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원서를 쓰는 마음

만나달라고 사정했을 뿐인데, 공무집행방해죄를 씌우는 파주시

by 그냥


탄원서를 쓰느라 손가락이 아프다. 판사님의 읽으시는 수고를 덜기 위해 한 장에 채우려다 보니, 공간 조절에 실패해 절반을 쓴 걸 폐기하고 다시 쓰기도 했거니와, 탄원할 대상이 둘이다 보니 간만의 손글씨가 힘들었다. 게다 펜을 꽉 쥐고 쓰는 스타일이라 더 고됐다. 이 버릇은 왜일까. 처음에 살살하자 했다가도 어느새 힘을 빡 주고 있으니...


자필로 쓰는 게 좋다는 변호사의 권고로 손글씨 탄원서를 썼는데 정말 그럴지 모르겠다. 자필의 가치는 무엇일까. 시절이 변해 누구도 손글씨를 쓰지 않는 세상이기에 손글씨 쓴 노력을 좀 쳐주는 걸까. 탄원서를 받을 판사는 꽤 젊어 보였는데, 과연 손글씨 탄원서를 가긍히 여기는 옛 관습을 공유하고 있을지 의문이다. 어쨌거나 탄원을 하다 보니 비감해져서 좀 우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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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원서는 용주골 관련 공무집행 방해죄로 재판을 받고 있는 용주골 종사자 A와 성노동자 인권단체 차차의 활동가 여름의 무죄를 촉구하기 위해 썼다. 나는 2022년(파주시장 김경일의 느닷없는 용주골 폐쇄 선포 시)부터 용주골 종사자들에 연대하기 위해 용주골에 드나들었다. 그간 필설로 다할 수 없는 반민주적 폭압적인 행정(그간의 용주골 관련 글들을 읽어주세요)이 있어 왔고, 그걸 두 눈 뜨고 바라보는 것은 엄청난 인내심을 요하는 동시에 열패감에 젖게도 했다.



명백히 잘못된 행정인데 이를 잘 한다고 부추기는 시장의 측근과 타락한 공무원들, 말로는 성매매 종사자 인권지킴이라면서 시장 편에 서서 폭력적 철거 정책에 깃발을 높이 쳐든 시민단체 쉬고, 이 판에 콩고물이라도 얻어먹겠다고 달라붙은 저열한 시민들(용주골 폐쇄에 침 튀기며 찬성하던 한 사람이 거의 파주시 기관지에 가까운 신문사 기자가 되었다고 명함을 뿌리는 걸 목격했다 참 내..)을 참아내는 것은 정말 고역이다.



파주시는 폭력적 철거와 눈엣가시인 용주골 주민이나 관련자를 공무집행 방해죄로 걸어 넣는 폭거로 엄청난 심리적 압박을 가해 왔다. 이번 탄원 건도 그중 하나다. 밤마다 시민을 모집해 집결지 인근을 돌며 감시를 벌이는 활동을 일명 ‘올빼미’라고 하는데, 탄원 사건도 ‘올빼미’를 하던 그 밤의 일이었다.



집결지 팀장인 전씨가 나타나자 A와 여름이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면담을 해달라고 빌었다. 전씨가 무시하면서 피해 달아나자 A가 그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사정했다. 그때 다쳤다나, 위협을 느꼈다나, 참 말도 안 되는 거짓 피해를 꾸며내 이 둘을 공무집행 방해로 고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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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현장에는 ‘올빼미’에 항의하는 종사자들의 침묵 촛불 집회에 연대하던 시민들이 이 ‘쇼’를 다 지켜보았다. 피해를 입은 이는 오히려 전씨를 따라가다 바닥에 무릎이 쓸려 피가 나도록 다친 A였는데, 무슨 공무를 방해했으며 무슨 위해를 가했다고 고소를 하는가. 저열하달밖에 할 말이 없다.


무고한 사람들을 고소해 법정에 세워 오랜 시간 괴롭히면서 시장에게 충성해 얻는 승진이라는 대가가 그렇게도 값진 것일까. 이후 집결지 담당 팀장이 바뀌었는데, 그가 승진에 물먹었다는 소식이 있었다. 그래서 승진 못 하게 만든 게 이들이라서 재판으로 괴롭히기라도 하겠다고 작정한 걸까. 전씨는 신성한? 재판장에서 버젓이 거짓말로 A와 여름을 모략했고, 검사는 공무집행 방해라는 명백한 증거도 없음에도 A에게 징역 6월을, 여름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구형했다. 억울하다.


폭력을 쓴 것도 아닌데, 무릎 꿇고 애원한 시민이나 인권활동가에게 공무집행 방해죄를 엮어 고통을 주는 폭력 행정은 그만두어야 하지 않나. 위선이겠지만 공무원은 시민의 공복이다. 시민의 어려운 점을 보살피고 돕지는 못할망정 어떻게 건건이 말도 안 되는 증거를 들이대 재판에 회부할 수 있나.


인권활동가는 일 자체가 약자의 권익을 대변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과정에서 공무원 심기 좀 건드렸다고 재판정에 서게 한다면 말이 민주주의 사회지 파시즘 사회와 다를 게 없지 않은가. 그간 용주골 종사자들은 저마다 딱한 사정에도 싸워보겠다고 버티고 있지만 사실 거의 한계에 다다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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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시는 집결지 주요 자리에 있는 건물을 사들여 건물주 배를 불려주고 그 자리에 인권센터를 지어 24시간 감시 체계를 구축했다. 공무원이 상주하며 감시하고, 시시때때로 시민들이 드나들며 혐오의 눈초리를 보낸다. 실상 더 이상 버틸 여력도 없는 이들을 꼬투리만 잡으면 공무집행 방해로 걸어 넣는다. 이미 공무집행 방해로 형을 받은 용주골 주민이 여럿이며 점점 늘고 있다. 드나드는 시민도 불법 채증해 누구인지 탐문하고 감시하고 있는 정도다. 언제까지고 목줄을 쥐고 흔들고 있는 파주시의 폭압적 행정에 분노한다.


다음 달에 있을 마지막 재판에서 A와 여름에 대한 판결이 과연 정의롭게 나올지 모르겠다. 마음은 기대를 버리고 있지 못하지만 현실은 회의적이다. 이렇게 착잡한 마음으로 자필 탄원서를 쓰자니, 슬픔과 분노와 좌절감이 한꺼번에 들이닥쳤다. A와 여름의 마음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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