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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휴가 후유증

by 그냥

이제 시름거리는 여름 몸 상태를 ‘여름 병’이라 불러야 하나. 도무지 기운이 안 나고 입맛은 딱 떨어지고, 게다 몸살까지 겹쳐 며칠을 근육통과 두통에 시달렸다. 휘둘리고 나니 매가리가 없어 가사노동과 루틴을 소화하기가 힘들다. 늙은 몸이 절절히 느껴지면 영락없이 엄마 생각이 난다.


늘 기운이 없어 하던 엄마, 어느 날부턴가 여름이면 물수건을 목에 걸치고 일하던 엄마, 큰맘 먹고 사준 에어컨을 아껴 쓰며 구세주 같아 하던 엄마, 환갑 무렵 덜컥 돌쟁이 손녀를 맡아 키우며 골이 다 빠진 엄마, 식구들 먹을 음식을 매 끼니 해대면서도 정작 입 짧은 당신은 잘 먹지 못하던 엄마....


3년 전 맹장 수술을 하고 입맛이 사라졌을 때, 엄마가 해주던 오이지무침을 먹으면 물 말아 좀 먹을 거 같아, 엄마가, 오이지무침이, 간절했다. 엄마도 엄마가 없었으니 입맛을 잃으면 엄마의 엄마가 얼마나 아쉬웠을까. 밥이 웬수다. 나는 못 먹어도 식구들 입에 들어가는 밥은 해대야 하니 웬수가 아니면 무엇이겠나. 엄마의 웬수는 왜 아직도 나에게도 웬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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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 휴가 가자는 소리를 안 하던 일중독 남편이 느닷없이 휴가를 가잔다. 아니 당장? 이 피크 시즌에? 휴가를 가도 사람 치이는 게 싫어 8월 느지막이나 움직이던 거를? 이건 진짜 괴이한 일이라 남편의 얼굴을 다시 쳐다봤다. 하루 종일 땀을 얼마나 흘렸는지 남색 런닝에 소금 꽃이 잔뜩 피었고, 하루 종일 얼마나 갈증에 시달렸는지 그 좋아하는 냉면을 해놨는데도 소맥을 말아 연거푸 두 잔을 들이켜고서야 쳐다본다. 이런... 딱 죽겠는 모양이구만. 세월이 무쇠를 녹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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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어디를 가지? 이 궁리 저 궁리 끝에 속초행을 택하고 딸의 조력으로 거의 기적처럼 숙소 잡고 물놀이장 쿠폰을 끊었다. 딸애 어렸을 적 데려간 속초 워터피아가 생각나 20년?(더 될 듯) 만에 갔다. 주차장에 빼곡한 차를 보니 심상치 않았는데 역시... 많다 많다 이렇게 많을 수가 있나. 과거와 달리 돈벌이용으로 펼쳐놓은 파라솔, 비치 벤치, 평상이 빼곡해 여기가 이렇게 좁았나 싶을 정도라 망연자실. 돈 내고 왔는데 넋 놓고 있으면 안 된다는 딸애 재촉에 여기저기 기웃대다, 흥 돋우는 남자 소리(아마도 디제이인 듯)와 음악 소리 크게 나는 풀장에 어정쩡히 몸을 담갔다.


일단 시원한 차에 전방을 보니 디제이 흥에 맞춰 몸과 손을 흔드는 일단의 사람들이 보인다. 아니 뭐야 요새는 워터파크 이러고들 노나? 너무 시끄러운데? 하던 참에 여성 안전요원들이 특별 댄스를 선보인단다. 어 근데 안전요원이라고 하기엔 춤 사위가 보통이 아닌데, 요즘은 다들 춤을 잘 추는 거야 아니면 춤 잘 추는 조건을 걸고 안전요원을 뽑은 거야, 아니야 저 사람들 전문 댄서 같아 하며 가족 간 추측이 남발했다. 암튼 이 땡볕에 가만 서서 지켜보는 것도 죽을 맛일 텐데 춤까지 춰야 하는 안전요원 이거 극한 직업이라는 건 합의.

이럴 것까지 있나? 워터밤도 아니고 그냥 물놀이나 했으면 하는 심난함은 나만 그런 게 아니었는지, 나보다 어르신으로 보이는 분들이 투덜대는 걸 보니 격하게 동조하고 싶었다. 이제 워터파크도 나이 제한을 하는 건가 싶어 영 부적응 상태로 낑낑대는데, 본래 물 좋아하는 남편은 그래도 물에 몸 담그고 있으니 시원해서 좋은지 벙글벙글.


정신을 차리고 보자니 워터파크 내 인력이 명백히 구분되어 있었다. 안전요원은 한국인으로 보이는 내국인, 그 외는 전부 외국인 노동자였다. 어딜 가나 보였다. 카페테리아 종업원, 청소 노동은 모두 외국인 노동자가 하고 있어서, 잠깐 내가 어디 있는 거지 싶을 정도였다. 숙박업소에서 마주치는 노동자도 전부 외국인 노동자였고, 맛집이라고 유명한 음식점의 종업원도 죄다 외국인 노동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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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는 그래도 강원도에서 유명한 관광지이지만, 여기라고 젊은이들이 남아있을 리 없고, 노동력을 구하기 힘드니 외국인 노동자가 그 일을 대신해주고 있었다. 미안하기도 고맙기도 해, 이제 이들이 없으면 한국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걸 절감했다. 이런 판인데 외국인 노동자를 아직도 눈엣가시처럼 대하며 인권침해를 서슴지 않으니 부끄러운 노릇이다.

깻잎을 먹을 때마다, 특히 여름이면, 이걸 어떤 외국인 노동자가 따주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이제 이들 없으면 우리 입에 들어오는 야채조차 먹을 수 없다는 생각을 좀 골똘히 했으면 좋겠다. 자기들은 쉬면서 외국인 노동자는 땡볕에 내보내 일 시켜 죽게 만들고, 지게차에 사람 묶어 조리돌림 하는 자들은 대체 어떻게 돼먹은 인간들인가. 그 옛날 달러벌이로 이주 노동간 독일에서도 사우디에서도 한국인 이주노동자들이 이런 정도로 처참하게 당했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한국 사회, 왜 이리 잔인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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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세 노세 젊어 노세’하면 한참 어르신이 떼끼 하겠지만 그렇다. 무더위 노동을 잠시 놓은 남편에겐 그럭저럭 괜찮은 피서였나. 피서는 했는데 피전화는 하지 못해 괜찮은 휴가는 아닌듯했다. 어쩌면 저렇게 잠시도 쉬지 않고 전화가 오나 싶을 정도다. 하루 평균 100통을 받는다는데, 물놀이 간 사이 부재중 전화가 50통 찍힌 걸 보고 질려버렸다. 그 많은 전화를 받고 차는 언제 고치냐는 내 물음에 남편은 허허한다. 고작 사흘을 쉬고 다시 무더위 일터로 가는 남편에게 생활비 안 달랄 테니 한 달만 문 닫으면 안 돼냐는 내 말에 또 허허하고 나간다. 무쇠 녹이러 간다. 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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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힘들었다. 가기 전부터 컨디션이 안 좋았는데 돌아오니 너무 쳐진다. 급기야 몸살이 왔다. 이제는 한번 아프면 오래가 아픈 게 진짜 싫은데, 잘 놀고 와서 이 무슨 해괴한 병치레인가. 아마도 잘 논 것이 아닌 게다. 너무 많은 사람에 치이고, 너무 높은 물가에 질리고, 너무 약해진 체력은 너덜거렸다. 결론! 잘 못 쉬었다. 나는 밥 걱정 없이 혼자 쉬는 휴가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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