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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노릇'하다 순직한 조지 오웰의 부인 '아일린'

<조지 오웰 뒤에서/지워진 아내 아일린> (애나 펀더, 생각의 힘) 서평

by 그냥


조지 오웰은 <동물 농장>이나 <1984>로 유명한 작가다. 나는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이 호감 가는 정도다. 그의 책은 독서인의 추천도서로도 자주 꼽히곤 하는데, 이런 면에서 지금 쓰고 있는 <조지 오웰 뒤에서>에 대한 서평은 그의 팬들에게는 불편한 글이 되겠다. 종종 예술가 의 성취와 개인사를 구분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고민의 지점은 있으나 동의하지는 않는다.


이 책을 쓴 애나 펀더는 조지 오웰을 좋아했다. 그러다 “2005년에 그의 첫 번째 아내 아일린 오쇼네시가 가장 가까운 친구였던 노라 사임즈 마일즈에게 보낸 여섯 통의 편자가 발견되었다. 그 편지들 속에는 아일린이 오웰과 결혼해 살았던 1936년부터 1945년까지의 시간이 담겨 있다.”


이를 단초로 저자는 아일린을 기억하는 주변인을 만나 인터뷰하고, 그들이 건넨 메모나 기억을 공유하고 기록을 뒤지면서 새로운 사실들을 접하게 된다. 충격이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타격은 그녀가 여러 번 읽었던 그의 책 <카탈로니아 찬가>에서 당시 스페인에 같이 있었던 아일린의 존재를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는 점이었다. 뭔가 잘못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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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이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 후 아일린은 그의 안위를 걱정해 스페인으로 떠났다. 그녀는 바르셀로나 ILP 스페인 지부 선전부에서 일자리를 얻고, 그곳에서 그가 필요로 하는 물품, 심지어 담배까지 구입해 전선에 보내고, 그의 부상을 돌보고, 파시스트로부터 신변의 위협을 느끼면서도 그를 스페인에서 무사히 탈출시키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그는 그녀를 마치 존재하지도 않은 사람처럼 지워버렸다. 그만이 아니다. 그의 전기를 쓴 작가들 역시 스페인에서의 아일린을 약속이나 한 듯이 삭제했다. 그와 그들은 왜 그랬을까.


“이는 여성의 행위를 그 영향력으로부터, 여성의 용기를 그로부터 이익을 보는 사람들로부터, 여성이 버는 돈을 그 돈으로 먹고사는 남성으로부터, 여성의 고통을 그것을 초래한 사람들로부터 분리”하기 위해서다.


조지 오웰을 만나기 전 아일린은 영민한 여성이었다. 옥스퍼드대학교를 장학금을 받고 다녔으며, 1934년 디스토피아를 주제로 <세기말, 1984>를 발표해 주목받았으며,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심리학과 석사 과정을 등록했다.


하지만 당시 학교나 사회 체제는 여성의 진로를 엄격히 제한하고 차별해 여성들의 이력을 결혼으로 끝내는 데 주력했다. 졸업 후 다양한 시도를 했으나 좌절 중이었고 그럴 즈음 지인의 집에서 조지 오웰을 만나 그의 구혼을 받아들인다.


결혼식 때 아일린은 교구 목사에게 결혼 서약에서 ‘순종’ 부분을 빼달라고 부탁할 정도로 진취적이었으나 결혼 후 퇴보했다. 그녀에 대한 기록이나 증언은 그녀가 사려 깊고 철학적이며 뛰어난 지성의 소유자인데다, 다분히 괴짜의 기질이 있고 유머를 즐기며 무엇보다 글쓰기를 가장 좋아했다고 전한다. 이러한 재능과 기질이 조지 오웰에게 문학적 영감과 조언을 주어 성장시켰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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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하지 않겠다는 결혼 서약이 무색하게도, 결혼 후 아일린의 삶은 ‘아내 노릇’이라는 시궁창에 빠졌다. 남편이 돈벌이를 하지 못하니 찢어지게 가난했고, 글쓰기 외 아무 관심이 없는 남편은 독박 노동을 종용했다. 청소(변소 오물 처리까지), 요리, 가축 기르기, 사교모임 계획, 생필품 구입, 서신 업무, 무엇보다 남편이 쓴 글의 교정과 타이핑까지 중노동에 시달렸다.


이쯤 되면 조지 오웰은 그녀를 아내로서가 아니라 하녀, 섹스 파트너, 비서, 편집자로 고용했다고 보아야 한다. 그는 비용을 아끼기 위해 아내를 고용했다. 무임금으로 가혹히 무한히 착취할 수 있는 대상은 아내가 유일했기 때문이다.


여성에 대해 조지 오웰이 남긴 메모가 증명하듯, 그는 여성을 비하하고 혐오했다. “... 하나는 그들이 구제할 길이 없을 만큼 지저분하고 단정치 못하다는 점이었다. 다른 하나는 그들의 무섭도록 탐욕스런 성욕이었다...” 그의 주변 누구도 그런 여성이 없었지만 그렇게 믿었다. 오히려 틈만 나면 여성에게 추파를 보내고(결혼 전과 후나 여일하다) 추행하고 성폭행하고 착취한 이유로 구제받을 길이 없던 이는 그 자신이었다.


그는 영국 식민지 버마 출신으로 여기서 경찰 생활을 하며 사창가를 애용했다. 식민지 여성과의 섹스에서 이색적인 쾌락을 느끼며, 특히 식민지 소녀들을 상당히 노골적이고 집요하게 탐했다. 이러한 그의 지저분한 욕구는 아일린을 만나기 전과 후에도 끈질기게 이어졌으며, 그가 구애하고 스토킹하고 강간한 여자만도 상당수였다. 이 중 아일린의 절친까지 있었다는 점은, 그의 비정상적인 성적인 집착이 아일린에게 씻을 수 없는 모욕과 고통을 가했으리라 짐작하게 한다. 그의 본색은 “난봉꾼, 강간범, 교활한 겁쟁이, 착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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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이 숨긴 아일린의 흔적 중 으뜸은 그의 작품에 있다. 결혼 후 발표한 <동물 농장>은 그의 글을 아는 모든 이들로부터 굉장한 전환기라 불릴 만큼 획기적인 작품이었다. 스탈린을 비판하는 에세이를 쓰려던 그에게 완벽한 구조, 익살 어린 어조, 생생한 캐릭터로 뛰어난 서사를 불어넣은 주역은 아일린이다. <1984>의 ‘진리부’ 또한 아일린이 런던에서 일했던 정보부를 모티브로 하고 있으며, 그녀가 결혼 전 발표한 시의 제목과 유사하다는 점도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뛰어난 지성과 따뜻한 배려심으로 평생 조지 오웰을 조력하고도 아일린은 투병과 죽음에 이르기까지 남편의 돌봄을 전혀 받지 못했다. 그녀는 가난 속에서 고된 노동과 가사 그리고 남편 업무까지 보조하느라 과로해 병들었다. 지독한 빈혈과 자궁내막증을 앓다 수술하기에 이르렀는데, 그는 이 위기에서조차도 아내의 고통을 모른 체하며 스페인 여행에 몰두 중이었다.


그가 폐결핵으로 위독할 때 그를 헌신적으로 돌봐 회복시킨 아일린의 헌신과 사랑에 그는 늘 부도난 수표를 보낸 셈이다. 의료비를 아껴보려고 부적절한 수술을 받기도 전에 그녀의 약한 심장은 마취를 감당하지 못하고 심정지되어 수술대에서 차가운 주검이 되었다. 황망한 죽음이었다.


아일린 사후 조지 오웰은 아내의 상실에 대한 슬픔보다 자신의 소설 <1984>를 완성하겠다는 집념을 불태웠다. 아내가 해주던 돌봄과 서비스를 다른 여자에게 구하기 위해 온갖 술수를 쓰지만 성공하지 못한다. 그녀의 죽음에 대한 진실 규명이나 애도는 그의 안중에 없었다. 아내 사인을 규명하는 심리에조차 나타나지 않음으로써 그는 스스로 남편 자격 없음을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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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조지 오웰이 지운 아일린을 놀라울 정도로 생생하게 복원하면서 이렇게 다짐했다. “아내 노릇이란 우리가 배워 우리 자신에게 행해 온 사악한 마술의 속임수다. 나는 그것이 어떻게 행해지는지 폭로하고 싶다. 그래서 속임수를 쓰는 그 사악한 힘을 없애버리고 싶다.” 사악한 속임수라는 주술의 근원은 아내의 노고를 지우고 남편을 영웅으로 만들려는 저급한 가부장이다. 원저의 제목은 ‘Wifedom’이다. ‘여성의 혁명은 집(부엌)에서부터’라는 테제가 그 어느 때보다 명징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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