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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여행자>의 김새론을 애도한다

배우 김새론의 죽음에 부쳐

by 그냥 Feb 20. 2025


김새론이 영면했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놀랐다. 악성 댓글에 시달리고 있다는 말을 듣긴 했는데, 얼마나 심각했으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을까. 비통하다. 작가 은유의 표현을 빌려 악플의 심각성을 표현하자면, ‘이래도 안 죽을래’라는 잔인함이었단다. 타인에게 살아갈 의욕을 꺾을 정도로 악랄한 댓글을 다는 사람들은 대체 어떤 종류의 인간인 걸까.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9살 김새론의 명연기     


배우 김새론을 언급할 때 보통 <아저씨>를 꼽지만, 나는 단연 <여행자>라 말하고 싶다. <여행자>에서 김새론이 보여준 연기는 경이로움 그 자체다. 그녀는 영화를 보자마자 바로 9살 어린 나이에 보육원에 맡겨진 주인공 진희에게 이입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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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진희는 아버지와 짧은 여행을 마치고 보육원에 맡겨진다. 아버지가 자신을 보육원에 버리고 갔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진희는 보육원에 적응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식사를 거부하고 보육원 선생님들의 말을 듣지 않고 보육원 아이들을 거부한다. 저항의 의지는 마침내 스스로 판 무덤 같은 곳에 드러누워 세상과 단절하려는 모습을 연출함으로써 절정에 이른다.    

  

스스로 단절의 의식을 거행하고 다시 보육원에 돌아온 진희는 어딘가 달라졌다. 새로 태어난 것이다. 비로소 밥을 먹고 보육원 선생님들을 바라보고 아이들과 어울리게 된다. 다시 살아보기로 한 것이다. 영화는 돌아오지 않을 아버지를 기다리는 대신, 자신을 딸로 받아주고 키워줄 해외 입양 가족에게로 떠나는 진희의 야무진 얼굴을 조명하며 끝난다.      


사실 야무지다는 수사는 필자의 표현력 부족이고, 떠나는 그녀의 표정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기대와 흥분과 두려움 그리고 나를 버린 여기에 대한 서운함과 분함이 뒤섞인 매우 복잡한 심경을 드러낸다. 결코 잊을 수 없는 명연기였다.      


관객은 떠나는 진희의 모습에서 연약한 소녀의 어쩔 수 없음이 아니라, 삶을 받아들이고 나아가려는 인간으로서의 존엄함을 목격하게 된다. 소녀이나 인간인 한 사람의 존엄 앞에서 어떻게 감동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관객은 진희가 어느 곳에서건 삶을 잘 이어나가 소녀에서 여성으로 성장하기를 기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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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진희의 성장 서사는 그간 입양인의 삶을 다루는 태도와 결이 다르다. 해외에 입양된 대부분의 사례들이 불법이었고, 이로 인해 많은 입양인이 큰 고통을 겪었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지만, 진희의 서사는 여기에 집중하지 않는다.      


영화에서 제공하다시피 진희의 아버지는 양육을 포기했다. 그렇다고 이 사실 자체가 진희의 해외 입양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진희를 해외 입양시키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동의가 필수지만 영화는 이 과정에 집중하지 않기를 선택한다. 대신 성인이 될 때까지 보육원에 홀로 남겨지는 것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입양되기 위해 분투하는 버려진 소녀들의 의지를 조명하기로 작정한다.      


이는 분명히 해외 입양으로 고통을 느낀 입양인의 입장에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영화가 불법으로 해외 입양된 피해자들의 불법 카르텔을 파헤치려는 서사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든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선택하려는 소녀들의 의지를 담으려 했다는 점에서 이 논란은 차치하기로 하자.     


영화는 어린 소녀 진희가 한 인간으로 어떤 선택과 노력으로 가족을 만들려 하는지에 포커싱 한다. 진희는 비록 아이지만 자신에게 들이닥치는 삶을 피동적으로 수용하는 대신 기꺼이 끌어안음으로써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간다. 이러한 진희의 의외적이고 대범한 캐릭터는 한국에서 보기 드문 주체적 소녀를 형상화하는데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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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관객은 이렇게 독특하고 대담한 캐릭터를 김새론만큼 해낼 연기자가 있을지 감탄하게 된다. 9살 진희처럼 배우 김새론도 그쯤의 나이였을 것이다. 9살 김새론이 펼친 믿을 수 없는 정교한 연기를 보며 보기 드문 명배우가 탄생했음을 확신하게 된다. 이후 <도희야>에서 보여준 충격적인 명연기는 또 어땠는가. 이렇게 나는 아역배우 김새론이 아니라 배우 김새론을 발견했고 그녀의 팬이 되었다.       


한 사람을 죽음으로 내몬 악플러들, 당신들은 얼마나 윤리적 인간인가      


소녀에서 여성이 돼가는 인간으로도 배우로도 아름다운 그녀의 성장을 지켜보던 중이었을 것이다. 2023년 드라마 <사냥개들>에 나오는 김새론을 보며 무척 반가웠다. 강인하고 거친 캐릭터를 잘 소화해 내고 있어 ‘역시 김새론’하며 혼자 엄지 척을 했던가.      


재미있게 보던 중 갑자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그녀가 드라마에서 사라졌다. 그녀가 사라짐과 동시에 드라마의 서사가 허술해지며 흥미를 잃게 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녀의 음주운전 사고 때문에 편집이 되면서 어색하게 퇴장했던 것이었다.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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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 운전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다행히 인명 피해가 없었고 벌금형을 받았지만 악플러들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은 걸까. 끝없는 인격 침해가 벌어졌다. 세상에 어떤 사람이 음주 운전했다고 이렇게까지 지구 끝까지 쫓아가 응징하겠다는 미친 광기에 시달리겠는가. 연예인이면 이래도 되는가.    

  

연예인은 그저 사람일 뿐이다. 잘못할 수 있고 실수할 수 있고 때로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다. 이것이 괜찮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니까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다. 죄를 저질렀는데 어떤 특권이 작용해 죗값을 치르지 않았다면 모를까, 마땅한 죗값을 치렀다면 그만 물어뜯어야 하지 않나.      


개별 악플러들의 악랄한 댓글뿐만이 아니다. 이목을 끌기 위해 잔인하게 뽑은 헤드라인으로 김새론을 악의적으로 공격한 언론들의 기사도 극악무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조회수 장사에 눈이 벌게 사람을 죽일 정도로 기사를 쓴 기자들은 그 죄를 어떻게 갚을 것인가. ‘기레기’라는 수치에서 벗어날 생각은 않고 점입가경이다.    

  

말의 테러로 김새론뿐 아니라 적지 않은 연예인들이 악랄한 악플에 시달리다 세상을 등지는 사건이 이어지고 있다. 한 인간을 죽음으로 내몬 악플러들과 기자들은 저런 사악한 짓으로 사람에게 고통을 가하며 쾌락을 느끼고 이로써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는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걸까. 저런 저열한 악플이 자신의 도덕성을 과시하고 증명할 기회라고 생각하는 걸까. 한심하다. 한 사람을 저승으로 보내야 직성이 풀리는 악랄한 좀비 악플러들에게 김새론을 살려내라고, 니들이 무슨 짓을 한 지 아느냐고, 소리 지르고 싶다. 애통하고 애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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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새론이 영면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고 나는 계속 <여행자>를 떠올렸다. 미지의 세계로 용감히 떠났던 진희처럼, 이승에서의 온갖 모욕과 고통과 슬픔을 내던지고 떠나기를. 명배우 김새론은 팬들의 마음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미안하고 비통한 마음에 애도가 계속 뒷걸음질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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