는 각자의 이득을 취하는 국가의 입장으로서 당연한 일이다. 우주조약은 이미 50년도 더 전에 발효되었다. 아무도 가지지 않는 땅을 다수의 이익집단 중 어느 누구에게도 소유권이 없다면 탐낼 만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직 우주에 갈 이유가 없다. 먼 미래에는 지구가 금성화가 된다고 학자들은 보고 있지만, 그건 우리의 일도 아니고, 우리의 손녀의 손자의 일도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아직 모르는 이들의 터전 일지도 모르는 곳을 주인 없는 땅이라 규정짓고 멋대로 침범하는가? 좀비 사태나 불치병 바이러스 같은 아주 희박한 가능성의 일도 있겠지만, 우리는 아직 지구라는 요람을 지킬만하다고 본다. 우주는 분명 멋지고 낭만적인 공간일지 모르나, 그 감정을 만끽하는 것은 문학과 음악, 미술을 비롯한 예술로 족하다. 기술의 발전 속도가 우주의 팽창 속도를 따라잡는 날을 기대하는 사람은 대중이 아닌 과학자들이다. 우리는 그렇게 애를 쓰면서 우주에 가야 할까? 무지한 소리일지 모르겠다. 우주는 아직도 내게 불가침적인 공간으로만 느껴진다.
데이비드 와인 트롭의 <마스>라는 책은 화성 탐사를 중심으로 천문학을 30년간 연구해온 저자의 우주 지식을 비전문가들도 알기 쉽게 설명해 놓았다. 흥미가 없더라도 교양으로 혹은 지적 호기심을 촉발시킬 목적으로 읽을만한 책이라고 본다. 이 책의 첫 문장을 이 글의 마지막 문장으로 인용한다.
`인류에게 다른 행성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계에 사는 생명체를 혼란에 빠뜨릴 수도 있는 행동을 할 권리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