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냥 Apr 18. 2023

'청담동 며느리' 그만둡니다

JTBC 드라마 <닥터 차정숙> 리뷰     


최근 드라마에 여자 배우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넷플리스 드라마 <퀸메이커>는 주 조연 대부분이 여자 배우들이고, JTBC 드라마 <닥터 차정숙>은 이만큼은 아니지만 차정숙이라는 여자 캐릭터를 중심으로 여성들이 꽤 등장한다. 또 웹 드라마 <종이달>은 정서적으로 학대하는 아내와 그의 여자 친구들을 주축으로 서사가 구성된다.      


다만 내 취향이 잘나가는 여자의 성공담보단 평범한 여자들의 고군분투를 편애하는 편이라 약간의 아쉬움이 있긴 하다. 그렇지만 이런 여자 저런 여자의 이야기가 뒤섞이다 마침내 나쁜 여자, 악독한 여자, 잔인한 여자, 교활한 여자, 밝히는 여자 등의 캐릭터가 분출돼, 여자 또한 남자처럼 본성을 가진 인간이며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인간 군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환기할 수 있기에 반갑다. 


'청담동 며느리'대신 ‘로라’가 되겠다

     

<닥터 차정숙>은 1회를 보고 더 볼까 말까를 망설였다. 상류 계급의 이야기다 보니 또 그들만의 세상을 봐야 하는 건가 하는 거부감이 일었기 때문이다. 게다 2023년에도 지순한 아줌마가 가정에 헌신한다는 이야기를 봐야 하는 건가 싶어 지레 부아가 났다. 


그럼에도 계속 볼 결심을 한 건, 그가 자조하는 장롱 면허라는 것이 의사면허고, 분명 상류층이긴 하지만 그의 명의로 된 것이 고작 휴대폰밖에 없다는 자각을 보면서다. 아마도 이 드라마는 ‘청담동 며느리’의 반란 서사로 나아갈 모양이다. 게다 건장하고 젊은 훈남 의사와의 로맨스까지 엮일 모양인데, 이건 좀 식상하고. 여자의 각성과 홀로서기에 반드시 남자의 로맨스 조력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차정숙(엄정화)은 꽤 공부 잘하는 의학도였다. 그런 그가 의사면허를 장롱에 고이 간직하게 된 연유는 덜컥 임신 때문이었다. 남성 중심 사회와 가정의 부정의가 의례 그렇듯, 부부가 의사여도 출산과 양육 독박은 여자의 몫이다. 그는 그렇게 ‘경단녀’가 되었고 이를 애써 ‘청담동 며느리’로 포장하고 살았다. 이렇게 헌신하면 언젠가 그 영광이 자신에게 돌아올 거라 믿었던 걸까? 하지만 그의 희망고문은 급성 간염이라는 불행 앞에 다른 국면으로 나아간다.      


차정숙은 간이식을 받지 않으면 회생하기 어렵다는 진단을 받는다. 다행히 남편 서인호(김병철)가 간 이식이 가능하다는 검사 결과가 나왔지만 그의 태도가 야릇하다. 선뜻 내키지 않는 모양새다. 나는 속으로 “쯔쯔 그럴 줄 알았다” 했지만, 드라마를 같이 시청하던 남편은 “아니 저걸 떼 줘야지 왜 고민해. 이해가 안 되네”하며 짐짓 사랑과 신뢰가 돈독한 남편인 체 했다.      


내가 남편의 진심?을 고깝게 본 건 과거의 기억 때문이었다. 십수년 전 가족 중 하나가 급성 간염이 걸렸다. 간이식이 필요했다. 가족 중 이식이 가능했던 건 나뿐이었다. 나는 그를 몹시 사랑하지는 않았지만 간을 떼 주는 것을 고민하지는 않았다. 살리고 싶었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고 남편도 동의할 거라는 예상과 달리  간이식에 부정적이었다. 그때 자신의 모습을 이토록 까맣게 잊고, 간 떼 주기를 망설이는 차정숙의 남편과 사촌동생에 탄식하고 있었다. 

     

차정숙은 간이식을 망설이는 남편 인호와 이를 하늘이 무너지는 일쯤으로 여기고 반대하는 시어머니를 보며 착잡하다. 왜 안 그렇겠는가. 참 알뜰히도 부려먹더니 정숙을 소중한 아내나 며느리로 여긴 게 아니라 이집의 가사 도우미쯤으로 여겼다는 위선이 만천하에 까발겨지지 않았는가. 목숨이 경각에 이르자 드러난 가족의 진면목에 정숙은 자신의 삶이 모래위에 지어진  성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인호가 간을 떼 주지 않은 것은 어찌 보면 다행이었다. 물론 다른 장기 공여자가 짠하고 나타나 그를 구사일생으로 구원한다는 극적인 드라마 연출은 세심하지 못했다. 장기간 장기 기증을 기다리며 투병하는 많은 환자들이 이 장면을 보고 어떤 심정이 될지 더 고민했어야 하지 않을까. 


만일 정숙이 인호의 간을 억지로 떼 받았다면 그의 가사도우미 삶은 노예의 삶으로 더 전락했을 것이다. 의사 면허가 있는 아내를 집에 주저앉히고도 늘 당당하던 남편에게 정말 이지 꼼작 못할 노비문서를 쥐여 주는 셈이었을 테니 말이다.      


천운으로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회복하면서 정숙은 자신의 삶을 리셋하겠다고 마음먹는다. 집에서의 자신의 존재 이유를 아프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성장한 아이들은 더 이상 엄마의 품을 귀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며, 20년을 헌신했어도 집의 공동명의조차 허락하지 않는 시모의 서슬퍼런 차별의식도 속살을 드러냈다. 정숙을 번번이 무시하는 것은 물론, 결혼 후 얼마 안 되어 시작된 인호의 외도는 정숙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각방살이 섹스리스 부부로 겨우 유지되고 있지 않은가.      


인호의 내연녀가 오래전 의대 시절 애인 승희(명세빈)라는 설정은 참으로 구리다. 왜 드라마에는 성공하고도 못난 유부남에게 연연하는 커리어우먼이 번번이 등장하는 걸까? 단언하건데 이런 어리석은 여자는 없다. 게다 드라마가 한 끗만 어긋나면 유능한 두 여자가 무능한 한 남자 때문에 미워하고 우는 서사가 될 가능성이 있다. ‘여적여’라니, 제발 이러지 말자. 



정숙이 한때 승희의 애인이었던 인호를 작정하고 유혹해 임신하고 결혼한 것이 아닌 바에야 이것이 죄일 수는 없다. 죄가 있다면, 과거에는 애인 승희를 배신하고, 이제는 20년 간 가족에 헌신한 아내 정숙의 등에 칼을 꽂으려는 인호에게 있다. 왜 그는 한 번도 한 여자에게 진실하지 못한가? 한마디로 여자끼리 싸우는 서사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아직 남편의 오랜 배신을 모르지만 정숙은 희미하게 어떤 때가 왔다는 것을 느낀다. 우선 평생 언감생심 꿈도 못 꾸던 명품 소비로 식구들을 기함시키고, 친구의 응원 아래 다시 전문의 과정에 도전한다. 인호는 정숙의 전문의 도전을 간단히 무시해치우지만, 이미 정숙의 투지는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시모가 억지로 내미는 호의(1년 된 차를 양도하는)와 여행이나 다녀오라는 남편의 가식된 배려를 단호히 거절한다. 그는 장롱 속에 고이 간직했던 ‘의사 차정숙’이 새겨진 오래된 의사 가운을 꺼내들고 전공도서와 전문의 과정 시험서를 펴든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마흔 여섯 의사 차정숙의 도전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혹시라도, 열심히 싸우고 허무하게 컴백 홈하는 서사로 마무리된다면 몹시 화가 날 듯하다. 정숙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는 것은 물론이다.

작가의 이전글 "환갑에 뜬"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