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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집회 발언에서 연대 촉구한 용주골 여성의 현재는?

<백날 지워봐라, 우리가 사라지나> 부산 서면 '노래방 도우미' 채록 중

by 그냥


누가 뭐래도 윤석열 계엄 사태에서 나라를 구한 주체는 여성, 그것도 ‘엠지’ 여성들이다. 집회 현장에 있던 누구라도 이를 부정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런 이들의 공로는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는 윤리적 선행의 주체로 남으라는 묵시적 정치적 프레임으로 일거에 무화되었다. 나라를 구한 이들이 탄핵 정국의 집회 현장에서 낸 목소리들은 놀라울 정도로 빨리 휘발되었다. 예견된 정치적 교활함에 혀를 차며 속으로 이랬었다. ‘암만 그래 봐라. 그런다고 없어지나.’


내 속마음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나 보다. 불현듯 이런 제목의 책 <백날 지워봐라, 우리가 사라지나>를 만나고 있으니 말이다. 책은 계엄 집회 현장 곳곳을 채우고 지킨 젊은 여성들의 활약상을 인터뷰를 통해 기록했다.


기록은 사회가 바라는 ‘대견한 딸들’이라는 식으로 미담화되지 않았다. 오히려 생생한 고난의 집회 체험기와 이를 통한 정치적 주체로의 성장담으로 채워져 있다. 저마다 집회장에 나올 수밖에 없었던 각각의 고민과 불안과 답답함으로 광장에 서 있었던 심정이 녹아 있었다. 이중 내 관심을 가장 크게 끌었던 부산 서면의 ‘노래방 도우미’ 김유진(가명)의 채록에 집중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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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서면의 92년생 김유진이 스스로를 ‘노래방 도우미’라 밝히며 나선 집회 발언은 뜻밖의 반응을 일으켰다. 이 소식을 가장 먼저 접하게 된 경로는 용주골 성매매 여성에 연대하는 시민 모임의 SNS 커뮤니티를 통해서였다. 나는 너무 놀랐는데, 그 이유는 흔히 성매매 여성으로 낙인되는 ‘노래방 도우미’ 여성의 발언에 집회 청중이 보인 긍정적 반응 때문이었다.


이는 파주시 시민들이 보이는 성매매 종사자에 대한 참혹한 혐오 반응과 극적으로 대비되었다. 섣불리 분석해보자면, ‘노래방 도우미’라는 일이 집결지 종사자보다는 좀 나은 위치라고 치부되거나, ‘성매매 종사자가 그렇게 갸륵한 생각을 했어?’라는 식의 비루한 PC함일 것이다. 여튼 내겐 반갑지만 문제적 반응이었다.


김유진의 집회 발언과 그 반응에 비해, 용주골 여성의 발언(물론 반 계엄 반 탄핵발언은 아니지만)에 대한 비하과 혐오와 저주는 왜 이렇게 과도한 걸까. 여기엔 알 수 있고 알 수 없는 여러 배경이 있겠지만, 2년 넘게 용주골 종사자들에 연대하며 찾은 소견은 이렇다.



관이 쏟아내는 일방적 보도와 이를 비판 없이 수용하는 여론, 과거 미군 기지촌이었던 역사를 무조건 피해화해 그 이면의 역사적 진실(국가와 파주시가 포주였고, 기지촌 여성들을 통해 먹고살았던 용주골 주민들이 수치심을 은폐하고자 기지촌 여성을 혐오)을 은폐 왜곡함으로써 기지촌의 유산인 집결지를 범죄의 소굴로 이곳의 종사자를 ‘갇힌 피해자’로 만드는 구태적 반성매매 프레임, 강자 동일시가 보편화된 사회에서 최약자인 성매매 여성에 대한 끝도 없는 혐오와 성매매 여성 혐오가 곧 여성 혐오의 다른 버전임을 감춘 채 반성매매가 성매매 여성을 구제한다고 믿는 가부장주의와 공모된 신념,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임기 내 치적 중 성매매 집결지 폐쇄를 일 번으로 내세우려는 김경일 시장의 얄팍한 정치적 노림수와 출세하고자 승진하고자 시장에 부역하는 비루한 시의원들과 ‘늘공’들과 시민들의 ‘악의 평범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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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파주시 김경일 시장이 시장에 당선된 뒤, 선거 공약에도 없는 용주골 연내 폐쇄 정책을 선언한 후 용주골 사태는 급박하고 거칠게 전개되었다. 용주골 건물의 강제 철거가 살벌하게 진행되었고, 영업 중인 건물의 코 앞에 종사자들의 일거수 일투족 감시를 목적으로 한CCTV를 달겠다고 새벽을 틈다 기습했고, 경찰이 함정 수사로 종사자들을 겁박해 법정에 세웠다. 이에 저항하는 용주골 주민과 종사자 그리고 시민 활동가를 교묘히 꼬투리 잡아 공무집행 방해로 고발하는 등 필설로 다할 수 없는 폭력과 압박이 거셌다.



이와 더불어 용주골에 반대하는 시민을 교묘히 규합해 마치 자발적 시민 모임인 양 꾸려 용주골 골목골목을 누비며 감시와 조롱을 퍼붓는 ‘여행길’을 벌이고, 밤이면 여성친화도시라 새겨진 노란색 조끼를 입고 집결지 주변을 범죄자 색출을 맡은 자경단이라도 되는 양 ‘올빼미’ 활동으로 활보하며 종사자들을 억압했다. 이러한 인권침해 정황은 국가인권위에 제소 중이다.


관보와 파주시 친화적인 지역 신문에 파주시장의 폐쇄 정책을 옹호하는 기사가 잇달아 실렸고 댓글 역시 김경일 시장에 대한 상찬이었다. 그 댓글들 중 어느 것도 용주골이 과거 기지촌의 가슴 아픈 유산이라는 성찰은 온데 간데 없고, 용주골 종사자들을 쉽게 돈 벌어 사치하는 타락녀 쯤으로 묘사하기 일쑤였다.


혹여 파주시의 일반적 폭력폐쇄 행정에 비판적인 기사가 실리기라도 하면, 댓글부대라도 가동된 양 지면에 도저히 옮길 수 없는 혐오와 저주를 쏟아냈다. 이중 “몸 파느니 쿠팡해라”라는 비아냥대는 댓글이 달린 적이 있는데, 이를 알게 된 쿠팡물류지회가 성 노동 혐오에 쿠팡 노동을 이용하지 말라는 입장문을 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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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문은, 쿠팡은 고강도 노동으로 사망 사건이 끊이지 않는 악명높은 노동 현장인데, 실상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쿠팡 노동이 마치 성노동보다 고귀한 노동이라는 위계를 세우지 말라는취지였다. 이처럼 댓글을 다는 사람들은 노동과 빈곤과 계급에 대한 성찰 없이 무조건적인 혐오를 쏟아냈다. 이 와중에 부산 서면의 그녀에게 집중된 관심과 호감이 용주골의 험악한 여론에 비해 너무나 황홀할 지경이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부러웠다.


이렇게 내 초미의 관심사였던 김유진의 목소리를 ‘광장에 선 딸들의 이야기’에서 만났으나 그녀의 인터뷰가 가장 짧아서 아쉬웠다. 그간 그녀가 행한 인터뷰가 내로라라는 일간지에도 실릴 정도로 꽤 많이 나왔긴 해서인가. 내용도 타 지면의 인터뷰와 비슷한 점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용주골 사태를 짧게라도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어서 반가웠다.


그녀는 용주골 소식을 꾸준히 팔로우하고 있었고, 서면 집회 이후 돌연 용주골에 다녀갔던 소식을 전해 들었는데 그 얘기도 인터뷰 내용에 있었다. 한편 이런 지지와 연대를 보여주는 발언이 성매매 종사자 당사자가 아니면 나올 수 없는 건가 싶어 서글프기도 했다.



이번 계엄 정국에서 심금을 울리는 집회 발언이 많이 나왔지만 단연 그녀의 발언에 집중했던 건, 단지 그녀의 말이 정치적으로 올바르기보다 계엄 후 평화와 안정을 되찾더라도 우리 사회가 정말로 회복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호소했다는 데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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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술집 여자’들이라도 시민권과 정치적 발언권이 있음을 명징히 상기시키면서, 대중의 정치적 관심이 탄핵되었다고 끝날 일회성 이벤트로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돌아보고 보살필 곳에 살고 있는 집에서 자다 쫓겨나는 성매매 종사자가 있다는 사실을 각인시켰다.


그녀의 발언은 흔히 성매매 여성은 성적으로 타락했고 게으르고 사치하고 무지해서 아무 생각도 없는 여자라는 보통 사람들의 통념이자 편견을 불식시켰다. 물론 나는 안다. 그녀의 대중 발언 한 번으로 공고한 성매매 여성 혐오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다만 이를 계기로 이들도 사회적 정치적 판단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며, 대선 때 한 표를 행사한 엄연한 시민이라는 걸 각인해주길 바란다.


또한 김유진처럼 똑부러지게 자신의 의사를 밝힐 수 없다고 해서 생각 없는 성매매 여성이 아니며, 제각각 살아가야 할 이유를 가지고 성실히 살아가는 동시대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것도 함께 기억했으면 좋겠다. 성매매에 반대한다고 성매매로 생계를 잇는 여성을 반대해도 된다는 귀결은 탄핵을 완성시킨 민주시민의 태도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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