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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 Mar 14. 2020

집을 구하다 집을 읽게 되었다


어느 날 문득, 아파트가 싫어졌다. 일어나면 마주하는 풍경이 손에 잡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층에 자리한 내 집은 바깥 풍경을 조감하기엔 적당하다. 하지만 나는 멀리 보며 먹이를 구할 새가 아닌 것을 깨달았다. 거실을 나서면 그득하게 들어오는 낮은 풍경이 간절해지기 시작했다. ‘땅이 젖었네, 비가 왔구나’, ‘낙엽이 이리저리 뒹구네, 바람이 많이 부는구나’를 실감할 수 있는 집에서 살고 싶어졌다.    


단독주택을 꿈꾸게 되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기에, 이 변화는 실상 내게도 당황스러웠다. 한동안 무슨 바람이 들어 가입하게 된 텃밭 모임이 이 욕망을 더 부추기긴 했다. 정작 텃밭 농사는 하루 밭에 나가 김매고 오면 이튿날엔 바로 침 맞으러 가야 하는 부실한 허리 탓에 심드렁해지긴 했지만 말이다.     


딸애가 집을 떠나면서 살던 아파트를 처분할 절호의 기회가 왔다. 바로 동네 부동산 중개소에 집을 내놨다. 집값이 오르네 내리네 들썩이고 있었지만, 아파트고 대형 평수도 아니니 쉬이 나갈 줄 알았다. 그런데 아뿔싸, 집을 둘러보는 호객들이 중뿔나게 드나들기만 하고, 두 해가 지나도록 구매하겠다는 소식은 감감이지 않은가.


실 거주 목적이었으니 시세 차익은 바라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터무니없는 가격에 팔수도 없는 노릇이라, 작자 나서기를 바라는 게 하 세월이었다. 그러다 마침내, 그것도 코로나가 대한민국을 덮친 이 마당에 집이 팔렸다.    

‘이제 주택으로 이사 갈 수 있겠구나’ 들뜬 마음은 딱 하루였다. 받아놓은 날이니 이사할 집을 어서 구해야 했다. 주택은 덜컥 사면 안 된다, 살아보고 사야 한다, 주위에서 하도 말리는 바람에 전세를 구하기로 했다. 사실 주택을 떡하니 장만할 자금도 없었지만 말이다. 집을 판 다음 날부터 마땅한 집을 구하느라 동분서주하는 일상이 이어졌다.     


참, 넘치고 부족했다. 너무 작거나, 너무 크거나. 너무 비싸거나, 너무 먼 곳에 고립되어 있거나. 그래도 주택인데 작더라도 마당은 꼭 있어야 한다는 조건까지 충족시키려니 마침한 게 없었다. 이 코로나 재난 시국에 마스크를 끼긴 했지만 이집 저집 기웃대려니 그것도 영 편치가 않았다.



그렇게 이집 저집 돌다 들어간 한 집에서 나는 그만 울 뻔했다. 노인 혼자 집을 지키고 있었는데, 들어선 집은 거의 겨울 벌판처럼 추웠다. 방바닥엔 아예 불이 든 흔적이 없었다. 방바닥에 깔려있는 전기장판은 그나마 아주 오래된 모델이라 작동이 되나 싶을 정도였는데, 그거 하나에 의지해 몸을 데우고 사는 모양이었다. 난방을 뭐로 하시냐는 내 물음에 기름보일러라는 노인의 대답이 바닥이 냉골인 이유를 대신 설명하고 있었다. 노인 두 분이 사는 집이라고 했는데, 뭔가를 조리해 먹은 흔적도 없었다. 대체 어떻게 사시는 걸까.  

  

노인이 사는 주택 부근에 낮은 산이 있는데, 이 산에 둘레길이 조성되면서 산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더니, 땅값이 슬금슬금 오르기 시작했다. 처음엔 산의 낮은 지역으로만 음식점이 늘어나더니, 점차 위쪽으로도 개발이 이루어지면서 이제는 아예 높은 곳까지 음식점과 카페 그리고 유사 전원주택이 가파르게 들어섰다.


하지만 이 노인분처럼 이곳에서 농사지으며 사시던 분들한텐 이 현상이 그리 달가운 일만은 아니다. 치솟은 땅값이 사실 자식들한테나 좋은 일이지, 농사짓던 원주민 노인들한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땅값이 오른다고 생활비가 생기는 것이 아니고, 땅이든 집이든 팔아야 돈이 생기니, 그전엔 한기 서린 집에서 살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중개업자는 여러 집을 보게 해주었다. 나로서는 고마운 일이었지만, 남의 집에 들어설 때마다 이 피할 수 없는 일이 곤욕이 되기 시작했다. 타인의 삶을 훔쳐보는 느낌이 들기 시작하면서 불편해지기 시작했고, 게다 이제 집을 읽게 되기 시작하면서부터, 묘한 감정이 생기는 것이었다.


집들은 의외로 참 많은 것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이 어떤 삶을 꾸리고 있는지 알아챌 수 있었다고나 할까. 물론 내 안목이라야 고작, ‘선무당’임에 틀림없지만 말이다. 어떤 집엔 삶이 있었고 어떤 집엔 삶이 없었다. 어떤 집은 훈훈했고 어떤 집은 싸늘했다. 어떤 집은 정겨웠고 어떤 집은 삭막했다. 어떤 집은 활기 있었고 어떤 집은 우울했다. 어떤 집은 도란도란 이야기가 있었고, 어떤 집은 지독하게 고독했다.    


문득, 집단 감염이 일어나 소란이 일었던 대구의 한 아파트가 생각났다. 한 집에서 낯선 사람과 집을 공유해야 하는 일은 어떤 주거 경험일까. 그들의 집을 보게 된다면, 그곳에선 어떤 이야기가 들려올까. 다행히도 낯선 이와 이웃이 될 수 있었던 이야기? 아니면 전혀 공감할 수 없는 두 여인이 철저한 타인으로 곤욕스럽게 살고 있는 이야기?


여자들만 산다고 특권인 거 아니냐는 몰감(沒感)한 목소리는 낯선 이와 한 집에서 살아야 하는 불편함이 어떤 것일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소치다. 여성들이 그 아파트를 선택한 이유는 단지 임대료가 싸기 때문이다. 특권인 아파트라면 저렴한 집에 공실이 그렇게 많은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   

 


마당 있는 집을 찾아    


정말 전원주택이라고 할만한 집을 소개하겠노라 한 중개업자가 알려왔다. 그가 소개한 집은 낮은 산을 옆으로 끼고 깊숙하고 한적한 곳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집 근처에 작지 않은 논이 펼쳐져 있었고, 집 옆쪽 산기슭에는 닭을 치는 닭장까지 있었다.


규모 상으로는 지금까지 본 집 중에 가장 컸다. 나는 집이 왜 이렇게 클까 의아했고, 그 집의 규모에 이미 질리고 있었다. 집을 보고 든 첫 생각이, 저 큰 집을 어떻게 치우며 사나, 였으니 말이다. 집을 보는 남성인 중개업자와 남편의 반응은, 집이라는 공간에도 젠더의 격차가 현저하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두 남성은 크고 넓은 집을 입이 마르도록 연호하고 있었다. 내 생각은 달랐다.     


집에 들어서니 젊은 주부가 맞아주었다. 삼 대가 산다는 걸로 미루어 며느리인 듯했다. 방이 여섯 개인 집을 안내하던 그는, 낯선 방문객에게 방을 보여주지 않을 심산으로 방문을 잠근 채 심술을 부리는 아들 때문인지, 이미 퍼지고 있는 음식 냄새로 미루어 음식 조리를 하다 나와 분주한 탓인지, 허둥대고 있었다.    

 

삼대가 살고 식구가 여덟 명이라는 사실이 이 집의 규모와 많은 개수의 방이 이유를 설명하고 있었다. 집은 구조가 복잡했다. 본래 한 동이었던 집을 증축하며 집을 이어지은 듯했는데, 미로 같은 계단을 돌아가니 또 한 채의 집이 있었다.


나는 이미 멀미가 나고 있었다. 젊은 주부는 이 크고 복잡한 집을 대체 어떻게 치우고 사는 걸까. 시부모와 아직 어린아이들은 어떻게 돌보는 것이며, 매 끼니를 어떻게 감당하고 있는 걸까. 인적도 드물어 버스도 다니지 않는 이곳에서 아이들은 어떻게 통학을 시키며 사는 걸까.     


미로 같은 계단을 돌아 당도한 곳은 널찍한 부엌이었다. 아직 네 시밖에 되지 않은 시간이었는데 이미, 저녁거리가 스토브 위에서 끓고 있었다. 집이 커서 좋다며 연실 꿍짝이 맞던 두 남성은, 부엌에 들어서서는 음식 냄새가 좋다며 장단을 맞추고 있었다.


스토브에 올려진 냄비는 여덟 식구 배를 채울 만큼 큰 곰솥 크기였고, 냄새로 봐서는 닭이 끓고 있는 것 같았다. 네 시도 안 된 시간에 저녁을 짓고, 성깔 부리는 아이 비위 맞추고, 갑자기 들이닥쳐 집 여기저기를 흘끔대는 낯선 방문객을 안내하느라 얼이 나간 그가, 나는 안쓰러웠다.     


닭장이 올려다 보이는 데크가 이 집의 하이라이트인 듯했다. 키우는 닭이 낳아주는 알을 받아 먹는 것이 어떤 일인지 알 수 없는 나는, 두 남성의 호들갑(키운 알이 진짜 맛있다는 둥, 뭐니 뭐니 해도 야외에서 구워 먹는 바비큐가 최고라는 둥, 이렇게 공기 좋은 곳에서 술을 마시면 취하지도 않는다는 둥)에 이미 질려 있었다.


두 남성 방문객의 말에 추임새를 넣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했는지, 파김치가 된 주부는 억지웃음을 지으며 대꾸하고 있었다. 빨리 이 집에서 나가는 게 그를 구제하는 일일 것 같았다.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 또한 정말 이 집에서 나가고 싶지 않을까 하는. 종종대며 종일 움직여도 집 구석구석 쓸고 닦다 보면 하루가 그냥 날아갈 이 큰 집에서, 삼시 세끼 따뜻한 밥을 대령해야 하는 이 대가족 집에서, 두부 한 모를 살라 쳐도 승용차를 타고 나가야 하는 이 불편한 집에서.    


이런 게 진짜 전원주택이라며, 이렇게 마당 넓고 큰 집은 구하기 어렵다며 너스레를 떠는 중개업자에게, 이렇게까지 큰 집이 필요한 건 아니라고 말하고 헤어졌다. 집만 큰 게 아니라 마당 또한 큰 건 사실이었지만, 마당이 필요했던 거지 운동장이 필요했던 것은 아니니. 집을 보던 내내 심기가 불편했던 나는 차에 오르자마자 남편에게 지청구를 날렸다. 저렇게 큰 집이 필요한 건 아니라고, 저 큰 집을 치우느라 내 남은 인생을 허비하고 싶지는 않다고.

    

남편은 집을 보는 내내 큰 집만 보면 크고 넓으니 얼마나 좋냐며 입꼬리가 올라갔다. 남편은 좋을 것이다. 몸만 나왔다 들어갔다 하면 되니, 집이야 클수록 드나들기 좋지 않겠는가. 실평수 35평 아파트를 치우고 사는 것만 해도 허리가 빠질 노릇인 주부인 내 처지는 고려 대상이 아닌 것이다. 주말이면 어쩌다 청소기 한 번 돌리는 걸로 큰 가사분담이나 하는 양하는 남편에게 집은, 누릴 공간이지 단 한 번도 쓸고 닦을 공간인 적이 없었을 테니 말이다.

    

집 탐험을 그만 끝내야 했다. 이번 탐험은 집도 이야기를 품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과, 집이라는 공간이 얼마나 현격한 젠더의 격차가 존재하는 장인가를 알게 했다. 다행히 한 집이 눈에 들어왔다. 작은 마당, 크지 않은 집. 상추정도는 심을 수 있는 마당이 있고, 치우느라 하루를 다 보내지 않아도 될 만한 크기의 집.


이제 일어나면 땅이 보이는 낮은 풍경으로 아침을 맞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지금은 들뜨지만 어찌 보면 헛꿈일지 모른다. 그렇게 바라던 낮은 풍경도 익숙해지면 무감한 일상이 될지 모르니. 이렇든 저렇든, 문 닫고 들어가면 이웃에 무슨 일이 있어도 모르는 공동(空洞) 주택 아파트 살이는 이렇게 끝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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