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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물테러' '나체시위'가 가린 동일방직 투쟁사

<긴 투쟁 귀한 삶> (양돌규 정경원, 2025, 한내) 서평

by 그냥


이른바 ‘똥물 테러’로 알려진 동일방직 ‘민주노조’ 여성 노동자들의 50년 투쟁사 <긴 투쟁 귀한 삶>을 읽었다. ‘삶과 노동을 지키기 위해 여성 노동자들이 이렇게 피눈물 나게 싸웠구나’라는 뜨거운 소감이 중심에 있지만, 책을 읽는 내내 들이치는 감정은 ‘서럽다’였다.


이들에 대한 관심이 증폭된 건 지난 대선 기간 국회에서 있었던 인상 깊은 기자회견 때문이었다. 이보다 앞서 읽었던 70년대 여성 노동사를 깊이 있게 다룬 남화숙의 <체공녀 연대기>가 시동을 건 셈인데, 이 책이 상세히 다룬 70년대 민주노조의 기라성 같은 여성 노동자들이 이 기자회견에 등장했다. 이들은 동일방직, 원풍모방, YH무역, 콘트롤데이타 등 ‘민주노조’의 기수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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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기자회견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건 ‘학출’ 출신의 김문수와 그의 배우자 설난영의 반‘민주노조’ 행보가 자초했던 것인데,https://brunch.co.kr/@jupra1/306 기자회견에 나서 이들 부부의 거짓을 고발한 여성 노동자 중 한 명이 위 책 <긴 투쟁 귀한 삶>의 동일방직 ‘민주노조’의 지부장 이총각이었다. 모진 탄압 속에서도 소중한 노동 현장과 동료를 지키기 위해 50년을 싸운 이들은 이총각처럼 그리고 기자회견장의 여성 노동자들처럼 어느덧 초로의 여성이 되어있었다. 서럽던 시절을 견뎌낸 이들의 등장이었기에 일별로 스쳐지지 않았다.


남성 노동자 중심 한국 노동사가 지운 동일방직 ‘여공’의 끈질긴 50년 투쟁


동일방직 50년 투쟁에 대해, 그리고 70년대 여성들의 ‘민주노조’ 투쟁을 사람들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 아는 이도 소수일 테지만 알더라도 ‘똥물 테러’나 ‘나체 시위’ 등 선정적 이미지에 국한될 것이다. 나 또한 이들의 투쟁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착각이었음을 부끄럽게 고백한다.


동일방직은 일제의 동양방적이 모체인 기업이었다. 당시 일본 기업은 공장법의 시행으로 어린아이나 여성의 값싼 노동력을 쓰기 어려워지자 이를 회피할 수 있는 조선으로 공장을 이전하기 시작했고 동양방적도 그중 하나였다. 해방 후 놓여날 줄 알았던 일제의 노동 수탈은 이를 이은 한국의 동일방직에서도 여일했다.


해방과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나마 여성들이 일할 수 있는 곳은 공장뿐이었다. 당시 빈곤한 시골 어린 여성들에게 선택은 두 가지였다. 시골에 남아 농사를 짓던지, 공장에 취업하던지. 소작농이 대부분일 가난한 농가에서 살길을 찾을 수는 없었던 소녀들은 집을 떠나 공장으로 이동했다. 이는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정권의 ‘수출 산업 역군’이라는 캐치프레이즈에 부응하며 소녀들을 저임금 노동 시장으로 급속히 빨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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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취업 시 어린 나이를 속이고 입사한 것을 사용주가 몰랐겠는가마는 정부의 비호와 기업의 탐욕이 공모해 어린 여성 노동자들을 착취했다. 동일 노동을 하는 남성 노동자의 20%도 안 되는 임금을 받으며 이들은 어떻게 가족을 부양하고 삶을 꾸려갔을까. 이들의 고단한 삶은 신경숙의 소설 <외딴 방>에서도 드러난다. 가장인 한 여성 노동자가 치약 하나로 일 년을 버텼다는 고백을 통해 이들이 얼마나 극단적인 절약으로 생활고를 버텨내고 있었는지 알게 된다.



여성들의 값싼 노동력은 언제나 가부장이 쉽게 쓰고 버릴 수 있는 수단이었다. 산업 현장의 ‘여공’과 이보다 더 취약했을 기지촌의 여성들은 모두 ‘산업 역군’으로 불리며 달러를 벌어들이는데 동원되었지만, 쉽게 무시되고 혐오되었다. 산업화 시기 한국 경제를 견인한 것은 남성이 아닌 여성 노동자였지만 보상은커녕 이들이 조금만 인간으로 대해달라고 절규하자 군사 정권과 기업은 잔인하게 짓밟기 시작했다.


짓밟힌 여성 노동자들이 각성하기 시작한 건 노동자들에게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려준 목소리를 들으면서다. 1966년 조화순 목사는 인천도시산업선교회(이하 인천산선)를 세우고 노동자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섬길 것을 맹세하며 목회를 시작했다. 이곳이 바로 동일방직이 위치한 인천이었다. 이곳에서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들은 노동 3권이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됐고 각성한 이들은 노동조합을 꾸리게 된다.


1972년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들은 동료인 주길자를 지부장으로 선출하며 마침내 ‘민주노조’의 깃발을 들어 올린다. 이는 여성 노동 운동의 중요한 출발점으로 이후 반도상사 YH무역 등에서 여성 노동자 대의원과 지부장이 주축이 된 ‘민주노조’가 속속 등장하게 된 계기를 만들었다. 여성 노동자가 대부분인 노동 현장에서 소외되었던 이들이 주역으로 등장한 역사적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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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방직의 ‘민주노조’는 주길자 지부장 시기를 지나면서는 가시밭길이었다. 이들의 요구래봐야 그저 조금 나은 노동환경(불편한 작업복 개선, 생리 휴가, 기숙사 온수 제공, 최소한의 점심시간 확보)이었지만, 이마저도 용인할 수 없었던 유신정권과 기업은 철저한 탄압에 돌입했다. 남성 노동자들로 구성된 어용노조를 만들어 ‘민주노조’를 파괴하고, 상위 노조인 한국노총의 섬유노조를 동원해 ‘민주노조’를 옥죄고 깡패를 고용해 조합원 실을 점거하고 여성 노동자들을 폭행했다. 이 폭압의 현장에 76년 ‘나체 시위’와 78년 ‘똥물 테러’가 있었다.


1976년 7월 동일방직 ‘민주노조’ 활동을 막으려 경찰이 이영숙 지부장과 이총각 총무부장을 강제 연행하려 하자 여성 조합원 800여 명이 이를 저지하기 위해 농성에 들어갔다. 농성 사흘째 농성 해산을 위해 막대한 경찰력이 투입되자 여성 노동자들은 최후의 수단으로 상의를 탈의하고 버텨보지만, 어마어마한 공권력에 처참히 두들겨 맞고 짐승처럼 끌려갔다. 여성의 성을 단속하던 70년대에 여성이 옷을 벗어서라도 대항했다는 것은 실상 동료를 지키기 위해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을 걸고 싸웠다는 의미이다. 선정적으로 이미지화된 ‘나체 시위’는 이들의 투쟁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언어다.



계속되던 ‘민주노조’ 탄압은 78년 극에 달한다. 어떻게든 ‘민주노조’ 성립을 방해하던 동일방직의 어용노조와 섬유노조 그리고 당시 유신정권의 핵심 기구인 중앙정보부는 마침내 여성 노동자들에게 똥물을 끼얹고 모욕한다. “똥을 뒤집어쓴 이들은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을 심각하게 훼손당했다.” 이후 이들의 투쟁 구호가 ‘똥을 먹고 살지는 않았다’로 굳혀진 배경이었다. 인간 모두가 배설하지만 또한 극도로 혐오하는 똥 덩이가 여성 노동자들에게 퍼부어진 근저엔 ‘여공’들의 열악한 사회적 지위가 있었다.


똥으로 당한 모욕도 모자라 불법 해고된 124명의 여성 노동자들은 그야말로 굶어 죽을 위기에 처한다. 어디에나 따라다니는 ‘빨갱이’ 낙인과 감시의 눈초리뿐 아니라 중앙정보부의 주도로 작성해 뿌려진 블랙리스트는 이들을 경제적으로도 고사시킨다. 새로 잡은 직장에서 하루나 이틀 만에 쫓겨나며 그야말로 가혹한 생존의 위협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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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박정희 피살로 희망이 보이는 듯했으나 이어 정권을 찬탈한 군사 정권은 ‘민주노조’를 더욱 참혹히 압살했다. 이렇게도 무시무시한 탄압을 뚫고서 여성 노동자들은 끊임없이 새 길을 내며 싸워왔고 싸우고 있다. 지난 8월 한국 옵티칼 노동자를 대신해 600일의 고공농성을 마치고 내려온 박정혜의 부당한 해고에 대한 복직 요구는 50년이 넘도록 여성 노동자들이 싸워 온 맥락과 닿아 있다.


2010년 진실화해위원회는 ‘중앙정보부 똥물 사건 배후 조종’, ‘민주노조’ 불법 구금과 블랙리스트가 이들의 생존권을 위협했다고 밝혔다. 각고의 세월 끝에 2018년 국가는 이들의 인권 노동권 침해를 인정하고 배상하기에 이른다. 이들 투쟁의 마침표를 이 책 <긴 투쟁 귀한 삶>로 찍은 셈이다.


일독을 통해 여성 노동자들이 숱한 폭압과 패배 속에서도 무엇을 성취해왔는지 그 뜨거운 힘을 느껴보기 바란다. 또한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이 가공해온 남성 주도의 민주 노조 운동이라는 신화가 얼마나 불공정한 담론인지도 확인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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