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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 Apr 19. 2023

신은 어딨냐고 외쳐도 대답이 들리지 않았다

열아홉살 아동학대 증언 기록 <숨지 않아야 트이는 길> 을 읽고


한때 ‘정인이 사건’으로 불린 아동학대 사건이 있었다. 다들 무슨 난리라도 난 듯 분개했지만, 지금도 여전히 아이들이 맞고 아프고 죽고 있는 걸 목도하고 있다     


지인의 권유로 새인이 쓴 <숨지 않아야 트이는 길>을 읽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학대당한 소녀가 열아홉 살이 되어 쓴 자기 이야기였다. 탄식 없이 읽기 힘들었다.   

   

새인은 어려서 입양이 되었다. 아버지라는 자는 목사였고, 엄마라는 자는 꽤 배운 사람인 듯했다. 목사고 뭐고, 배운 사람이고 뭐고, 아이들을 학대하는 데는 격이 없나 보다. 이러려고 아이들을 데려갔나, 그것도 셋이나...    

 

새인은 둘째였는데, 엄마라는 자는 첫째를 편애했다. 그게 권력이 되었는지 첫째가 막내를 팼다. 새인은 엄마에게 맞았고 막내는 형에게 맞았다. 폭력의 대물림인데, 이처럼 폭력을 내면화한 자들은 반성이라는 걸 모른다. 이들에게 반성할 방법은 딱 한 가지다. 때린 만큼 맞아보면 된다. 꼭 그만큼이어야 한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지만, 그것도 힘을 쓸 수 있는 사람에게나 해당하는 말이다.  

어려서부터 맞고 자란 아이들은 폭력에 압도당하기 때문에 문제의 원인을 타인에게 돌리지 못한다. 자신이 뭘 잘못했다고 생각해버린다. 내가 더 잘하면, 어쩌면 맞지 않을 수 있다고 믿게 된다. 하지만 이런 아이의 노력은 소용없다. 때리는 사람은 맞는 사람이 뭘 잘못해서 때리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잘해도 매 맞는 걸 피할 도리가 없게 되면 자신의 존재 자체를 탓한다. 왜 태어났을까, 그냥 사라지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몰두하게 된다. 때리는 사람에게 맞설 수 없으니 자신을 벌한다. 자신이 자신을 학대하는 최악의 형벌을 내리는 것이다. 새인의 글은 이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가해와 피해의 교차     


어릴 때 내 엄마는 호랑이 엄마였다. 당시는 지금처럼 친구 같은 부모는 존재하지 않았다. 체벌이 거의 모든 부모의 훈육의 수단이었다. 손에 잡히는 것이 매 채가 되었다. 총채, 빗자루, 빨래 방망이, 연탄집게 등... 나는 그나마 덜 맞았지만 언니들은 좀 맞았다. 기억이 생생하다.      


몇 년 전 영화 <세 자매>를 보다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 영화 속 정황이 매 맞던 언니들과 이를 바라보던 나처럼 느껴져 급속히 이입된 때문이었다. 매 맞는 언니가 너무 가여웠지만, 엄마를(사실은 엄마보다 오빠가 더 자주 때렸다) 무서워서 말리지 못했다. 그러다 내가 맞을까 봐, 나는 숨죽이고 있었다. 당시 나는 언니나 오빠보다 무척 어렸기에 무엇을 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런 비굴한 나를 나는 평생 용서하지 못했던 것 같다. 맞을까 봐 모른 체했던 나를 말이다. 

      

 

폭력은 이런 것이다. 사람을 망가뜨린다. 하지만 이런 나는 피해자만도 아니었다. 나는 매질하는 엄마와 오빠를 증오했지만, 어느새 폭력의 기운에 젖어들었는지 모른다. 딸아이가 대여섯 살 무렵이었다. 아이가 사라졌다. 유치원에서 돌아와 놀이터로 나간 아이가 오후 느지막이 되도록 안 나타나자 나는 공포에 휩싸였다. 동네방네 샅샅이 뒤져도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다리에 힘이 풀리고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관리사무소에 부탁해 방송을 두 번이나 했어도 아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다 땅거미가 질 무렵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이가 나타났다. 같은 동에 사는 언니하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단다. 얼마나 노느라 정신이 팔렸으면 그렇게 떠드는 방송 소리를 못 들었을까. ‘아이고 하느님 고맙습니다’ 했지만, 동시에 부아가 불처럼 일어났다. 애는 찾았는데 화가 풀리지 않았다. 아이의 엉덩이를 때리다 분에 안 차 문밖에 반 시간쯤 세워두었다. 그래도 내 분은 풀리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해 다 큰 딸아이가 그때 일을 끄집어냈다. 당장 사과하라는 투는 아니었지만, 한 번은 짚고 넘어가리라 별렀던 낌새다. 나는 잊고 있던 그 일을 딸애는 잊지 못한 것이다. 나는 미안함과 함께, 그때 딸애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엄청난 공포가 동시에 떠올라 등골이 서늘했지만, 이를 이해시킬 수는 없었다. 싹싹 빌었다. 아이의 용서를 받았지만, 지금껏 그때 그 일을 마음에 새겨 둔 딸애는 그제야 그때에서 벗어났을 것이다. 많이 미안했다.     

 


책 속의 새인은 추운 겨울날 내복만 입은 채 쫓겨났다. 이도 모자라 엄마라는 자는 밖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아이에게 물을 한 바가지 뿌렸다. 찬 공기에 뿌린 물이 얼어붙으며 새인의 마음도 돌이킬 수 없는 빙점 이하로 떨어졌을 것이다. 그때 추위로 이를 딱딱 부딪치며 새긴 ‘나는 왜 태어났을까’하는 슬픔과 고립감은 열아홉 살이 될 때까지 사라지지 않았다.      


다행히 더 큰 불행이 닥치기 전에 입양부모에게서 분리조치 되었지만, 이미 새인의 몸과 마음은 회복이 어려운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쓸모없는, 죽어야 마땅한 존재라는 자기혐오는 무엇을 해도 효능감을 느끼지 못하게 했고, 타인과의 관계 맺기가 지속 불가능했다.      


책을 쓰면서 새인은 조금 아주 조금 놓여났을까. 쓰는 일은 말하는 일이다. 새인이 세상을 향해 자신의 고통을 토로하면서, 자신을 가둔 학대의 결계에서 조금이라고 헤어 나왔기를 바란다. 새인이 당한 고통이 자기 잘못이 아니라는 확신을 조금이라도 얻었기를 바란다. 새인! 부디 조금 더 살아갈 힘을 내보기를. 부디 조금만 더 자신을 보살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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