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드라마 <캐셔로> 리뷰
한 십 년 전쯤 나왔으면 좋았을 법한 영웅물 <캐셔로>을 보았다. 제목이 말해주듯 주인공 히어로는 캐시(현금)로 초능력을 발휘한다. 주머니마다 돈다발을 쑤셔 넣은 채 가공할 괴력으로 악당을 해치우는 현란한 액션에 취해있던 시청자는 여기서 잠깐, 멋진데 어딘지 시대착오적 히어로를 만났다는 당혹감을 느낀다. 흠, 요즘 누가 현금을 들고 다니나요... 후후
돈의 힘이 곧 초능력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엔 오케이, 하지만 시대적 상황을 반영해 현금 대신 돈을 쓰는 다른 도구적 설정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최근 언제 현금을 썼는지, 언제 은행에 갔는지 생각해 보면, 이미 누구도 현금을 사용하지 않는 세상에 살고 있음을 단박에 깨닫지 않는가. 돈으로 사고파는 듯하지만 결국 장부만 남을 뿐이고, 최근엔 모든 돈이나 돈 되는 재화마저 토큰화한다는 마당이지 않은가.
이처럼 현금다발을 들고 다니며 초능력을 발휘하는 히어로는 지체된 스타일이지만, 그 나름의 진심이 있어 끝까지 보게 되었다. 2023년 눈에 잘 띄지도 않는 약자 영웅들의 서사를 진정성 있게 보여준 <무빙>이후 친근한 영웅이 등장해 반가웠다.
<무빙>의 어린 영웅들처럼 주인공 상웅(이준호)은 어느 날 아버지로부터 초능력을 상속받는다. 상속이란 피하기 어려운 모진 것이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남긴 재산뿐 아니라 빚까지 옮겨 오지 않는가. 물려줄 거면 초능력을 감당할 돈까지 줬어야 했지만, 상웅 아빠는 평생 초능력 질에 돈을 쓰기만 하느라 물려줄 돈이 한 푼도 없다. 참 처량한 초능력자요 아버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상웅은 상속된 초능력이 부담스럽기만 하다. 안 쓰면 되지 않냐고? 물론 그렇지만 영웅의 삶이 어디 그리 녹록하던가. 영웅의 앞에는 언제는 불의와 악의 가공할 세력이 도전해오기 마련이고, 또 초능력을 쓰지 않으면 몸에 이상 반응이 와서 괴롭기 짝이 없다. 초능력을 쓰자니 돈이 없고, 안 쓰자니 아프다. 여기서 초능력에 괄호를 치면, 보통 사람들의 삶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꼭 써야 할 상황엔 돈이 없고, 없어서 못 쓰면 꼭 탈이 난다. 아프거나 심대한 위기에 처하거나 말이다.
심각한 삶의 위기를 맞닥뜨렸는데, 초능력을 팔 수 있다면 어떻게 할까. 영웅 아니라 영웅 할아비라도 팔지 않고 배길 수 없을 것이다. 상웅 역시 괴롭고 부담스럽기만 한 초능력 따위 확 팔아버리고 싶은 유혹에 빠지지 않을까. 여기서 초능력의 ‘초’에 다시 한번 괄호를 치면, 이 또한 우리 삶을 반영하고 있다.
우리 역시 제각각 거의 초능력에 가까운 장시간 노동력을 팔아 호구지책을 삼지 않는가. 너무 과하게 쓴(판) 나머지 방전되어 쓰러질 때까지, 드라마에서 초능력을 사들이는 거대 자본처럼, 초능력을 구매한 기업은 꽂아놓은 빨대를 흡입하듯 노동력을 착취한다. 상웅의 초능력을 빼앗고 싶은 악당들처럼 헐값에 노동력을 사들여 초능력을 발휘하게 만드는 자본은 지구 도처에 글로벌기업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맹활약 중이다.
하루도 쉬지 못하고 물건을 나르고 배달하고, 건물 곳곳을 한 번도 만진 사람이 없는 것처럼 반들반들하게 닦고, 우리 식탁에 무심히 오르는 깻잎 몇 천 장을 따느라 허리 한 번 펴지 못하고, 아픈 사람들의 똥을 치우면서, 초능력자들은 이미 과부하에 걸려 쓰러지거나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다.
상웅 역시 제 돈 써가며 초능력을 쓰느라 고달프다. 드라마는 상웅의 영웅성을 심화하기 위해 시험을 치르게 한다. 자신의 능력 범위를 초과한 초능력을 씀으로써 초능력이 사라지게 되는 위기에 처한다. 악과 폭력으로부터 사람을 살리는 선한 영웅이 되기 위해 너의 영웅다움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성찰하라는 누군가의 염치없는 물음에 봉착한 것이다. 이는 영웅 탄생을 극적으로 하기 위한 익숙한 드라마적 장치지만, 극 중 상웅의 애인 민숙의 변처럼, 사람들을 지켜야 할 책임을 진 사람들은 방기하고 있는데, 제 돈 써가며 사람을 구한 상웅에겐 너무 가혹한 시험임에 틀림없다.
사람을 구하는 초능력에 어느덧 소명을 품게 된 상웅, 그는 염치없는 시험의 답에 엉뚱하게도 ‘마음’을 놓는다. ‘돈보다 마음이지!’ 가난한 초능력자 영웅의 ‘마음’이라니, 눈물겹다. 현금이 있어야만 위력을 발휘하는 초능력자의 ‘마음’이란 허무할 테지만, ‘마음’을 자신의 목숨으로 바꿔 달고 과감히 도전하는 상웅은 공감 능력까지 초능력자로 도약하며 진짜 영웅의 모습을 구현한다.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버림으로써 비로소 진정한 영웅으로 거듭나는 각성된 영웅성은 전형적이지만, 이것 없이는 영웅이 될 수 없기에 영웅담에서 뺄 수 없는 필수 각본인 것이다.
이에 대한 화답으로, 돈이 떨어져 초능력을 잃어가는 상웅에게 던져진 박살 난 돼지 저금통은 인상적인 메시지를 남긴다. 어릴 적 아들의 돼지 저금통마저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들고나간 아버지의 비애와 그런 아버지를 원망했던 자신을 애도하며 깨진 저금통의 지폐 몇 장과 동전 몇 잎은 영웅 상웅을 다시 일으켜 세운다. 아들의 돼지 저금통을 가져간 아버지나 한 푼 두 푼 희망을 모았을 돼지 저금통을 던지는 기꺼움 모두에 ‘마음’이 있었다. 타인의 삶에 관심을 가지는 작은 초능력마저 상실한 우리에게 아직 기꺼이 던질 돼지 저금통이 남아 있는지 묻고 있는 듯했다.
이제 누가 타인을 연민할 (초)능력이 있는가, 이제 누가 타인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헌신할 (초)능력이 있는가. 이 단순한 질문 앞에 선뜻 제시할 영웅성이 우리 사회 그리고 전 지구에 남아 있지 않다는 현실은 ‘캐셔로’의 현신이 어쩌면 우리가 잃어버린 영웅성일지도 모른다는 비감함을 준다. 한때 전 지구적인 히어로라 자부했던 ‘어벤저스’가 이제 더 이상 돈을 주고 부르지 않으면 오지 않는 용병이 되어있지 않은가.